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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海로 흘러드는 거친 濁流, 그 깊은 ‘민족적 알레고리’
黃海로 흘러드는 거친 濁流, 그 깊은 ‘민족적 알레고리’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10.15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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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 1930년대 채만식이 그린 『탁류』 속의 군산, 군산항

 

▲ 군산항 내항 근처에서 바라본 아스라한 풍경(사진 왼쪽). 개나리가 핀 군산항 주변 마을의 스산한 지붕이 인상적이다. ⓒ 유성기

 

“금강(錦江)…….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가지고는―한강(漢江)이나 영산강(榮山江)도 그렇기는 하지만―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라는 묘사로 시작해서 “초봉이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안도의 산숨을 내쉬면서, ‘네에.’ 고즈넉이 대답하고, 숙였던 얼굴을 한번 더 들어 승재를 본다. 그 얼굴이 지극히 슬프면서도 그러나 웃을 듯 빛남을 승재는 보지 않지 못했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되는 소설 『탁류』는 식민지시대 뛰어난 풍자 작가 채만식(1902~1950)이 <조선일보>(1935.10.12~1938.5.17)에 연재한 신문장편소설이다. 바로 이 소설 『탁류』의 배경이 군산이다.

채만식은 금강이 휘달려 마침내 도달한 곳 군산을 이렇게 호명했다.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黃海)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탁류에 얼러 좌르르 쏟아져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群山)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오늘날의 군산이나 예나 군산의 주요 볼거리는 이 군산항을 기점으로 반경 1km이내 모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米港’의 역사적 무게를 환기해주는 대목이다. 작가의 눈은 바로 이곳 군산항에서 생을 이어나가는 완악한 인물 정 주사를 응시하면서, 식민지시대의 혼탁[濁]한 물결[流]에 휩쓸려 무너지는 한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재구성한다. 계속되는 불행 속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초봉’과 시대의 탁류 속에서도 자신의 건강성을 잃지 않는 ‘계봉’ 두 자매의 삶의 모습을 대비함으로써, 비극의 깊이와 그 간격에 걸쳐 있는 삶의 가능성까지 묘사했다.

 ‘아이러니’에 뛰어난 이 작가는 긍정적 인물이 부정적 인물을 관찰하는 시선의 이동을 따라 소설을 완성해나간다. 남승재, 정계봉 등의 인물이 정 주사, 고태수, 장형보 등의 부정적 인물을 깊이 응시함으로써, 식민지를 살아가는 부정적 인물의 피폐한 모습과 이들의 남루한 세계관을 날카롭게 잡아냈다.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아버지 정 주사의 강요로 은행원 고태수와 결혼하게 된 ‘초봉’의 삶은 소설의 전체 구성을 완성하기 위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꼽추 정형보 때문에 결혼 열흘 만에 남편을 잃고 정조까지 유린당한 초봉은 아버지 친구인 약국 주인 박제호에게 몸을 맡기게 되고 결국은 그의 첩이 되고 만다.

첩살이 하는 동안 딸(송희)을 낳아 잠시나마 행복을 맛보던 초봉에게 장형보가 다시 나타나 자기 딸입네 함으로써 그녀의 가정은 파괴되고, 자신을 파멸시킨 장형보에게 몸을 맡겨야 하는 운명으로 전락한다. 초봉은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 장형보임을 깨닫고 그를 죽이지만, 그것은 또다른 비극이 되고 만다. 이 작품은 당대 사회를 혼탁한 물결에 비유하면서, 이 거친 탁류에 휩쓸려 정신줄을 놓고, 자기 운명마저 망쳐 가는 도시 하층민의 삶을 풍자하고 있다. 초봉의 비극적인 삶을 중심축에 놓은 이 작품은 가난·싸움·투기·간통·흉계·횡령·탐욕·추행 등 인간 삶의 밑바탕에 도사린 온갖 부정적인 요소들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작가 채만식은 이 부정적 요소들 끝에 판도라의 상자처럼 낡고 거친 탁류의 흐름 끝에 도래할 새로운 인간상을 계봉, 남승재 등을 통해 희미하게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탁류』가 ‘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군산항’과 의미를 맺고 있는 지점은 이러한 소설적 구성도 있지만, 사실은 작가 채만식이 매의 눈으로 날카롭게 관찰, 소설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형상화한 군산 미두장 풍경이다. 일제가 군산항을 미곡 수출 기지로 삼았던 역사적 상황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 풍경은 으레 노름과 투기장으로 변질된 어둠의 공간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미두장이었다.

 

 

그는 이렇게 묘사한다. “오늘 아침 ‘전장요리쓰케(前場寄付)’ 삼십 원 십이 전으로 장이 서 가지고는 ‘전장도메(前場止)’ 홑 구 전, ‘후장요리쓰케(後場寄付)’ 홑 칠이 이절에 가서 오 정(五丁 : 오 전)이 더 떨어져 홑 이 전으로 되더니, 삼절에는 마침내 그처럼 삼십 원대를 무너뜨리고 팔 전―이십구 원 구십팔 전으로 또다시 사 정이 떨어졌던 것이다. 현물이 품귀(品貴)요, 정미도 값이 생해서 기미(期米)도 일반으로 오르게만 된 형세건만, 도리어 이렇게 떨어지기만 해놔서, ‘쓰요키(强派)’들한테는 여간 큰 타격이 아니다. 만일 이대로 떨어져 가기로 들면 ‘후장도메’까지에는 다시 사오 정은 더 떨어지고 말 것이고, 한다면 도통 이십 정이 오늘 하루에 떨어지는 셈이다.

표준미가(標準米價) 이후 하루 동안에 백 정이니 이삼백 정이니 하는 등락은 이미 옛날의 꿈이요, 진폭이 빈약한 오늘날, 더구나 한산한 이 시기에 하루 이십 정의 변동은 넉넉히 흥분거리가 될 수 없는 게 아니던 것이다.” 중농에서 빈민으로 전락한 정 주사 일가가 삶을 이어가는 곳이 이 어두운 투기장 주변이었다는 사실, 이는 작가의 또 다른 작품 『태평천하』(1937)의 기막힌 반어법과 맞물려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 듀크대 교수가 제안했던 ‘민족적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다. 시대의 질탕한 흐름, 그 거친 탁류 속에 납작 엎드린 군산, 군산항. 그리고 거기서 삶을 영위해가는 모든 이들의 운명. 황해로 흘러들어가는 금강의 물줄기가 이곳에 이르러 거친 탁류로 흐르는 것은 지금도 여전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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