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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없이는 못사는 두 얼굴의 나약한 인간
가면 없이는 못사는 두 얼굴의 나약한 인간
  • 이상용 영화평론가
  • 승인 2012.09.03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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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 변화하는 영웅의 조건

셈 레이미가 만든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스파이더맨의 숙모는 그가 도시를 구하는 영웅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영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들려준다. “누구나 영웅을 좋아하지. 영웅을 받들고, 그를 찾고, 그의 이름을 외치고. 시간이 지나면 몇 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그 얘기를 하겠지. 자기가 영웅과 같은 시대에 살아왔던 이야기를 말이야. 누구나 자신만의 영웅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이러한 영웅의 의미를 오늘날 한국사회에 맞게 번역해 보자면 일종의 ‘멘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자존심을 보증해주고, 믿음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며, 때로는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한 것이어서 사람들은 맨토를 만나는 경우보다는 자주 멘붕에 빠진다. 그 덕분에 멘토(욕망)와 멘붕(현실) 사이에서 관객들은 가상의 맨토를 찾아 극장으로 향한다. 영웅의 신화가 벗겨진 지 이미 오래지만 할리우드는 이 갈망을 해석하는데 수많은 자본과 천재들을 투자하였다.

하늘을 나르고, 너무나 윤리적인 영웅의 모습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르네 지라르의 모방이론에 따르면, 모방하려는 대상과 ‘나’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오히려 영웅의 조건은 굳건해지고, 흠모하는 마음은 단단해진다. 숙모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영웅은 자신을 정직하게 만들고, 자신을 강하게 만들고, 숭고하게 만들지. 그리고 마지막엔 자랑스럽게 죽어 가겠지.” 나와는 전혀 다른 극단적인 차이야말로 영웅을 갈망하게 만드는 역설적 조건이 되는 셈이다. 그들이 하늘을 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으며, 윤리적인 숭고함을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하지만, 영웅의 숭고함만으로는 계속해서 관객을 사로잡기가 쉽지는 않다. 할리우드가 창조한 20세기의 대표적 영웅 슈퍼맨이다. 그는 지구인이 아니라 외계인이다. 이러한 설정 덕분에 슈퍼맨이 보여주는 윤리적 태도는 지구 밖에 존재하는 신과 흡사한 느낌이었다. 리처드 도너가 만든 슈퍼맨 오리지널 1편을 보면 죽어버린 자신의 연인을 구하기 위해 지구의 자전을 거꾸로 돌려 시간을 거스르는 결말 장면인 꽤나 인상적이다. 시간을 돌리는 모습은 슈퍼맨의 눈에서 광선이 나오는 것과는 다른 신의 역사적 개입을 상징하는 결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관심을 끄는 할리우드의 영웅들은 맨얼굴을 드러내기보다는(물론 슈퍼맨에게도 변장술이 있다. 안경을 쓰고 벗는 변장술을 통해 신문기자 클라크와 슈퍼맨 사이를 오간다), 가면을 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을 가면을 쓸 때 비로소 영웅이 된다. 가면의 필요조건을 웅장하게 다루는 영화가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배트맨 시리즈이다.

「배트맨 비긴즈」로 시작된 ‘다크 나이트’ 삼부작은 부유하지만 트라우마로 가득 찬 부잣집 도령 부르스 웨인을 전면에 내세운다. 현실 속 부르스 웨인은 오만하고, 도망치기를 좋아하며, 독선적인 판단을 한다. 그것은 고스란히 배트맨의 성격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약점은 배트맨이라는 가면을 썼을 때 강력한 힘과 결단력으로 전환된다. 동일한 인간의 심리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가 인간이라는 가면을 썼는지 배트맨의 가면을 썼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배트맨에게 가면은 인간적 약점을 보완해주고, 나아가 악당들에게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구실을 한다. 그렇다면, 가면은 어떻게 제작된 것일까.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핵심이다. 그것은 자본과 과학기술에 의해 제작된 슈트를 통해서 가능해졌다. 배트맨의 단단한 몸은 과거 할리우드 영화가 선보였던 ‘하드 바디’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이다. 원래 하드바디는 월남전을 다룬 「람보」와 같은 영화에서 과도한 근육질의 몸을 내세우는 할리우드 영화의 영웅 캐릭터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과거 영웅들의 하드바디가 단련된 신체 자체였다면 배트맨은 돈으로 치장한다. 그런 점에서 배트맨의 슈트와 가면에는 순수함의 열정 따위는 없다.

