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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대학’ 피하기 위한 학과장들의 몸부림
‘부실대학’ 피하기 위한 학과장들의 몸부림
  • 글·사진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09.10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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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된 지표경쟁 … 교육마저 ‘취업’에 밀렸다

학과장들은 점점 ‘취업률 관리자’로 분하고 있다. 차기 학과장들에게 ‘당황하지 말 것’을 조언할 정도다. 사진은 국민대 캠퍼스.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취업률 경쟁은 ‘돈 싸움’이에요. 교육과학기술부가 시행하는 ‘대학구조개혁’이 2~3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취업률 몇 %를 넘겨야 ‘부실대학’을 피할 수 있을지 대학들이 종잡을 수 없죠. 대학 간 지표경쟁이 너무 뜨겁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이 짓(취업률 경쟁)을 한 10년만 하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지 않을까요?”

부산의 A대 사회계열 ㄱ학과장은 “대학이 취업률을 올릴 뾰족한 수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있으면 알려달라는 기세다. ㄱ학과장이 취업률 경쟁을 ‘돈 싸움’에 비유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A대는 졸업생 3천여 명 중 ‘교내 취업자’가 8.8%에 달했다. 취업률도 전년대비 14.3%p 올랐다. A대의 재작년 교내 취업자는 1.4%에 불과했다.

지난달 31일, 교과부 산하 대학구조개혁위원회(위원장 이영선)가 ‘정부 재정지원제한대학(하위 15% 대학)’과 ‘학자금대출제한대학’ 총 43곳을 발표했다. 평가지표 논란이 다시 타오르고 있다. 특히 평가비중 20%에 달하는 취업률 지표다. 이영선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은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서 “취업률은 대학이 학생에게 제공해야할 ‘미니멈 서비스’”라고 말해 취업률 지표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에둘러 표현했다.

“대표님, (저의 제자) 4대 보험 가입, 안될까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취업률. 경쟁의 최일선에서 발로 뛰어온 학과장들은 “취업률 경쟁은 그야말로 ‘지표경쟁’일 뿐”이라며 “최근 들어그렇게 강조하던 ‘교육’도 ‘취업’에 밀려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취업했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교과부가 제시하는 취업률 통계에 잡히는 쪽으로 취업하라고 독려하는 게 학과장의 임무죠. 학과마다 취업전담팀이 꾸려지고 취업담당 직원이 붙어요. 대학 입장에서도 평가에서 빠져나갈 수 없으니 ‘목숨 줄’을 거는 겁니다. 대학의 목표도 새롭게짜였습니다. ‘취업 다음에 교육’으로….”

지난 학기, 대구의 B대 인문계열 ㄴ학과장은 기업체에 전화를 돌리거나 방문하는 일로 바빴다. 중소기업을 방문해서 취업청탁을 주로 했지만 다른 대학의 학과장과 조금은 달랐다. 학생들이 인턴형식의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업체에 전화해서 정규직으로 바꿔줄 수 없는지, 4대 보험이 안 돼 있으면 보험을 들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실제 취업률에 반영되도록 관리하는 게 ㄴ학과장의 주 업무였다.

학과장이 단독으로 기업체와 MOU(양해각서)를 체결 하라는 지령이 떨어진 곳도 있다. “차기 학과장들은 난감할 거에요. 특히 학교에 오랫동안 근무했던 교수들은 완전히 달라진 학과장의 역할을 이해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특히 학생 취업과 관련, 기업을 찾아가서 MOU를 체결하라는 지시를 받으면 황당하겠죠.”

전북지역 C대 인문계열 ㄷ학과장은 얼떨떨했다. MOU 개념과 절차부터 터득(!)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본개념을 숙지한 ㄷ학과장은 지역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친구에게 대표와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해당 기업에서 제자들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면 학과 혹은 대학에서는 급하게 필요한 인력을 제공하겠다는 일종의 ‘잡 매칭’계약이다. 지난 1년 동안 ㄷ학과장은 무려 3개 업체와 MOU를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론 두세 개 학과만이 MOU에 성공할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다. MOU에 실패한 교수들은 취업청탁을 목적으로 옛 제자의 회사를 방문하려고 서울까지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교수들, 취업청탁시키는 게 ‘지표 개선?’

대학은 ‘부실대학’을 피하려고 갖은 정책을 강구하지만, 취업을 못해 답답한 건 결국 학생들이다. 지난 4일, 강의실로 향하던 국민대의 한 학생이 발걸음을 멈추고 섰다.
대학은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전략에 묶여있다. 막무가내식 취업률 끌어올리기도 ‘지표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교수들이 연구와 교육에 쏟을 시간이 줄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승진도 해야 하고 논문을 채워야 하는 부담이 많은데, 대학 자체에서 워낙 취업률이 화두에요. 그러다보니 ‘연구는 네가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분위기죠. 일단은 ‘부실대학’에 지정되면 안 되니까, 연구와 강의 시간을 줄여서라도 ‘취업업무’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충청지역 D대 상경계열 ㄹ교수는 지난해 2학기부터 학과장을 맡고 있다. 부교수 승진심사를 2년 앞두고 있다. 학과장을 맡기 전인 지난해엔 등재후보지 이상에 논문 2편을 투고했다. 올해는 출간이 확정된 논문이 1편도 없다. 논문을 들춰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취업대책회의에 불려 다녔다. 연구실에 돌아오면 학과 교수들과 또 회의를 했다. 특히 취업률 조사에 임박한 5월과 12월에는 학생상담하고 기업체를 찾아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취업청탁’업무다. 더구나 ㄹ교수는 충청지역에 연고가 없어 쩔쩔 매야했다. 학과장들이 모인 총장 면담 자리에서 지적을 받기도 했다. 교수로서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지만 ‘부실대학’에 들어가지 않는 게 우선이라서 삼켜야 했다.

실시간 업데이트되는 ‘취업률 전광판’ … 학과구조조정의 전초전

대학가는 ‘취업률 60%’를 안정권으로 보고 있다. 대학알리미를 통해 분석해 보면 건강보험DB 기준이 도입된 2010년부터 최근 3년, 취업률 60%면 30~50위권이다. 53% 이하면 하위 30% 그룹에 속할 확률이 높다. 최소한 55%는 넘겨야 한다. B대는 학과별 취업률을 우편과 이메일로 통보했다. D대는 교내 전산망에서 실시간으로 교수와 교직원들에게 공개하는 방법을 썼다. 두 대학 모두 취업률을 학과평가에 집어넣어 ‘학과구조조정’에 반영한다. B대는 이르면 올해 말부터 시행할 ‘성과급제’에 취업률을 포함시킬 계획이어서 취업률 평가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ㄷ학과장은 취업한 학생들에게 ‘USB’같은 작은 선물이라도 해주려고 했다. 어려운 시기, 제자가 사회에 자리 잡았다는 게 대견해서가 아니다. 학교의 명예를 살려줘서다. 학과장들은 “교과부 인증의 ‘부실대학’은 면했지만, 정작 대학이 부실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글·사진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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