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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고 흥륭구 인물상, 고조선의 단군왕검과 같은 존재”
“내몽고 흥륭구 인물상, 고조선의 단군왕검과 같은 존재”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09.2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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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융합고고학과 주도 5개대연합연구팀 ‘동북아 고대’ 관련 공개발표회

인하대(총장 박춘배) 대학원(원장 이종호) 융합고고학과 주도의 5개대 연합 연구팀이 오는 26일 오후 3시 인하대 하이테크센터 지하 1층 강당에서 ‘동북아 고대 국제관계와 한민족의 선진 문화 역량’을 주제로 동북아역사재단 학술용역 연구결과 공개발표회를 개최한다. 인하대 대학원이 주최하고, 인하대 대학원 융합고고학과가 주관한 이번 발표회에서 연구팀은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를 무력화할 수 있는 주장을 내놓고 관련 사진과 유물을 공개할 계획이어서 특히 눈길을 끈다. 주 발표자는 남창희 인하대 교수(정치외교학과)와 이성규 단국대 교수(몽골어학과), 그리고 중국 고고학계를 대표하는 길림대에서 박사학위를 한 복기대 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국학과)다.

「황해 제해권과 고대 동북아 국제관계」를 발표하는 남창희 교수는 직접 촬영한 夏나라 이리두 유적과 내몽고 적봉시의 하가점 하층유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조개화폐 사진을 공개할 계획이다. 남 교수에 따르면, 하나라는 내륙국가였으므로 바닷가에서 귀하게 채집되는 카우리(개오지) 화폐는 황해를 지중해처럼 싸고 있는 해양세력이 유통시킨 화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해양세력이 바로 고조선이며, 이들의 국가 역량이 선진적이었다는 게 남 교수의 결론이다.

동북공정 논리 뒤집을 세가지 근거

이성규 교수는 발해문자와 거란 문자의 유사성에 주목하면서 중원의 한자와 구별되는 만주지역의 고유한 문자체계의 진화 과정을 소개한다. 이 교수의 발표문 「만주 고문자의 변천: 고구려, 발해, 거란의 사례」에 따르면, 고구려는 한자를 주로 사용했으나 부분적으로 변형된 고구려식의 표기법을 발전시켰고 이것이 발해에서 계승 발전됐다고 한다. 발해 문자와 거란문자는 유사성이 매우 높은데 이것 역시 거란이 발해의 변형된 한자를 이어받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대진국 발해는 해동성국이라 불릴만큼 문화적 자부심이 높았는데 한자로 자국어인 한국어를 표기하기 불편해 고유한 문자체계를 발전시킨 것이다. 중국이 발해를 일개 지방정권으로 간주하는 것은 외국의 역사를 자국사로 끌어들이는 역사 팽창주의의 표현에 불과하다는 반증이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복기대 교수의 논문 「동아시의 권력 사회 형성」이다.

복 교수는 올해 5월 내몽고 흥륭구에서 발굴된 토기 인물상이 중국 하나라보다 앞서 국가단계에 진입한 북방민족의 높은 문화수준을 보여준다고 밝힐 계획이다. 흥륭구 토기 인물상은 BC 3천년 前 신석기 후기에 만리장성 이북 사람들은 원시적인 생활을 했을 것이라는 기존 통념을 무색하게 하는 충격적인 발굴 성과다. 冠帽를 쓴 남자 소조상은 놀랍게도 반가부좌를 틀고 스님처럼 소리내어 수행을 하는 종교 지도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권력자가 수행을 하는 모습은 세속적 권력자와 제사장의 역할을 겸한 훗날 고조선의 단군왕검과 같은 존재였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번 학술발표를 이끈 김연성 5개대 연합연구팀장도 “특히 머리에 뚜렷이 한민족의 특징인 상투를 틀고 있는 모습은 홍산문화가 중국 문명의 일부라는 동북공정의 주장이 허구임을 보여준다”는 내용으로 환영사를 할 계획이다.

