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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_ 예술가의 공부 또는 스승의 존재 이유
세평_ 예술가의 공부 또는 스승의 존재 이유
  • 방현희 소설가
  • 승인 2012.09.17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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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에 문예창작학과가 굉장히 많아졌다고 한다. 일반 대학뿐만 아니라 전문대학과 사이버대학에도 거의 대부분 개설돼 있다. 가히 문창과 붐이라 할 수 있다. 문예창작학과에서 배우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소설을 누군가에게서 체계적으로 배우고, 그렇게 배운 것으로 창작을 한다는 게 진정한 의미의 창작이냐고 묻는다. 문학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은 새삼스럽게 묻지 않으련다. 소설로만 국한해보자.

방현희·소설가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 중 몇몇을 빼고는 거의 책이 읽히지 않는다. 그런데 문예창작학과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서다. 글이 사용되는 각 분야에 취직하거나 이미 소설가로 등단한 사람들이 석·박사 과정을 거쳐 생활이 보장된 교수가 되기 위해 지원하는 경우도 많으니 넘쳐날 수밖에.

요즘에는 중앙 문단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들도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각종 문학상 공모를 많이 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해 지방 응모자들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런데 응모작들을 보면 소설의 형태를 갖춘 것은 1%정도나 될까. 아직도 대부분은 자기 자신과 가족을 둘러싼 소소한 이야기를 일기에서 약간 나아간 정도로 쓴 것들이다. 소설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그토록 많다니 놀랍다.

그렇다면 소설쓰기를 배워야 하는가, 하는 얘기는 뒤로 미루고 미술과 음악은 배워야 하는가, 이것부터 묻자. 미술과 음악은 전통적으로 누구를 師事했는가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나의 스승은 누구입니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것 하나로 그 사람이 얼마나 제대로 공부했는지 가늠되곤 한다. 왜냐면 미술이나 음악은 세기적인 천재가 아닌 이상 습득하기 어렵고 천재라 할지라도 기본은 착실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천재성을 꽃피울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누구에게서 공부했는가, 하는 것은 당당하게 말해지지 않는다. 혼자서 골방에서 노심초사 끝에 자기만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라고 해야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왜 그럴까. 우리의 뿌리 깊은 선입견 하나를 말하고 싶다. 한글은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한글을 터득한 사람이라면 표현하는 것은 혼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그냥 한글로 이어진 글일 뿐인가.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과 그 속에 철학과 세계관을 녹이고 그것들을 메타포를 통해 드러내는 것, 더구나 그것을 자기만의 색채로 표현해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고 그것은 혼자 골방에서 이뤄내기가 어렵다.

한문시대에도 당연히 스승을 모시고 시와 문장을 사사했다. 그것은 단지 한문이 습득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다. 박경리 선생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시를 써서 김동리 선생께 보여줬더니 선생으로부터 상은 좋은데 틀은 갖춰지지 않았다,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 라는 말을 들은 것이라고 한다. 스승이 하는 일이 바로 그 사람의 특출한 점을 발견하고 방향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소설은 거의 읽히지 않는다. 심지어 소설을 쓰겠다고 학과에 들어오고 스승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책을 읽지 않는다. 타인의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이 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 놀라운 일이다. 자기표현 욕구는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그것이 진정한 자기표현 욕구일까.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기 소통의 욕구와 자기표현의 욕망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통 불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 소통의 욕구를 가장 쉬운 도구인 한글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처리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 자주 단절당하고 자주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런데 일기처럼 죽 써나갈 때는 어떤 방해도 없다. 자기표현이란, 말 그대로 자기 자신에 관해 국한된 것을 쓰는 것이 아니다. 자기 안의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고,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알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 자기표현이다. 독서와 끊임없는 문제의식, 체험을 통해서 자기 세계를 확장해 나갈 때 얻어지는 것이다.

문학, 역사, 철학. 흔히 문사철이라고 한다. 예술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문·사·철을 공부해야 한다. 혼자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하나하나 찾아 가면서 오랜 시간을 들여 공부할 것이다. 그것을 커리큘럼에 따라 효과적으로 배우는 게 대학이다. 자기 소통의 욕구와 표현의 욕망을 구분해주고, 소설을 쓸 수 없는 사람에게는 쓸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도 스승의 역할 이다.

세상의 모든 글을 다 읽어보고 그것과 다른 것을 써라. 내가 스승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靑於藍이란 바로 그것이다. 세상의 글을 다 읽을 배짱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반드시 자기만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소설을 읽을 배짱이 없다면 소설을 쓰겠다고 하지 마라. 그 엄혹한 말을, 소설을 쓰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싶다.


방현희·소설가
2001년 계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달항아리 속 금동물고기』, 『달을 쫓는 스파이』,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 소설집 『바빌론특급우편』, 산문집 『오늘의 슬픔을 가볍게, 나는 춤추러 간다』, 『아침에 읽는 토스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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