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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특수성 극복할 때 새로운 인문학 가능
한국적 특수성 극복할 때 새로운 인문학 가능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10.15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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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편_ 문학·철학·역사

‘한국 인문·사회과학 연구, 이대로 좋은가’ 한림대 한림과학원(원장 김용구)은「한국 사회, 어디로 가야하나」라는 장기 기획으로 매년 가을 일송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지난 12일에 열린 제4회 일송학술대회의 주제는‘한국 인문·사회과학 연구, 이대로 좋은가’이다. 한국 인문사회과학 역사 100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한국적 학문의 정립을 모색하는 학술대회다. 문학ㆍ역사ㆍ철학, 사회학ㆍ정치학ㆍ경제학 분야의 초기 역사부터 철저히 고증해 낸 석학들의 진지한 발표는 한국의 역사를 분과라는 프리즘으로 보여줬다. 각기 다른분야 학문 역사의 몸통에는 일제강점기, 미군정시기 등 시대의 질곡이 동시에 오롯이 새겨져 있었다. 오는 11월 세계인문학포럼, 12월 대선을 앞두고 한국의 인문학, 사회과학의 현 주소를 짚어보는 유의미한 학술대회를 <교수신문> 지면을빌려 소개한다.

「한국 문학연구 어디까지 왔나」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국문학)
한국문학연구는 해방 이후 반세기를 지나는 동안 그 방법론의 추구과정에 따라 성격과 방향이 결정됐다. 다양한 서구 문학이론을 수용하고 그 방법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구방법의 논리적 주체화를 확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문학연구의 학문적 위상을 한국학의 중심에 자리하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문학의 성격과 범주와 체계에 대한 보편적 이해가 가능하도록 문학적 관점의 편협성을 극복해야 한다. 한국적 특수성에만 집착해온 연구의 태도도 반성해야 하고 연구방법의 전문성도 더욱 제고해야 한다. 문학연구의 전문성은 물론 그 방법과 논리의 전문성을 뜻하는 것이다.

문학이라는 복잡한 사회적 산물을 하나의 전체적인 논리 속에 질서화하는 보편적인 연구방법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인식의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그 중요성이 인정된다. 말하자면 문학연구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자기논리를 지켜야 한다. 문학연구는 새로운 방법에만 집착할 경우, 문학적 텍스트에 대한 총체적 인식에 도달할 수 없으며, 그 해석과 평가자체도 보편성을 가지기 어려운 일이다.

한국문학연구가 자리해야 할 곳은 한국인의 역사적 삶 속에서 생성된 문학의 한복판이다. 문학이라는 것은 언제나 한 시대의 살아있는 정신으로 기록된다. 그 정신의 자체 내의 척도가 연구방법이라면, 문학연구는 문학의 본질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척도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 면밀한 기준으로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문학연구는 그 의미가 문학에 대한 어떤 요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좁은 의미에서 문학연구는 예술적 체험에 의해 이루어진 작품을 지적 표현으로 바꿔 놓긴 하지만, 문학을 어떤 다른 사상으로 대치시켜 놓지는 않는다. 문학연구는 문학의 존재의미를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속성을 밝혀주면서 삶의 현실과 역사에 대한 전망을 진실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문학연구는 그 제한된 담론의 영역을 넘어서서 새로운 문화적 지평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철학계, 무엇이 문제인가?」김재현 경남대 교수(철학)
1) 2008년에는 세계철학자대회에서‘유영모와 함석헌이 한국의 철학자인가?’라는 문제제기와 토론이 있다. 발표 이후에도 이들이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철학자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우리의 경우 근현대철학자로 꼽을 만한 사람은 누구인가? 한국사회에서 이제까지 진정한 자신의 철학적 문제를 가지고 대결한 결과를 텍스트로 만들어 낸 철학자는 상당히 드물다.  보통의 철학교수(직업인으로서 철학을 가르치고 전공 논문을 쓰는 사람)와 진정한 철학자(자신의 철학적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철저히 해결하고자 온 몸으로 분투하는 사람)의 구별이 필요하다.

2)한국철학계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점 중의 하나는 다양한 전공 분야의 연구가 심화되고는 있으나 서로 다른 철학사조 사이의 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3)최근에 들어와 철학연구자들의 재생산이 잘 안 된다. 특히 서양 철학전공의 경우국내에서 대학원 교육을 통해 전문연구자로 성장하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더 어려워진다.