■ 남창희 교수의 요지 : 고대 여러 나라 간에 사용되는 문자의 확산과 표준화는 생산력이 앞서는 국가를 기축으로 한 무역관계의 확산과 관계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하나라와 고조선이 교환한 조개화폐는 당시 고조선이 황해를 무대로 한 국제무역의 주도 국가였다는 가설을 방증한다. 중원에 진시황이 통일왕조를 세운 뒤 곧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한 것처럼 중원에서의 통일 정권의 등장이 한자 사용의 확산과 표준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전 시기 춘추전국 시대에 발해만을 끼고 있는 고조선, 연나라, 제나라가 동일하거나 유사한 도폐(명도전)를 사용했던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도폐에 새겨진 문자는 한자로서는 해독되기 어려운 것으로서 이 지역이 중원과는 다른 독자적 문자를 가지고 있었음을 강력하게 방증하고 있다. 하지만 진시황 이후 통일된 문자를 배경으로 무역의 무게 중심이 중원으로 이동하면서 서서히 만주지역 문자의 사용이 줄어들고 한자로 표준화되는 현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개화폐’, 고조선 국제무역 주도 국가 시사

이러한 공용 문자라는 소프트 파워 전이현상을 다음과 같이 시대별로 정리할 수 있다. 제나라 환공기 이후 중원 동편의 구이세력이 약화되면서 비옥한 토지를 배경으로 생산력이 우월한 중원과 고조선 간에 일종의 세력전이(power transition) 현상이 일어나게 됐다. 이어 연나라와 제나라의 국력이 강해지는 반면 고조선의 국력이 쇠퇴하는 국세 역전이 가속화되면서 BC3세기부터 연나라와 고조선의 빈번한 전쟁이 일어났다. 이때까지도 환발해권은 여전히 고조선이 제해권을 장악하고 무역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진개의 번한조선 침공과 위만정권의 번조선 찬탈 후 발해만의 제해권을 상실한 고조선은 부여로 계승됐지만 국세의 쇠락을 면할 수는 없었다.

■ 복기대 교수의 요지 : 이 인물상은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중화문명탐원공정(3)’ 진행과정에서 발견됐었으며, 탐원공정의 가장 큰 성과로 알려져 있다. 이 발견으로 ‘중화문명탐원공정’은 큰 탄력을 받았다. 필자는 직접 이 인물상을 중국 현지에서 보고 왔는데 이 신상은 높이 55cm, 머리 길이 22cm, 底面 반지름 21cm, 허리둘레 65cm이다. 진흙 소상이며 연한 붉은색이다.

연한 붉은색은 강석(비균질 석회 응괴의 구성자)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전체 모양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모습이다(盤坐). 머리에 冠을 쓰고, 관 정수리 아래 가장자리에는 돌기가 한 바퀴 둘려 있다. 상투를 길게 틀어 올렸고, 그 가운데에 밧줄과 밧줄 끄트머리가 이마에 걸려 있다. 동그랗게 뜬 깊은 눈에 눈동자를 따로 빚어서 안광에 박아 넣었다. 肱에 검은 빛깔을 발라 눈썹을 표시했다.

콧마루가 곧고 넓으며 광대뼈가 높이 솟았고 아래턱은 반들반들하며 불은 안으로 들어가 입이 ‘O’자형으로 말하는 듯한 모습이다. 두 귀는 半圓形인데 오른쪽 귀 일부가 손상됐다. 양쪽 귀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귀고리를 착용한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통형 몸체는 앞으로 약간 숙인 모습이다. 등은 약간 굽고 어깨는 평평하다. 쇄골이 불거지고 乳頭 돌기를 표현했으며, 배꼽에 구멍이 뚫려 있다. 양팔은 손상됐다. 발을 안으로 모아 발바닥을 마주하고 오른손을 발에 올려놓았다.

받침대는 없다. 이 신상은 머리를 부각시키려고 한 듯하다. 얼굴을 광택 있게 하고 冠飾을 두드러지게 표현했으며 관 정수리 가운데 구멍을 뚫어 공기가 통하도록 했다. 몸체에는 구멍을 일곱 개 뚫었다. 이 문화인들이 누구인지도 추측은 가능하다. 이는 분명하게 한민족을 포함한 동이계 북방인들의 고유한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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