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이른바 대선정국이다. 90일 남짓 남겨 놓은 상황이니 이런 저런 관심사와 얘기 거리가 많다. 좀 시든 감은 있으나, 안철수 교수의 대선 출마 여부는 아직도 초미의 관심사고, 그를 둘러싼 얘기들이 시중의 화제로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그 가운데 어쩐지 좀 어설프고 시대에 뒤떨어진 얘기가 있다. 박근혜 후보와 안 교수 진영 두 괹士출신끼리의, 안 교수를 둘러싼 후보 검증과 관련한 다툼의 와중에서 불거져 나온 이른바 ‘친구 논쟁’이 그것이다.
한 사람은 친구 입장에서 친구를 위해 전한 조언이라고 주장하고, 한 사람은 친구사이는커녕 안 교수를 주저앉히기 위한 협박이라고 공개적으로 맹박했다. 둘 사이에 반말로 주고받은 통화 내용이지만 정준일 전 새누리당 공보위원이 ‘후보사퇴 위협’으로 들릴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은 사실로 드러난 만큼 정 씨의 명백한 실수가 맞다. 해서 안 교수 측 금태섭 변호사가 일단 이 논란에서 우위를 점한 것은 맞는데, 뭔가 개운치 않은 것은 그 논란의 틈에 ‘친구’와 ‘우정’이 끼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점에서는 이 논쟁이 우리의 정서상 더 끈적거림을 주는 측면도 없잖아 있다. 정 씨는 금 씨와 서울법대 동기에다 일 년 터울이 있지만 사법시험과 검사생활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같이 했다. 학교도 함께 다니고 같은 직장에도 함께 근무했었으니 사회 통념상 친구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사건이 있기 전 둘 간에 주고받은 휴대전화 메시지들로 봐서도 그렇게 볼 수 있다. 정 씨는 그래서 친구사이로 우정의 측면에서 금 씨에게 조언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금 씨는 정 씨가 대학동기지만 평소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라면서 정 씨를 ‘정 공보위원, 정 씨’로 호칭했다. 한마디로 정 씨가 언급한 그런 사이의 친구는 아니라는 것이다. 둘은 학교도 같이 다녔고, 직장생활도 같이 했고, 정치권에도 같이 입문했다.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 그리고 평소에 주고받는 말로 미뤄보면 친구사이 같기도 한데, 그게 벌어진 것이다.
그 경계를 허문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정치다. 아무리 좋은 인간관계도 일단 이념이나 정치가 끼어들면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수준으로 격하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둘은 오래된 知己간이지만 정치 현실에서는 남보다 더 못한 관계로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는지 쾌도난마처럼 가늠하기는 좀 그렇다.
흔히 하는 말로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경구가 있는데, 여기에 정치를 연계시켜보면 결국 남는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일 뿐이다. 마침 독일의 철학자 니체도 오래 전에 비슷한 경구를 남겼다. “Friends, there are no friends! the dying sage. Foes, there are no foes! I the living fool.” 줄여서 말하면 ‘친구도 적도 없다’는 것으로, 니체는 이 경구를 古來로 시민을 위한 정치체제를 논구할 때마다 ‘개인 간 우정(friendship)’의 긍정적 역할이 강조된 것에 반박하기 위해 썼다.
말하자면 정치에서는 친구와 적, 우정과 증오, 사생활과 공적영역의 경계가 없다는 것인데, 친구간의 우정도 정치 앞에 서면 덕목으로서의 가치를 발할 수 없다는 얘기로,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의 우정을 강조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우정의 정치학(Politics of Friendship)’도 이 경구 앞에선 무색해진다. 어쨌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번 논란은, 정치 앞에선 친구와 우정을 논하지 말라는 경구를 다시 한 번 던져준 셈으로 치부해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