4)우리의 근현대 철학의 역사에서는 공유할 만한 텍스트를 제대로 생산해 내지 못했고 또 생산했다 하더라도 이것을 텍스트로 인정하고 활용하는 노력을 소홀히 해왔다. 최근에 와서 상당한 저술(텍스트)들이 나오지만 개별 연구논문을 모은 것들이 많고, 한국의 컨텍스트에서 자신의 철학적 문제의식을 토대로 연구한 성과로서의 텍스트들은 드문 편이다. 또한 충실하게 번역된 고전텍스트도 필요하다.

5)식민지 경성제대에서 서구의‘보편적 학문’으로서 철학에 대한 강조는 식민지 현실을 도외시하게 한 지배전략의 하나로 볼 수 있고 이는 해방 이후 오래동안 서구중심 근대의 보편성을 그대로 수용한 것과도 연관된다. 이는 한국의 정치적 현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한국의 식민지 경험, 정치적 현실, 국가의 성격이 철학의 기형적 발전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할 수 있다. 철학계에서도 서구 중심적, 순수 학문적 철학 패러다임이 지배적으로 발전해 왔다.

6)연구자 개인들의 문제의식과 역량의 한계가 있으며, 학계와 대학 내에서의 연구업적(논문, 저서, 번역서) 평가제도와 시스템, 한국연구재단의 평가제도와 시스템의 문제들이 있다. 이와 함께 연구비 지원제도나 시스템의 문제도 지적할 수 있다.

7)역사적 현실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분명한 자각과 인식이 필요하다. 모든 시대의 위대한 철학자들은 자신의 시대가 가진 문제와 철저하게 부딪히며 사유한 사람들이다. 철학을 초역사적이며 보편적 진리에 대한 탐구로 보는 기존의 관점들에 대한 전면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8)서양철학 또는 서양철학사에 대한 구체적 해석을 위해 철학적 작업을 모두‘발화행위’로 그리고‘철학 텍스트’는 발화행위의 결과로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보편성과 특수성의 관계라는 기존의 막연한 생각이나 발언들은 재고돼야 한다. 김여수, 차인석, 소흥렬, 남경희 등 여러 철학교수들은‘서구적 보편주의’에 대해 비판하면서 철학이 넓은 의미에서 사회철학, 문화철학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우리는“우리 문화에 바탕을 두고, 우리 문화의 텍스트 안에서”철학을 하고, 철학 강의를 할 필요가 있으며“우리가 철학을 이끌어갈 방향은 그런 의미에서 문화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국사에서 역사로」박근갑 한림대 교수(사학)
신채호는 한국의 역사가들 가운데 처음으로‘역사 그 자체’를 사유하기 시작했던 인물이었다. 그와 더불어 한국의 역사 개념은 기대의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인식세계가‘국사’의 이름을 빌릴 때, 그 누구보다도 완고한 국수주의 수사법이 나타난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의 또 다른 명저『朝鮮上古文化史』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단군이 곧 仙人이다. 선인은 곧 우리의 국교이며 우리의 무사도이며 우리 민족의 넋이며 정신이며 우리 國史의‘꽃’이다.”그리고 그의 설명은 이렇게 이어진다. 한국의 옛 종교가 중국의 고대 문화를 압도했다. 이럴진대 만약 단군의 후손들이 무력으로 그 문화를 보호하고 확장했다면, 한국이 진실로 동양문명사에서 으뜸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전체 땅을 독차지 했을 것이다.

손진태는 이러한‘역사운동’을‘단군운동’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그는 이‘편협한 애국사상’에서 벗어나 보다‘과학적인’인류학 방법을 이용하여 다양한 한국 문화양식의 기원과 계통을 탐구하는 과제에 몰두했으며, 이 분야에서 빛나는 업적을 산출할 수 있었다. 후반기의 손진태는 예나 다름없이 여전히‘오직 진실하고 엄정한 과학’을 옹호하는 역사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이전에 민족시조 전설을 하나의 공상적 환상으로 치부했던 생각을 바꾸어 그 역사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손진태는 역사의 이름으로 민족 만들기의 계보를 이었다. 그가 이해하는 신화 복원의 역사적 과제는 절박한 현실인식에 근거한다. 즉, 단군 전설은 조선왕조 말기에 이르러 일본에 맞서는“독립사상과 아울러 맹렬한 기세로”민족적 의식 위에 대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민족사상의 세계적 팽배와 함께”始祖를 신성하게 받드는 사상도“全盛을 極하게 된 것이다.” 이 맥락에서 일본의‘과학적’ 역사가들은 통렬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정리=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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