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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는 즐거움
경계를 넘는 즐거움
  • 방병선 고려대·고고미술사학
  • 승인 2012.09.1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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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고체역학, 열역학, 진동, 기계제도, 공작기계. 지금은 아스라한 기억 저편에 있는 단어들이 필자의 공과대학과 석사 시절, 강의실과 실험실에서 만나던 동급생들과의 화두였다. 당시는 격동의 시기였다. 최루탄과 데모가가 연일 귀와 눈을 가득 메웠다. 대통령이 서거하고 금방이라도 세상이 달라질 줄 알았지만 결국 학교를 군인들이 지켰고, 덕분에 수업 대신 내야했던 리포트를 마치 첩보원처럼 담을 넘어 제출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와야 했다. 당시 아크로폴리스를 가득 메운 학생들을 열광시키던 달변가들은 지금은 여야의 거물 정치인이, 꾸준히 실험실을 지키던 대부분의 공대 친구들은 벤처기업의 사장, 대학교수와 연구원으로 나라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공학적 재능이 부족했던 필자는 학기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게 해 준 시국 틈을 타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신학과 문학에 빠져들었다. 성당 안의 스테인글라스 장식에 나타난 예수 고난과 십자가의 길, 형형색색의 마리아 상은 서양미술과 역사에 관심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불교가 주를 이루던 집안 분위기에서 아마 인생의 첫 번째 경계를 넘은 순간으로 기억된다.

우여곡절 끝에 석사과정을 마치고 유학을 준비하던 무렵, 당시 이천에서 조그마한 청자 재현 가마를 운영하고 계시던 아버님의 일이 갑자기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도자기, 예술, 고려청자, 조선백자, 행복 등의 단어들이 연이어 머릿속을 지나가면서 새로운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발동했다. 결국 공학박사가 되기 위한 유학의 길을 접고 아버님 일을 돕기 시작했다. 너무도 과감하고 엉뚱했던 두 번째 경계 넘기였다.

도자기 제작 현장에 있다 보니 자연 도자기 역사에 대해서도 흥미를 갖게 됐고 이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미술사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미술의 역사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미술 감상과 미술 작품을 둘러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기술 등과 개인의 심리와 인생 전부를 학문 대상으로 하는 미술사는 생소하고 벅차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흥미진진했다. 문헌 사료를 읽기 위해 한문과 중국어, 영어, 일본어 등의 어학적 능력이 요구됐고 이는 필자에게 즐거운 도전이었다. 도자사 공부를 위해서는 예술적 심미안과 함께 다행히 공학적 배경 지식이 요구됐다. 불은 어떻게 땠을까? 유약과 태토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성형과 조각은? 중국은 만들었는데 우리는 왜 못했을까? 이런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공대를 다니며 들은 몇몇 상식들이 보탬이 됐다. 공학과 미술사는 별개가 아니고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면서 약간의 자신감을 얻었다. 세 번째 경계는 그렇게 넘기 시작했다.

석사와 박사 논문에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주제로 다루고 몇몇 학술 논문을 발표하면서 도자기 제작을 가업으로 삼는데 보탬이 될까하고 시작했던 도자사 공부는 나도 모르게 서서히 학자의 길로 안내하고 있었다. 결국 몇몇 대학의 강사를 거쳐 운좋게 지금의 대학에 교수로 자리잡는 새로운 경계에 들어서게 됐다.

교수 임용 이후 한국 도자사 연구에 있어 심각한 문제 하나가 필자를 붙들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한국 도자기를 둘러싼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 도자기의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여러 선생님들의 말씀을 다시 실감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중국어 한 마디 못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더욱 깨닫고 1년간 대만에서 홀로 귀양살이(?)를 하며 연구년을 보냈다. 국경과 마음의 경계를 넘어 중국과 중국인, 중국어의 바다에 풍덩 빠져들기로 한 것이다. 세계 최고의 중국 도자 컬렉션인 대만 고궁박물원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많은 중국학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습하고 무더운 기후와 소박함이 몸에 너무 배여 멋 부리는 걸 신경 쓰지 않았던 대만 사람들 틈에서 거의 同化가 끝날 무렵 중국 도자에 대한 감상능력과 약간의 중국어 실력을 겸비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섯 번 째 경계를 무사히넘은 것이다.

나름 중국 도자에 대한 연구업적과 실견의 경력이 쌓이면서‘내가 한국사람이지만 중국도자사를 쓴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있을까’라는 오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5년의 세월을 오직 중국 도자 연구에만 쏟아부었다. 한국 도자의 수수께끼들을 숨은 그림 찾기에서 하나 둘씩 찾아내는 흥분과 열정으로『중국 도자사 연구』를 집필했다. 며칠 전 발간이 되자마자 일본 학자에게 일본어판으로 낼 수 있는지 문의를 받고 여섯 번째 경계를 잘 넘은 것으로 안도했다.

인생에서 넘어서 안 될 경계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학문의 세계는 누구라도 그 바다에 빠져 같이 헤엄쳐 건너기를 권유하고 있다. 통섭과 융합, 그리고 교류의 시간 중에혹 건널 수 없는 영역은 구경만 해도 즐겁게 해주는 기발한 장치가 있으니까.


방병선 고려대·고고미술사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기계설계학 학사, 석사를 동국대에서 미술사 석사, 박사를 하였다. 『조선후기 백자 연구』,「명말청초 중국 청화백자 연구」외 다수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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