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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도 맡고 말귀도 알아듣는 별종
냄새도 맡고 말귀도 알아듣는 별종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2.09.03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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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69 새삼

▲ 새삼’은 완전기생식물이다. 이 식물이 새삼스럽다라는 말과 관련 있을까?
식물이면서 다른 식물에 빈대 붙어 천연덕스럽게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별난 녀석이 있으니 새삼이나 실새삼 같은 완전기생식물이다. 새삼(Cuscuta japonica)은 메꽃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덩굴성식물로 전 세계의 온대·열대지방에 100~170종 남짓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새삼, 실새삼(C. australis)이 있었으나 요즈음 미국실새삼(C. pentagona)이 들어와 아주 널리 퍼져 흔하게 본다고 한다.

보통 ‘dodder’라 부르는 이 식물을 서양에서는 마귀창자, 마귀머리털, 마귀곱슬머리 따위로 불리며, 숙주식물을 오른쪽으로 감아 오른다. 누르스름하거나 황갈색인 굵은 철사 꼴의 덩굴이 다른 식물을 칭칭 휘감으며, 줄기지름은 1.5㎜ 정도로 흔히 자갈색 반점이 퍼져있다. 나무에 기생뿌리를 박고 기생하면서도 일부 광합성을 하는 반기생식물인 겨우살이와는 다른 別種이다.

이들은 누가 봐도 정상적인 식물이 아니다. 다른 숙주식물에 찰싹 들러붙어 돌돌사리고 올라가는 넝쿨식물로 이파리는 퇴화해 2mm정도의 비늘 꼴을 할 뿐이며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가 숫제 없다. 헌데, 시치미 뚝 떼고 빌붙어 사는 주제에 하얀 작은 꽃을 8~10월에 이삭모양으로 여러 개 모아 피우니 꽃식물이다. 꽃잎 5장, 수술 5개, 암술 1개, 암술머리가 2개인 종자식물로, 열매는 朔果(삭과, 열매 속이 여러 칸으로 나뉘고 각 칸에 많은 씨가 듦)이고, 종자는 지름 4mm로 달걀모양이다. 익으면 들깨만한 흑갈색의 종자가 몇 개 나오니 兎絲子라 부르며 약재로 쓰고, 무척 딱딱하며 흙속에서 5~10년을 거뜬히 견딘다고 한다. 씨앗 발아는 다른 식물들의 것과 다르지 않아 처음엔 줄기뿌리가 모두 생긴다.

完全寄生하기에 발아 후 5~10일 안에 녹색식물을 만나지 못하면 바로 죽어버리지만 임자식물을 만나 자리를 잡으면 이제까지 임시로 쓰던 뿌리를 서슴없이 냉큼 잘라버리고 만다. 흥미진진한 녀석!? 눈 가리고 술래잡기 할 때 두 팔을 벌려 무작위로 들입다 더듬거리듯이 줄기차게 발버둥 치다가 드디어 옆에 있는 토마토 같은 숙주식물의 줄기에 ‘손끝’이 간신히 닿았다하면 단박에 덜미 잡힌 숙주식물줄기를 내리 친친 감는다. 혹시나 할금할금 할겨 본 건 아니었을까. 이젠 감은 줄기에서 생긴 현미경적인 가짜뿌리를 처맨 宿主식물의 줄기관다발에 틀어박아 양분과 물을 빼앗는다. 그런 주제에 꽃피우고 씨까지 맺는다니 이런 기찬 일이 있담? 주로 칡이나 쑥, 자주개자리(alfalfa), 亞麻, 토끼풀, 토마토, 국화, 달리아, 담쟁이, 페튜니아들이 숙주이며, 이따금 얽힌 줄기가 투망 치듯 숙주를 마구 덮쳐 급기야 여지없이 말려 죽이는 수가 허다하다.

나쁜 놈. <Scientific American>(2012년 5월호)에 ‘식물이 냄새를 맡는다!’라는 제목으로 새삼 생태를 다루고 있었다. 과연 식물끼리 서로 냄새나는 휘발성 화학물질을 분비하는 것일까? 연거푸 실험해 본 결과 새삼은 절대로 빈 화분이나 가짜식물을 심은 화분 쪽으로 자라지 않고 반드시 토마토가 심어진 화분을 향해 줄기를 뻗었다. 새삼이 과연 토마토 냄새를 맡는 것일까? 그래서 밀폐된 새삼화분과 역시 완전히 둘러싼 토마토화분 사이에 작은 관을 이어봤더니만 언제나 새삼은 토마토 냄새를 맡고 그 쪽으로 자라더라는 것.

게다가 냄새가 자극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綿棒에다 토마토줄기에서 뽑은 즙액을 묻혀 새삼 옆에다 세워뒀더니만 역시 그 쪽으로 성장하더란다. 또 왼쪽엔 새삼의 숙주식물이 아닌 밀 화분을, 바른쪽에는 토마토 화분을 놓아두었더니만 역시 숙주식물인 토마토 쪽으로 굽어가는 것을 관찰하였던 것. 도대체 푸나무도 낯을 가리는 것일까! 만일 잎을 갉아먹는 곤충이 달려들면 버드나무나 리마콩들이 화들짝, “놈들 쳐들어온다”하고 딴 친구들에게 경고를 보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혹시 버드나무에 나방유충이 공격하면 가까이에 있는 버드나무에는 다른 나방유충이 얼씬도 않으니, 벌레에 먹혀 상처 난 나무가 성한 나무에게 “조심하라, 방어하라!”라고 페로몬 물질을 공중으로 날린다.

그러면 신호를 받은 쪽은 서둘러 나방유충이 싫어하는 페놀이나 타닌, 또는 유충의 성장을 억제하는 물질을 잎사귀에 듬뿍 만든다. 그런가하면 곤충이 먹으러 달려들면 덜컥 잎이 축 쳐져버려 맛을 쭉 빼버리기도 한다는데, 뿌리나 잎줄기가 서로 닿지 않는데도 그런다. 지금껏 이렇게 뻔질나게 서로 냄새로 의사소통하는 식물엔 포플러나무, 단풍나무, 오리나무, 보리, 산쑥들이 있는 걸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람들 눈이 멀고 귀가 먹어 식물세계를 속속들이 다 들여다보지 못한다. 또 다른 요즘 실험에서, 리마콩은 딱정벌레들이 달려들면 이른바 냄새를 내 뿜는 것은 물론이고 꽃에다 딱정벌레를 잡아먹는 곤충이 좋아하는 꿀물을 담뿍 만든다고 한다. 이거 정말 어안이 벙벙하다. 어쩜 식물이? 냄새를 풍기는 것도 그렇지만 후각신경이 없으면서 냄새를 맡고 말귀도 알아듣는다니…. 이렇게 새삼도 통상 냄새를 맡고 숙주식물을 찾는단다. 식물이라 얕보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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