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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재정 빨간불에 U턴한 교양교육
대학재정 빨간불에 U턴한 교양교육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09.28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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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처로 돌아간 ‘교양’ … 융복합 위한 정비인가 교양 축소인가

교양교육은 학부교육 내실화의 마중물에 그칠까. 등록금 인하와 학과 구조조정이 맞물리면서 교양교육이 개편 대상 1순위로 다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불거지고 있다. 교육역량강화사업,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지원사업(이하 에이스 사업) 등 정부의 대학교육지원사업이 잇따르고, 각종 대학평가에서도 학부교육 내실화가 중요한 척도로 자리잡고 있는 시점이라 관심이 더하다.

문제는 ‘등 떠밀린 개편’이다. 독립적으로 운영해 오던 교양교육전담기관을 교무처로 다시 불러들이거나, 다른 교육기관과 통합하고 교양과목을 축소하는 방식이다.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개편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들 중에는 에이스 사업에 선정된 대학도 끼어있다. 이들 대학 관계자들은 그러나 “융·복합 교육 활성화의 초석을 마련하기 위한 체제정비 과정이지 교양교육 축소는 아니다”는 입장이다.

등록금 인하와 학과 구조조정 여파로 대학이 교양교육을 축소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참에 교양교육전담기관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논의가 공론화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양대·고려대·서울여대 ‘학과 구조조정’ … ‘교양교육’ 교무처로 원위치

“학생 수는 곧 등록금이고, 등록금은 곧 단과대학의 자체 수입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에서 소속 학생이 없는 학부대학이 (기초·융합 교과목을 포함하는) 교양교육 시스템 전반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힘든 건 당연하다.”

이형규 한양대 전 교무처장(법학과)은 교양교육전담기관의 한계를 지적했다. 한양대는 6년간 운영해 온 학부대학을 포기하고 지난해 8월, 교무처로 일원화 했다. 교양교육은 교무처 산하의 기초·융합교육원에서 맡고 있다. 학부대학의 행정조직은 그대로 옮겨놨다. 대학본부 예산으로 운영하고 교과과정 개편 권한도 가지게 됐다. 그러나 당시 단과대학별 ‘자율책임경영’을 앞둔 시점에서 소속 학생이 없는 학부대학이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배경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교양교육전담기관에서 새로운 과목을 개발하면 강의실 배정부터 부침이 생긴다. 특히 융·복합 과목을 개설할 땐 전공 교수들의 반대에 가로막히는 일이 잦다. 이 전 교무처장은 “학부대학은 소속 학생이 없는 상황에서 융·복합 과목을 개발하는데, 단과대학별로 자기 이익을 고려한 과목을 개설하려고 하니 조율이 어렵다”라고 바라봤다. 단과대학이든 학부대학이든 어느 쪽에 맡겨도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기 때문에 대학의 전체 교과과정 속에서 융·복합과목을 운영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말이다.

지난 9월 교양교육원을 교무처 산하 교양교육실로 개편한 고려대도 같은 맥락이다. 교양교육을 개발하고 융·복합 교과과정을 정비하는 역할을 교양교육실장에게 일임하되 교양과 전공 과목의 충돌을 교무처에서 조율하겠다는 포석이다.

2010년 ‘바롬교양대학’을 출범시켰던 서울여대도 2년 만인 지난해 말, 교무처 산하의 교양학부로 ‘원위치’시켰다. 등록금 인하에 따른 경비 절감 과정에서 학과 구조조정 대상이 된 것이다. 지난해 말, 서울여대는 1개 부처와 1개 단과대학을 구조조정했다. 입학처와 홍보처를 통합했고, 바롬교양대학을 교양학부로 내려보냈다. 바롬인성교육은 총장 직속기구로, 일반교양은 교양학부로 돌아갔다. 각 학과에서 커리큘럼을 개발하면 교무처에서 조정하는 방식이다. 일반교양은 커뮤니케이션 기술, 창의력, T-PBL(팀프로젝트기반학습)을 보강하는 쪽으로 개편 방향을 잡았다.

김명주 서울여대 입학홍보처장(정보보호학과)은 “바롬교양대학을 설립할 땐 인성과 교양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지만 막상 시행해 보니 조율이 쉽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학장의 역할도 줄었다. 등록금 인하를 떠안으면서까지 큰 몸집(교양대학)을 끌고 갈 순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변화도 읽힌다. 전공별로 독자적인 교양과목을 개발하도록 했다. 예컨대 경영학과에서 ‘설득과 협상’, 정보보호학과에서 ‘창의적 사고방식’이라는 각 전공 교양과목을 내고, 이들 두 학과는 융·복합 과목 ‘기술경영’을 개설한다.

