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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團協의 씁쓸한 기억…불가능한 것 상상할 수 없나?
어떤 團協의 씁쓸한 기억…불가능한 것 상상할 수 없나?
  • 김동규 부산대 강사ㆍ철학과
  • 승인 2012.09.1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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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김동규 부산대 강사(철학)

김동규 부산대 강사
故 서정민 선생과 한경선 선생의 죽음 이후에도 시간강사(비정규교수)의 불가능한 생은 개선의 여지없이 기형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그러한 불가능성을 뚫고자, 여러 선생들이 각 대학에서 노조를 설립했고, 국회나 교육과학기술부 앞에서 연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내가 속한 부산대 비정규교수노조 역시 학교 측과의 단체협상(단협)을 통해 불가능한 생을 가능한 생으로 옮겨놓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노조원인 한 선생께서 단협에 참관하고 와서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단협에 참가한 학교 측 교수가 노조 측의 요구에 기계적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라는 대답만 반복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불가능한 생을 연명하고 있는 강사들의 부당한 상황 앞에서 일말의 사과도 없이 말이다. 비정규교수의 처우개선이 현실적으로 가능했다면, 굳이 자신의 생과 시간을 쪼개가며 투쟁할 필요가 있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라는 말은 제도와 시스템의 한복판에 선 사람만이 전형적으로 반복할 수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제도와 시스템의 실패가 출현한 곳에서 기존의 제도와 시스템은 그 실패를 바깥으로 추방시킴으로써, 자신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도와 시스템의 자기보존운동(conatus)이라 부른다. 여기서 시스템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구성요소를 부품처럼 활용하는데, 단협에 참가한 교수는 바로 그 시스템의 부품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것이다. 일말의 반성 없이 그는 부품이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베버의 관료제 비판도 바로 이 지점에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정작 시스템이나 제도가 이런 식으로 자기보존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이중의 시간성을 갖기 때문인데, 이 이중의 시간성은 과거 그리고 현재적 미래이다. 1)시스템이 기억하는 과거는 그 제도(시스템)가 처음 출현하게 된 탄생의 순간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늘 환경에 적응해야 하므로, 시스템은 지나간 과거의 시간을 매번 재해석하고 재기획해야 한다. 그래서 2)시스템(제도)은 기대지평의 시간성으로서 현재적 미래도 간직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무리 시스템이 자기보존을 중시한다 하더라도, 기존의 형태만을 고집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라는 말에는 현재적 미래의 기대지평이 전혀 고려돼 있지 않다. 현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하는 비정규교수들을 시스템의 역기능 또는 시스템의 붕괴를 조장하는 불순물로 간주해, 그저 도려내려고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현 시스템의 보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시스템은 자신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 늘 자기 바깥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이와 부단히 상호작용해야 한다. 시스템이론에서 이것이 바로 시스템의 자기보존 및 시스템의 진화(분화와 전문화)를 낳는 필수요소이다.

그렇다면 시스템의 바깥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시스템이 미처 기억하지 못한 것으로서 시스템이 망각한 과거의 시간, 덕분에 여전히 망각된 현재의 시간이다. 바로 이 망각을 기억으로 되돌리는 작업들이 시스템의 지평변화 및 진화를 가져오는 현재적 미래의 시간이다.

어쩌면 비정규교수는 바로 대학이라는 시스템의 바깥에 존재하는, 그래서 대학시스템이 주목하고 정당하게 상호작용해야 하는 사건이자 존재 아닐까. 그렇다면 비정규교수가 기존의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시스템이 현재 병리적 상태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이 신호 덕분에 시스템은 이제 자신의 병리적 상황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학교(그리고 국가)는 오히려 병을 병으로 여기지 않음으로써, 진작 투여됐어야 할 진단과 치료를 포기하고 있다. 이는 기어이 시스템의 붕괴를 야기하고 말 것이다. 비정규교수들의 투쟁이 혁명성을 띠는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많은 사상가들이 자신의 시대를 보기 위해 자신을 시대와 단절시키려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니체와 아감벤은 동시대인이 되려면 자신의 시대와 어울려서는 안 되고, 자신의 시대에 순응하지 않으며, 기어이 그 시대와 자신을 골절시키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강사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생존을 유지함으로써, 이미 이 시대와 골절돼 있다. 단협에 임하는 그 교수 역시 오랫동안 시간강사였다. 나는 그가 시스템의 부품으로 접합되기보다, 시대와 시스템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골절시킬 줄 아는 학자이길 바란다. 진정한 동시대인이기 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 역시 인간적 삶의 질과 세계의 자유를 고민하는 인문학자(역사학도) 아닌가.

그러니 그 역시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고 요구하는 인문적 자유의 정신을 시스템에 구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만한 저력이 없다면, 그는 더 이상 학자라 불릴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시스템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개 부품으로 전락하고 말 테니!

김동규 부산대 강사ㆍ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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