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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戰兢兢하는 시간강사들의 핏빛 슬픔
戰戰兢兢하는 시간강사들의 핏빛 슬픔
  • 박종식 부산대 시간강사ㆍ서양철학
  • 승인 2012.09.1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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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박종식 부산대 시간강사

박종식 부산대 시간강사
대학에 발을 디딘지 30년, 시간강사 생활도 20년이나 됐다. 시간강사는 대학 강의의 절반을 담당하지만 늘 캠퍼스의 이방인이다. 강사를 대하는 교수와 직원들의 태도와 말투는 강사 신분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시간강사는 ‘일용잡급직’이란다. 매학기 강사채용이라는 검증에 통과하기 위해서 연구논문을 써야 한다. 연구논문을 쓰지 않으면 강사 채용에서 탈락한다. 매학기 학위, 강의경력, 강의평가, 논문 등을 점수화해서 채용 검증을 하니, 연구논문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논문을 써도 시간강사는 강의하는 자일뿐, 연구하는 자가 아니라고 한다. 연구자가 아니니 연구와 관련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다. 교수들도 매 학기 이렇게 검증받지는 않을 것이다. 연구자가 아니니 연구 공간도 제공받지 못한다. 몇 개 있는 강사실은 자리가 부족하여 벤치에 앉아서 강의 준비를 하곤 한다. 차가 있는 강사는 차안이 강의 준비실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시간강사의 현주소다.

시간강사는 퇴직금도 한 푼 없고, 4대 보험 혜택도 없고, 각종 수당도 한 푼 없다. 방학동안 돈 한 푼 나올 곳이 없다. 다음 학기 강의 연락을 받지 못하면 곧바로 백수가 된다. 비정규직이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한다. 시간강사는 자신의 모든 권리를 부정당하는 노예와 다를 바가 없다. 『朝鮮八賤』에서는, 庶孼은 단지 서얼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존재와 권리를 박탈당한다. 시간강사도 단지 강사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과거의 신분제는 사라졌으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신분제도에 따른 차별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은 시간강사를 착취하는 구조 위에 세워져 있다. 전체 강좌의 절반 가까이를 강의하지만 임금은 전임교수의 1/5도 되지 않는다. 다른 비정규직은 동일 노동을 하면 최소한 정규직 임금의 70% 정도는 받는다. 대학 강의의 절반을 맡고 있으면서도 임금은 전임교수의 1/5도 안되니, 시간강사 제도야말로 현대판 노예제도다. 그렇게 적은 임금을 받고도 강의의 절반을 하니 백번 고마워해야 함에도 오히려 시간강사를 자르지 못해 안달이다. 정말 적반하장도 유만부동이지…. 대학은 시간강사를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소모품 정도로 여기고 있다. 최소한의 돈을 들여서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착취가 강사제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간강사라는 직업군이 최소한 생계를 유지하면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20살, 고2 딸이 있다. 엄청난 등록금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강의 연한제를 운운하며 언제든지 나이 많은(?) 시간강사를 ‘자르려고’ 한다.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라고 한다. 좋다. 그러면 동일한 논리를 왜 전임교수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가. 똑같이 학문을 하고, 똑같이 교육이라는 업무에 종사하는 동업자로서 시간강사 나이 50은 많은 나이이니 물러갈 나이이고, 전임교수 나이 50은 한창 나이이니 열심히 일할 나이란 말인가. 강사도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는 생활인이다. 이런 저런 핑계로 강사들을 자른다면 이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시간강사 ‘잘리면’ 이제 폐지나 빈병 주우러 나가서 노인들과 다투어야 하는 비참한 현실이 기다릴 뿐이다. 아니면 막노동판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이 얼마나 불쌍한 존재들인가!

최근 교육부가 추진하는 ‘강사법’은 악법이다. 한 대학에서 학기당 9시간 강의하면 ‘강사’가 되고, 강사 3명을 전임교수 1인으로 인정해 주겠단다. 이 악법이 시행되면 이 대학 저 대학에서 겨우 몇 시간 강의하면서도 그나마 학자로서, 교육자로서의 자긍심 하나로 살아오던 강사들이 대량 해고될 것이다. 전임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강사’들을 채용하고 나머지 다수의 강사들은 백수가 된다. 강사 지위를 높이려는 취지로 만들어진 ‘강사법’이 강사들을 대량 해고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것이 강사법에 반대하는 이유다. 강사들이 최소한 생계를 유지하면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길 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 이번 학기에는 잘리지 않을까, 다음 학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고 戰戰兢兢, 輾轉反側하는 시간강사들의 핏빛 슬픔을 헤아려 주소서.

박종식 부산대 시간강사ㆍ서양철학
부산대에서 박사를 했다. 저서로 『비판적 예술이론의 역사』, 역서로 『칸트해석-이원론의 문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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