가톨릭대, 교양 학점 줄이고 담당교수 3명 ‘짐싸’

교양교육전담기관을 없애면서 교무처로 이관한 대학들은 ‘조정’역할을 강조하지만, 교양교육 담당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교양-전공 간 교과과정 조정은 교무처 본연의 역할이고, 교양교육전담기관은 교양과목 개발·신규 과목 개설·평가 등을 전체 교양교육과정의 틀 속에서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교양교육전담기관의 역할 변화는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평가해야 한다고 교양교육 담당자들은 지적한다.

올초 가톨릭대는 교양교육원을 인간학교육원, 사회봉사센터와 통합해 ELP학부대학(ELP: Ethical Leaders Path)을 출범시켰다. 인성·지성·영성을 두루 갖춘 윤리적 리더를 인재상으로 삼아온 가톨릭대는 이들 기관의 통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교양교육원을 ELP학부대학에 편입하면서 가톨릭대는 기초교양필수 이수학점을 기존 22학점에서 16학점으로, 6학점 줄였다. 2학점짜리 기초교양과목인 학술적 글쓰기(CAP3: 인문학·과학 글쓰기)와 영어강독 2과목(영어1·2)을 폐지했다. 이 6학점은 교양과 전공을 포함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했다. 일단 학술적 글쓰기가 폐강되면서 ‘고전읽기-비판적 글쓰기-학술적 글쓰기’로 완성하겠다던 이른바 ‘CAP(분석력·창의력·문제해결력)시스템’이 깨졌다.

ELP학부대학 관계자는 “교양필수과목을 줄여주는 건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대신 다른 과목의 선택을 열어줬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학에서 교양교육을 맡아 온 한 교수는 “CAP1·2는 고교 수준의 교육과정이고, CAP3은 본격적인 대학 글쓰기 과정이다. 고교와 대학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던 과목인데 학생들이 어려워한다는 이유로 폐강해선 안 된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인간학교육원이 관장하던 ‘영성’은 1학점에서 2학점으로 늘었다. 기관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지난 5~7년 동안 교양교육의 판을 짜왔던 교양교육원 소속의 강의전담초빙교수 3명이 짐을 쌌다.

중앙대도 가톨릭대와 비슷한 이유로 글쓰기 과목을 폐강시켰다. 글쓰기 입문과정인 ‘글쓰기1’과 전공별 글쓰기 과정 ‘글쓰기2’ 중 ‘글쓰기2’를 없앴다. 수업의 내용과 평가가 강사마다 천차만별인데다 두 과정의 차별성에 실패했다는 평이다. 학생들의 불만도 터져 나왔다. 공과대학 학생들은 인문학적 글쓰기를 배우려고 하는데 과학 글쓰기를 배우게 된다는 답답함이다.

올해 ‘글쓰기1’만 개설하자 강좌당 학생 수가 기존 30명에서 45~50명으로 늘었다. 수강생이 반마다 많게는 20명 이상 늘어 피드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중앙대는 내년부터 수강인원을 줄이기로 했다.

일부에서는 글쓰기 과목을 축소한 배경으로 ‘재정적 부담을 덜려는 의도’를 지적했다. 조숙희 중앙대 교양학부대학장(영어영문학과)은 “전혀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다”면서도 “재정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 교양을 축소하는 건 아니다. 효율적인 운영의 측면에서 어떤 게 더 효과가 있느냐다. 글쓰기 과목을 통합하면서 한국사를 신설했다. 교양교육은 이렇게 늘 바뀌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대학의 전략 ‘투자는 예년대로, 효율은 배가’

등록금 인하 등 대내외 영향으로 교양교육에 메스를 댄 대학들은 ‘투자는 예년대로, 효율은 배가한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교양교육 육성 정책을 쓰면서 규모가 커진 상황이라 운영진 교체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양교육의 위축을 우려하는 교수들은 대학들이 교양교육의 전문성을 한층 더 높여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박현신 덕성여대 교무처장(의상디자인학과)도 공감한다. “교양교육은 최근 전 세계 주요대학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더 이상 전공의 하위분야나 행정분야로 다뤄져선 안 된다. 전문영역으로 확대해야 한다.”

손동현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전 성균관대 학부대학장)은 대학내 의사결정과정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실질적인 해법을 주문했다.

“대학에서 교양교육은 보통 ‘위원회’형태로 운영 하는데, 위원들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교무처 직원이 수업운영 하는 ‘행정업무’로 이뤄져서는 힘을 못 받는다. 교양교육 책임자가 교무위원에 포함돼야 한다. 뭣보다 책임감갖고 임하는 사람과 기구가 있어야 한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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