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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유럽에 ‘새로온 자’… ‘카피’보다 혁신의 자세 필요”
“한국은 유럽에 ‘새로온 자’… ‘카피’보다 혁신의 자세 필요”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09.17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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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어느 낙관론자의 일기』 출간 맞춰 방한한 기 소르망 파리정치학교 초빙교수

 

지난 13일 연세대 학술정보관이 들썩였다. 연세-SERI EU센터(소장, 박영렬 교수, 경영학)가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68세)을 초청해 특별강연 ‘한국인은 유럽연합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를 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로 낸 『어느 낙관론자의 일기』의 한국 발간에 맞춰 열린 행사였다. 세계 정세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자라는 비판도 받고 있는 기 소르망은 동북아시아 3국이 각자 세계 경제를 제패할 야망을 갖기보다는, 냉철하게 자신의 위치와 능력을 돌아볼 것을 주문했다.

기 소르망은 한국의 성장과 위기 극복이 인상적이었지만, 미국의 안보 우산과 중국의 변화 없이 한국 독자적인 성공노선을 추구하기는 어려우니, EU와 같은 동북아의 정치경제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모두가 EU의 위기를 말하지만 단일화폐로서의 유로화 가치가 건재함을 과시하는 것을 봤을 때, 세계경제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선두그룹에서 지혜를 모색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또 동북아 3국의 연합을 위해서는 이 지역 국가들이 역사적, 철학적 공통인식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 소르망은 현재 프랑스 볼로냐의 시의회 의장으로 재직 중이며, 이명박 정부에서 국제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당신은 일본과 중국에 비해 한국의 정체성이 서구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말해왔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본이나 중국은 지식적인 측면이나 정치적인 측면에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기껏해야 50년의 정도가 전부다.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이런 짧은 역사다. 서구에서 한국은 ‘새로온 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두 번째는 한국인, 한국정부가 한국을 알리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과 비교해보면 자명해진다. 일본은 그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정부적인 차원에서 벌여왔다. 한국은 많은 위기를 겪었고 이겨냈다. 대단하고 놀랍다고 서구인들도 느끼지만, 삼성이 한국 기업인지 아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 않다. 나는 故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현재의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국을 알리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자고 수없이 제안해왔다. 한국의 문화유산, 역사, 전통 음악 그리고 음식문화까지, 서구는 충분히 한국의 소비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잘 이뤄지지 않았다. 마케팅이 실패한 사례로 본다.”

△ 당신은 2010년 중국의 위기를 ‘부동산 거품’과 ‘고학력 청년실업’으로 지적했었다. 현재 한국도 같은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데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부동산 버블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란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에서 발생한 전세계적인 문제가 됐다. 미국의 지나친 금리인하로 달러가 쌓였고, 이 자금이 부동산에 투입되는 투기성 거품이 일어난 것이다. 거기에 유가와 원자재 가격의 폭등은 미국의 성장을 멈추게 했고, 자동차 구매력이 떨어지자 시내에서 먼 부동산들에 대한 구매력도 떨어져 부동산 붕괴가 초래됐다. 금융정책은 명확하게 사람들을 돕는 정책으로 시행돼야 한다. 은행을 살리고 사람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조언이다.

두 번째는, 한국의 경우는 몇몇의 대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구조 때문에, 중소기업이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규모의 경제는 경쟁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서비스 업종에 대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지만, 실제 경제에 장기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혁신적인 중소기업을 육성하지 않고는 청년들의 실업문제 해결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당신은 한국이 ‘하청생산국가’라고 표현했다. 이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동북아 3국, 각 나라마다 다르게 적용돼야 할 것이다. 나라마다 하나의 순환주기가 있다. 이미 오래 전에 산업화가 시작된 나라가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가 있듯이. 중국을 보라. 매년 엄청난 성장을 하고 있고, 일본은 이미 대단한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만큼은 아니다. 세계경제를 이끄는 축을 크게 보면, 미국, 일본 그리고 EU다. 중국이나 인도는 그 다음에 있다.

이것은 ‘혁신’적인 면을 놓고 봤을 때 이야기다. 일본은 이미 세계시장을 선도한 제품군들을 가지고 있었다. 초기 아이폰의 40%가 일본제품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나, 10년 후에도 통할 디자인들을 이미 개발했다는 사실은 일본이 얼마나 혁신적인 국가인지 알려주는 대표적 사례다. 한국도 물론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일본을 따라잡고 있다. 그런 면에서 중국은 전혀 아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카피’가 아니라 세계 시장을 선도해 나갈 ‘혁신’의 자세다.”

△ 한국은 지난 10년간의 진보집권 동안 민주화에 많은 진척을 이뤄냈다. 그리고 이와 성격이 다른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 12월이면 한국 대선인데.

“우선, 나는 고 김대중, 고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적으로 실패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대통령이 경제를 책임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두 전직 대통령이 한국 사회를 민주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를 도외시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세계적인 흐름도 분명히 있다. 사회적인 조화와 경제 둘 다 중요하다.

안철수 교수가 나와서 정말 새로운 것을 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대통령일 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은 자세라 본다. 단, ‘혁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가 많은 것을 바꿀 것이라고 바라기 보다는 혁신하는 능력의 한국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전략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 디지털 정보시대, 모든 정보가 오픈된다. 반면 지식의 독점화 현상도 생기는 것 같다. 지식인의 역할은?

“과연 정말로 정보 독점화가 가능하다고 보나? 구글이 정보를 수집한들, 층위를 가진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정확한 정보를 접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천재가 아닌 이상, 우리가 이런 체제에서 무언가를 정의롭다 그렇지 않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정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의 생각이라고 본다. 엄청난 정보의 양 앞에서 우리 자신의 생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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