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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내셔널은 생각의 결을 바꾸는 작업”
“트랜스내셔널은 생각의 결을 바꾸는 작업”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2.10.04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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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임지현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장

“과거 중국이 황해 연안에 대규모 핵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하자 한국 언론의 기본 반응은 발전 설비를 팔아 경제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자 바뀌었다. 원전 사고가 터졌을 때 바람의 방향에 따라 한국이 제일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의 실천성은 바로 생각의 결을 바꾸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결이 바뀌는 것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 사회의 결이 바뀌는 것이다.”

임지현 교수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의 노력 덕분에 한양대 도서관에는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코너가 따로 마련됐다. 서고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임지현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장.
임지현 한양대 교수(53세, 서양사·사진)가 소장으로 있는 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다른 대학 부설 연구소와 달리 자생적 연구소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우리 안의 파시즘』 등을 통해 역사학계의 기존 인식에 도전했던 임 소장은 2002년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대중독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6년짜리 중형과제가 연구소 설립의 단초를 제공했다. 2003년 국제학술대회를 하고 보니 인프라의 필요성을 느꼈다. 대학에서는 기존 인문학연구소를 맡으라고 했지만 독자적 어젠다를 가진 연구소로 키우기 위해 2004년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설립을 택했다.

앞의 책들과 ‘대중독재’ 프로젝트의 문제의식은 고스란히 인문한국(HK)사업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작업을 해왔었는데 그에 대한 반론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그럼 대안이 뭐냐는 것이었다. 대안까지는 모르겠지만 그 대안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인문학적 사유로서 트랜스내셔널한 시선, 트랜스내셔널한 방법론에 주목하게 됐다. 국민국가의 경계 안에 갇혔던 상상력의 폭을 넓힌다면 뭔가 대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사유방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학문후속세대 양성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 대학원에 트랜스내셔널인문학과를 만든 것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연구소를 거쳐 간 연구진 가운데 18명이 전임교수로 임용됐다. 대중독재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서양사 연구자만 8명이 전임교수가 됐다. 그만큼 우수한 인력들이 합류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들은 연구펠로우나 공동연구원으로 HK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HK사업이 끝났을 때 자생력을 확보하는 것은 모든 HK연구소의 숙제다. 비교역사문화연구소도 마찬가지다. HK사업이 끝날 즈음에는 ‘임지현’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것도 그의 꿈 가운데 하나다. “그 때는 제가 아니라 HK교수들이 끌어가야죠.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가 장점 있는 분야에서 HK프로젝트를 이끌어가고, 또 그 팀들이 이만한 규모의 연구팀을 꾸려나가고.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한국기업뿐 아니라 다른 국제재단의 연구비도 따내려고 한다.”

그가 제안했던 대중독재라는 개념은 유럽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영국에 본사를 둔 학술출판사 팔그레이브 맥밀란에서 5권짜리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지금 대중독재 사전도 만들고 있다.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역시 새로운 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임 소장은 어느 정도 자신있어 한다. “미국 쪽에서도 혁신적인 대학은 영문과, 일문과, 독문과가 아니라 그냥 ‘문학과’다. 트랜스내셔널이라는 것이 하나의 시선인데, 경계를 넘는 그런 것들이 활성화되면 장기적으로는 인문학이 그런 흐름으로 간다고 본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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