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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몰아세운 시장의 논리
대학을 몰아세운 시장의 논리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2.07.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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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상반기 대학가
대학구성원, 정부, 기업체 모두 대학의 변화를 요구한 2002년 상반기였다.
그러나 이들이 지향하는 변화의 방향은 각기 달랐다. 세계 경쟁력을 이야기하는 경제부처와 기업들은 대학까지 시장의 논리로 단련시켜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그리고 구체적인 행동에 나섰다. 반면, 총장 비리와 대학의 모순이 하나둘씩 불거져 나오는 가운데 교수들은 대학의 민주화와 교육의 공공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또 다시 거리로 나섰다.
한국대학의 향방을 놓고 벌어진 다양한 논의와 사건들을 되돌아본다.

좌판대에 올려진 대학교육 …교수들, 공공성 회복 촉구

‘대학개혁’ 요구가 어느 해 보다 거셌던 2002년 상반기였다. 그런데 개혁의 목소리는 교육논리를 기반으로 한 대학인들의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 말 서울대 최고자문위원단 블루 리본 패널이 “서울대의 경쟁력이 미국의 중하위권 주립대학 수준”이라는 평가를 내린 이후 시장의 논리로 무장한 대학개혁안들은 2002년 시작부터 대학교육의 기본정신부터 흔들어 댔다.

우선 재정경제부 수장이 포문을 열었다. 2월 경제 부총리였던 진념씨는 대통령에게 새해 업무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선진 일류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대학에 기여입학제를 허용해야 한다”며 물밑으로 가라앉았던 기여입학제 논의를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국가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 부총리의 교육에 대한 ‘고견’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가정에서 자란 학생일수록 서울시내 주요대학에 입학하는 비율이 높아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교육의 기회균등이 퇴색되고 있는 현실에서 ‘선진’, ‘일류’를 위해 경제력에 의한 교육기회 불평등을 제도화하자는 것과 다름없었다. 가격이 매겨지면서 대학이 서열화 될 수 있고, 심지어 일부 사학들은 ‘입학증’을 팔 수 있다는 교육계의 우려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선진’·‘일류’의 길은 시장에 있다?

부총리의 지원사격에 힘을 얻어서였을까. 사회적 비난여론을 의식해 소극적이었던 총장들의 침묵을 깨고 정성기 포항공대 총장이 4월에 열린 한 대학관련 토론회에서 ‘기여우대입학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의 재정확보가 필수적이라는 것. 절반 이상의 대학들이 학생들이 낸 등록금조차 교육비로 환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교수와 학생들은 등록금 의존율을 낮추기 위해 정부의 재정지원을 확대하자고 주장했지만 ‘기여우대입학’이라는 손쉬운 재정확충방법에 가려졌다.

한편, 경제부총리의 발언이후 경제관련 부처는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수요자 중심의 정책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을 공공연히 퍼뜨리며 대학교육정책에 딴지를 걸어왔다. 이들은 그 동안 기업들이 주장해온 대학의 ‘인재공급처론’을 그대로 수용했다. 지난해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비 가운데 공공성이 강한 기초연구에는 17.8%만 할애하고, 대부분의 재원을 당장 기업의 수익 창출로 이어지는 응용·개발연구에 쏟아 부었던 정부부처들이 이제는 ‘사회에 대한 봉사’라는 대학의 기능을 ‘기업에 대한 봉사’로 의미를 축소한 것이다.

대학교육의 최대 수요자이면서도 대학에 대한 환원에 인색했던 기업들도 관련 정부부처가 앞장서자 그 뒤를 이었다. 5월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모두 잘 사는 나라 만드는 길’이라는 차기정부 정책과제를 내놓았다. 그 내용은 △교육에 대한 공공재적 인식 탈피 △기여입학, 학생선발정원, 등록금 등 완전한 대학자율화 △국립대 민영화 △교육시장개방 확대 등. 대학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장의 경쟁논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 가운데 몇몇 사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체화 됐다. 7월 초 교육인적자원부는 단계적인 교육시장개방안으로 외국우수대학원 유치계획을 발표했다. 그 전범으로 싱가폴이 미국의 우수대학원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교육개혁에 성공하고 있다는 핑크빛 청사진을 내놓았다. 북미자유협정으로 캐나다가 대학교육을 개방한 이후 수업료는 두배 가까이 오르고, 정부지원은 줄어들었으며, 멕시코는 ‘교육의 권리보장’을 포기한 바 있지만, 교육부 ‘계획안’에서 개방에 따른 부작용과 그 대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또 기업들은 견해를 밝히는 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았는지 7월에는 대학개혁을 목표로 ‘교육발전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대기업 경영진들과 학계, 언론계 인사들로 구성된 전경련의 ‘교육발전특위’는 △산업계 요구에 맞는 우수인력 양성 △교육제도·시스템 선진화 △산·학·연 협력 활성화 등을 내걸었다. 이들은 시장원리 도입을 통한 교육기관 경쟁유도, 시장경제체제의 우수성을 교육하는 등 시장의 논리를 대학에 이식한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기업들이 채비를 하자 산업자원부가 길을 텄다. 전·현직 기업경영인 1백여명을 2학기부터 전국 대학강단에서 정규 강좌를 강의하도록 한다는 계획을 잇따라 발표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장의 공격에 대학 구성원들의 방어도 이어졌다. 지난 5월 15일 스승의 날 전국대학교수노동조합(위원장 황상익 서울대 교수, 이하 교수노조)은 민주노총 등 노동·시민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교육의 공공성을 포기하는 국립대학 민영화와 모든 교수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내모는 교수 계약·연봉제 등을 강행,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승의 날에 머리띠를 조인 교수들

그리고 열흘 뒤인 25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교수노조, 전국국·공립대학교수(협의)회, 전국사립대학교수협의회연합회, 학술단체협의회 등 7개 교수단체는 서울 종묘공원에서 “대학의 공공성 쟁취와 교수 계약·연봉제 철회를 위한 전국교수대회’를 개최하고, 국립대 민영화 계획, 교수계약연봉제 등 신자유주의적 대학정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대회에서 교수들은 “학문과 교육을 모두 시장 좌판대에 올려 놓고, 교수를 잡상인처럼 내모는 현실에 서있다”며,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앞서 3월에는 ‘교육학생연대’ 소속 학생 3천여명도 ‘등록금 인상 저지와 교육재정 확충을 위한 전국 대학생 총궐기 집회’를 갖고 “정부는 교육시장화 정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들은 ‘계약제 반대’와 ‘등록금 인상저지’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부각되면서 교수와 학생들의 집단이기주의로 폄하되기 일쑤였다. 교수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대학 환경의 변화, 근본적인 이유로 제기한 신자유주의적 대학정책, 교육 시장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은 적었다.

상반기 대학가를 둘러싼 흐름에 대해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기업들은 그 동안 대학교육의 최대 수혜자였으나 대학에 대한 투자(환원)에는 인색했다. 의무도 다하지 않은 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속에서 대학에 대한 지배(간섭)를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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