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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전당에 걸리는 시 『무알라까트(al-Muallaqat)』
신의 전당에 걸리는 시 『무알라까트(al-Muallaqat)』
  • 교수신문
  • 승인 2012.09.2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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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 『무알라까트』아랍어 원본 표지
고대 아랍의 시인 따라파 이븐 알압드는 “적들이 당신의 명예를 해치는 악담을 해댄다면, 나는 그들을 위협하기도 전에 죽음의 잔을 들이키게 할 것”이라고 노래했다. 우리에게 각인된 아랍세계는 복수와 부족 간의 전쟁, 관행이 된 유혈 투쟁, 그리고 타협을 모욕이자 수치로 간주하는 고집스러움 등으로 대표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자신과 부족의 명예를 훼손당하는 것을 가장 참기 어려워했던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가장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그리고 스스로 만족하고 타인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명예로운 인간으로 살고자 했다.

예컨대 어머니를 하대해 굴욕감을 느끼게 한 왕을, 그 자리에서 칼로 머리를 내리쳐 죽였던 고대 아랍의 시인 아므르 이븐 쿨숨은 그 불굴의 정신과 용맹함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복수와 전쟁만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명확하게 다채로운 삶의 역사와 문학적 성취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작품이 전해진다.

바로 『무알라까트(al-Muallaqat)』다. 『무알라까트』는 약 5세기경부터 7세기 초까지, 즉 소위 ‘자힐리야(Jahiliyah) 시대’로 지칭되는 시기의 시가 모음집이다. 아랍 역사는 7세기 초 아랍인 예언자 무함마드가 알라(Allah)의 계시를 받아 세운 종교인 이슬람교의 역사를 중심으로 주로 이해되지만, 아랍인들이 이슬람화 되기 이전에도 자신들의 고유한 역사가 있었다.

그래서 아랍문학의 근원을 알고자 하거나 아랍문학사의 첫 단계를 연구하고자 할 때에는 이슬람 시대가 아닌, 이슬람 이전 시대의 문학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아랍문학사에서 이슬람 이전 시대는 아랍어로 ‘자힐리야 시대’라고 지칭된다. ‘자힐리야’는 ‘無知’나 ‘경솔’, 혹은 ‘어리석음’을 뜻하는 말로, 이슬람 이전 다신교 시대를 경멸하고, 이후의 이슬람 시대와 차별하고 폄하하려는 의도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그러나 ‘자힐리야’라는 말이 붙여진 의도와는 상반되게, 그 시대에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들은 부족 단위로 유목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의 다채롭고 고유한 문화와 풍습을 갖고 있었으며, 이미 높은 완성도의 아랍어 체계가 갖추어져 일상적 소통이 자유로웠고, 그 덕분에 시인들을 중심으로 그 언어로 문학작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 시대에 구전 전승되다가 이슬람 시대에 들어와 우마이야 조(661~750년) 말기 이후 수집 편찬된 시가 모음집이 『무알라까트』다. ‘무알라까트’라고 이름 붙여진 것에 대해 다수의 학자들은 ‘걸어둔다’는 뜻의 ‘알라까(allaqa)’에서 파생됐다고 본다. 즉 ‘매우 우수한 시로 인정받아서 메카의 카으바 신전에 걸려 전시된 시’라는 뜻이다.

이슬람 이전에 카으바는 약 360개의 다신교 신상을 보관해두었던 곳으로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제의를 지내고 교역을 하는 등 문물 교류가 활발한 중심지였으니, 그런 곳의 신전에 걸릴 정도로 우수한 시가 바로 ‘무알라까트’인 셈이다. 『무알라까트』를 읽어보면, 고대 아랍인들의 삶이 결코 어느 하나의 가치만으로 함몰돼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명예를 훼손하는 모욕에 결연히 맞서는 용맹한 전사도 있으나, 사적인 복수로 인해 평화가 깨어지고 전쟁이 발발하는 사태를 우려한 평화주의자도 있다.

주하이르 이븐 아비 술마는 “당신들이 전쟁을 일으킬 때, 그것은 비난받을 만한 짓을 하는 것. 당신들이 전쟁의 불길을 타오르게 하면 전쟁은 더욱 거세게 불붙어 타오르고, 맷돌이 곡물을 갈아대듯 전쟁은 당신들을 갈아댈 것이고, 암낙타가 매해 쌍둥이 새끼를 낳듯 전쟁은 최악의 사태를 배태한다”고 경고했다.

노예의 신분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귀족의 여인 아블라와의 사랑을 완성했던 시인, 안타라 이븐 샷다드가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여인이여, 누구에게는 사랑을 허락하고 나와의 사랑은 금했건만, 부디 나와의 만남을 허락해주오”라고 노래할 때, 그리고 향락적 생애를 살았던 시인 이므룰 까이스가 “당신의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당신을 너무 사랑해 처량해진 열 조각이 난 내 심장을 향해 당신이 쏘아대는 두 개의 화살이 되고”라고 읊조릴 때, 우리는 에로틱한 사랑의 감정에 빠져든다. 뿐만 아니다. 죽음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용맹한 아랍인들도 또한 삶의 무상함을 노래했다.

시간의 위력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으로 “세월은 당신이 몰랐던 바를 당신에게 보여준다”고 고백하며, “삶이란 매일 줄어드는 보물과 같다. 흐르는 세월 속에 줄어드는 것은 결국 소멸되고 말지”라고 노래하는 대목을 읽을 때,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삶이 고스란히 그 모든 모습을 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염정삼 서평위원/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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