오히려 배트맨 가면을 쓰기 위해서 웨인과 같은 갑부가 아니라면 도저히 꿈꿀 수 없는 환상의 영역으로 자리한다. 그리고, 이 불가능성은 악당과 배트맨의 거리를 가깝게 만든다. 히스 레저의 연기가 돋보였던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가면을 쓰지 않았지만 가면이 피부처럼 변해버린 ‘웃는 얼굴’이다. 그는 웃으면서 무차별적으로 악을 행한다. 물론, 조커의 얼굴을 가면이라고 인정해도 쉽사리 영웅과 악당의 거리가 좁혀지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분명 내밀한 차이가 있다. 조커의 페이스는 가지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거부감이고, 배트맨의 가면은 도저히 가질 수 없다는 현실을 환기시키는 각성이다. 그러나, 둘 다 소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일으킨다. 무엇보다 인물들이 이 점을 강조한다. 조커는 배트맨이 정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악)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 점은 또 다른 캐릭터인 하비 덴트를 통해 강조된다. 검사에서 악당으로 변신한 하비는 두 얼굴을 지닌 인물이다. 사법적 정의와 폭력적 정의가 교차하는 그의 동전던지기는 ‘정의라는 가면’이 서로 다르게 놓일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지난 이라크 전쟁의 빌미가 화학무기였다면, 결과적으로 이라크에 화학무기가 발견되지 않았을 때 찾아온 공허함은 선과 악의 구별이 무력해지는 경험이었으며, 그들은 각자의 가면을 쓰고 활약하는 영웅과 악당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미국의 패권주의는 탈레반 혹은 자하드가 없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은 영웅이었던 셈이다.

이 가면의 정체는 결국 영웅을 성공으로 치닫게 하지 못한다. 신의 형상을 한 슈퍼맨을 대신하여 가면을 입혔지만 영웅담은 언제든지 가면을 벗어던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크나이트」 시리즈는 영웅의 성장과 몰락의 서사로 요악할 수 있는데, 첫 작품인 「배트맨 비긴즈」는 배트맨이 어떻게 가면을 쓰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기원의 드라마였다. 두 번째 작품 「다크 나이트」에서는 악당 조커를 부각시키면서 이에 맞서 사력을 다하는 배트맨의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지만 배트맨의 사명감에 충실하다. 삼부작의 마지막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악당 베인은 너무나 강력한 탓에 배트맨이 오히려 무력해 보인다. 전편에서 사랑했던 연인 레이첼을 잃은 후 브루스 웨인은 오랫동안 배트맨으로 활동하지 않았다. 조커라는 악당이 사라진 탓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복수를 결심한 이후 또 한 번의 애도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가면을 쓰는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젊은 날의 영웅이 아니다.

이 영화를 공간에 따라 읽을 수도 있다. 「배트맨 비긴즈」가 현실을 앞세우는 브루스 웨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면, 「다크나이트」는 한 밤의 어둠 속에 활약하는 젊은 영웅담이었다. 그런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대결 장면들은 낮에 펼쳐진다. 낮으로 내려온 영웅은 머지 않은 시간에 가면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영웅은 「스파이더맨2」의 피터 파커처럼 가면을 벗어던진 이웃집 청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가면이 벗겨진 스파이더맨을 보며 사람들이 말한다. “우리랑 똑같잖아” 어쩌면, 영웅은 오래된 역할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악당을 위협하기 위해 가면을 썼지만, 그들의 가면을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우리의 마음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배트맨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자 가장 허약한 배트맨이 등장한 3부에서 감독은 떠오르는 밤의 기사(「다크 나이트 라이즈」)라고 이름 붙인다. 이 해체의 역설을 끔찍이 사랑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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