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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나침반] 지금은 ‘배아복제 전쟁’ 중
[과학나침반] 지금은 ‘배아복제 전쟁’ 중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8.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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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02 13:56:19

최근 줄기[幹]세포를 이용하는 세포치료법이 생명과학기술의 총아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허용 수준을 놓고 관련 부처인 과기부와 복지부가 법안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각기 다른 법안을 준비 중이어서 정책혼선이 커지고 있다.

줄기세포를 만드는 방식은 크게 체세포 핵이식(배아복제술), 불임치료 뒤 남은 수정된 배아를 이용하는 방법(잉여배아 이용법), 성체에서 줄기세포를 만드는 방법(성체줄기세포 이용법)으로 나눠진다. 이중 배아복제술은 생명공학자들에게는 신체의 모든 부분을 그대로 재생할 수 있어 난치병 해결에 획기적인 장을 여는 ‘꿈의 기술’로 각광받고 있는 반면, 종교계·시민단체 등으로부터는 발생과정에 따라 생명을 인위적으로 창조했다가 다시 없앰으로써 존엄성을 훼손하는 ‘파괴적 기술’로 간주되고 있어, 향후의 법제화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상태다.

학계의 반응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1996년에 의료윤리교육학회가, 1998년에 생명윤리학회가, 올해 초에 임상연구심의기구협의회가 각각 설립됐고 연말에는 아시아 생명윤리회의가 서울에서 열릴 정도로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져 왔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김환석 국민대 교수(사회학)는 “잉여배아로도 줄기세포 연구가 가능하므로 배아복제 금지가 적절하다”라는 입장을 펼치는 반면, 이 분야의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황우석 서울대 교수(수의학)는 “배아복제술은 잉여배아나 성체줄기세포 이용에 비해서 거부반응이 없고 증식이 잘 되므로 중환자의 희망을 위해서라도 허용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과기부가 배아복제를 금지하는 쪽에서 허용하는 쪽으로 정책 선회를 하면서 문제가 더욱 커졌다. 과기부는 생명공학자, 의학자, 윤리학자, 종교 및 시민단체 대표로 구성된 생명윤리자문위원회를 구성해 9개월 동안의 토론 끝에 지난해 체세포를 이용한 인간배아 복제 연구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생명윤리기본법’ 마련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17일 발표한 ‘인간복제 금지 및 줄기세포 연구 등에 관한 법률안’에서는 ‘복제 배아의 자궁 내 착상을 통한 인간개체 복제는 금지’하는 것으로 개정했다. 배아 복제를 사실상 허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 셈이다.

이에 앞서 지난 15일 복지부는 공청회를 통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안을 공개한 바 있다. 복지부 산하 보건사회연구원이 마련한 이 시안은 체세포 핵이식, 즉 배아복제를 금지하고 정자와 난자의 매매를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처음에는 배아복제술만을 금지하고 잉여배아와 성체줄기세포의 이용은 허용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었던 두 부서의 법안이, 과기부의 선회로 인해 과기부는 ‘배아복제 허용’, 복지부는 ‘배아복제 금지’로 팽팽히 맞서게 된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사업자원부까지 ‘관련업계 지원대책’을 구실로 별도의 시안 마련을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감사원으로부터 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로 이관돼 정책조정 단계에 들어가 있지만 동일한 사안에 대한 두개의 법안이 조정을 거쳐 국회 상임위의 심의를 거치려면 연내 법안 제정은 힘들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법제화는 난항을 거듭하고 있지만 생명공학기술의 진행상황은 지나치게 빨라 추후에 법안이 제정되더라도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오는 12월이면 배아복제 인간이 탄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외신을 통해 들려오고 있는 가운데, 인간복제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의 클로나이드社가 바이오퓨전텍이라는 자회사를 통해 국내에 입성, 배아세포융합기인 RMX2010를 자체생산하고 6명의 국내외 연구진, 10여 명의 대리모를 인간복제 실험에 투입시키고 있다.

이 회사의 관계자는 “미국은 클로나이드의 실험실을 강제폐쇄했지만 한국은 아직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관련법이 없다”며 “인간복제를 막기 위한 법안이 시행은 아무리 빨라도 1년은 걸릴 것이며 그 이전에 복제인간이 탄생한다면 법안자체가 무력해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자국에서의 연구 진척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법제화가 미뤄지고 있는 한국을 전초기지로 삼아 인간복제 연구를 완료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진교훈 서울대 교수(윤리학)는 “난치병,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생명공학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수긍할 수 없으나, 질병 치료를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은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현재로서는 생명공학기술의 긍정적 성과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 기준을 마련, 조속히 관련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절실한 과제인 것으로 보인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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