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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과 사람이 빚은 낭만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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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신문
  • 승인 2012.09.1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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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유랑ㆍ상상ㆍ인문학 (22)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물결을 바라보며(2)

▲ 산마르코 광장의 모습. 사진 중앙에 우뚝 솟은 산마르코 성당의 종탑. 전망이 좋고 이곳에서 망원경으로 알프스산맥까지 보인다

“소년이 허리에서 손을 떼어 바깥 바다를 향해 손짓을 해보이고 그 광막한 약속의 바다 안으로 자기가 앞서 둥실둥실 떠가는 것 같았다.” 토마스만의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 그 마지막 부분에 생각이 멎고. 나도 미소년의 손짓 같은 물결을 따라 이곳저곳 기웃댄다. 물결이란 뭘까. 곤돌라를 타니, 나는 그 요동에 홀렸다 풀려났다 한다. 온통 출렁대는 하나의 그물망 속에서, 쬐끄만 그물코가 돼 가만히 바깥만 응시한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 있을까. 갑자기 내 자신이 낯설어진다.

 ‘波’ 자를 두고 王安石이 ‘물의 껍데기다’라고 하니, 蘇東坡는 ‘그럼, 滑은 물의 뼈겠구먼’하고 되받아쳤다지. 아, 어찌 보면 파도는 물의 껍데기 같기도, 뼈 같기도. 일찍이 괴테는 「베니스 경구」에서 읊었다. “이 곤돌라를 나는 조용히 흔들어 주는 요람에 비교하는데/그 위의 궤는 넓은 관과 같다./정말 그렇다! 요람과 관 사이를 건들건들 오가며, 둥둥 떠/중앙 운하 위에서 우리는 근심 없이 생을 관통해 나간다”(전경애 옮김, 『괴테시전집』, 317쪽)라고. 요람이고 관 사이를 오가는 건, 바로 물결 자신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저 동성애적 고독한 흔들림. 애잔하다.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듣는, 교향곡 제5번 4악장 아다지에토의 선율처럼. 그래,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베네치아에 있다. 이 도시도 언젠가 물에 잠길 것이다. “베네치아 대운하의 맑은 물이 짙은 에메랄드빛을 띠어가는 광경이 보인다”라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선 묘사된다. 그리고 “곤돌라가 작은 운하를 따라갔다. 마치 精靈의 신비로운 손이 복잡하게 얽힌 이 동양의 도시에서 나를 인도하는 듯” “작은 길들이 그물처럼 얽히고설킨 가운데 이토록 널찍하고 장엄한 공간이 숨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못하던 … 광장이 내 눈앞으로 펼쳐졌다”라고 기술된다. 여긴, 산마르코 광장 이야기다.

산타루치아 기차역 앞 왼쪽의 스칼치다리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베네치아를 관통하는 S자 라인의 운하를 따라, 산시메온 피콜로성당, 리알토 다리를 지나, 산마르코 광장에 도달하는 길이는 4km 정도. 여기저기 운하가, 배 정박지 등에 박혀 있는 나무 기둥은, 물에 놓은 침처럼, 엉성한 듯, 멋스럽다. 리알토 다리는 베네치아 운하관광의 명소. 대운하를 굽어보며 은은한 도시의 낭만을 느낄 수 있다. 여기는 산마르코 성당 앞. 여행자들의 명소다. 광장 좌우의 오래된 카페가 있고, 무명 악사들이 흥겨운 연주를 하곤 한다. 이 성당의 종탑에서 망원경으로 보면 알프스 산맥이 보인다. 1880년 3월이었던가.

니체는 처음으로 베네치아에 왔다. 그는 산마르코 광장 가까이에 묶으면서 밖에서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곤 했다. 깃발은 화려하게 나부끼고, 산마르코 사원의 비둘기는 평화롭게 주변으로 날 때 그는 그런 순간에도 쉼 없이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았던 것일까. 거기서 ‘힘의 의지’를 느꼈던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역시 항구는 마도로스들의 정류장이자 유랑자들의 임시 정박지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현자로 에라스무스도 1507년 말 베네치아에 온다. 당시 휴머니즘을 이어주던 유력한 출판인은 각국의 출판업자와 저자 사이를 편지로 연계했다. 서재의 한 모퉁이에 불을 밝히고 편지를 쓰던 그들.

주소록과 출판 장부를 넘기며, 일에 몰두하던 사람들은 떠나고 없다. 헌데, 이곳도 당시 코스모폴리탄들의 도시다. 서재와 책상이라는 고립된 讀書 장치를 벗어나, 세계라는 개방된 책을 펴든 그들의 여행이었다. 16세기 르네상스인들은 가둘 수 없이, 울타리 없이, 떠돌며 삶을 일궜다. 그들의 주요 정박지 중의 하나가 베네치아였다. 그 배후에는 중세의 ‘자유 7과’ 다음 ‘제8의 학예’라던 인쇄술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휴머니즘을 이어주던 ‘끈’이자 지식정보의 ‘풀무’ 아니던가. 책벌레인 에라스무스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이란 휴머니즘의 숙명을 짊어지고 유럽의 여기저기를 떠돈다.

그는 1507년 로마행을 연기하고 베네치아를 방문해 번창한 인쇄업자 알두스 마누티우스에게 직행, 거기서 『격언집』을 집필, 교정한다. 이『격언집』 증보판(1508)은 각국에서 대히트를 치고 전 유럽에 그의 명성을 드날린다. 세기말까지 이 책은 130판 이상을 거듭했다니, 부럽다. 베네치아는 여기서 시작이다. 무라노 섬의 유리공예는 놓칠 수 없다. 유리를 그렇게 화려하고도, 능수능란하게 주무르는 저 기술.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건 어디서 온 걸까. 아름다움의 기법 밑, 물결처럼 사람과 세월이 빚어온 낭만적 영성이 찰랑댄다. 그 항구의 돌 문턱까지 차오르는, 유리의 황홀함을 나는 다 이해하지 못하고, 떠난다. 또 한 번 골륜탄조다.

최재목 영남대·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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