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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윌슨 또는 정신을 과학으로 설명하기
에드워드 윌슨 또는 정신을 과학으로 설명하기
  •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명과학과
  • 승인 2012.08.2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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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인간은 영혼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존재다. 20세기 과학의 발전에 따라 인간의 정신은 진화과정을 통해 우리의 신체와 뇌에 고정된 결과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주장의 선두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이 있다. 그는 1975년에 『사회생물학』을 그리고 1978년에 『인간 본성에 대하여』를 저술했다. 『사회생물학』에서는 주로 인간 이외의 종에 초점을 맞췄으나 이후 윌슨은 인간에게 관심을 돌려 유전적 진화가 문화, 성 그리고 공격성 등에 관한 인간의 행동양식을 어떻게 추동하는가를 논한 『인간 본성에 대하여』를 내놓았다. 특히 저자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를 통해 생물학과 인문사회과학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자 노력했다. 그는 “인간의 행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려면 인간 정신의 미로 속에서 주제들을 도출해내고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과학적 발견 과정 자체를 포함하고 있는 인문학도 고려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윌슨은 종교와 윤리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사회행동은 결국 생물학적 현상에 불과하며 집단생물학과 진화론적 방법론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류가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다면 인류는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유전적 우연과 환경적 필연이 빚어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을 관장하는 뇌 역시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했기 때문에 특정한 심미적 판단과 종교를 선택하는 능력도 그와 동일한 기계론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 주장한다. 즉 인간의 정신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장치이며 이성은 그 장치의 다양한 기능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윌슨은 문화적 행동 역시 유전적 진화의 적용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현대인의 사회적 행동은 인간 본성의 단순한 특징들의 모자이크이며 특정 상황에 따라 점멸하는 반응들의 스펙트럼이라 할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공격성이란 신경계 내에서 각기 별도의 통제를 받는 서로 다른 반응들의 배열을 의미한다. 같은 종의 구성원 사이에 일어나는 공격 행동은 대부분 군집의 과밀화에 대한 응답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동물들은 생활사의 특정 시기에 먹이나 보금자리 같이 희소해진 필수품의 지배권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격성을 사용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공격 행동은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구조적이고 예측 가능한 상호작용의 한 유형이다. 문화는 공격성에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하고 특정 집단의 행동통일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공격성의 문화적 진화는, 공동체가 지닌 특정한 유형의 공격성을 학습하도록 편향된 유전적 성향과 환경의 요구 그리고 특정한 문화적 혁신을 채택하도록 하는 그 집단의 역사 등이 통합돼 이끄는 것으로 윌슨은 해석하고 있다. 또 다른 인간 본성의 주요한 주제가 성이다.

성의 복잡성과 다의성은 성이 본래 번식용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세균은 이분법으로, 곰팡이는 수많은 포자를 형성해 자손을 퍼뜨린다. 대다수의 동물 종은 기계적으로, 그리고 최소한의 전희만으로 성행위를 한다. 생물계에서 쾌락은 동물들로 하여금 교미하게 만드는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性 자체는 어떠한 직접적인 다윈주의적 이익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성은 왜 진화한 것일까. 답은 성을 통해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성과 그 결과인 적응도는 왜 그렇게 많은 종류의 생물들이 유성생식을 통해 번식을 하는지 설명해준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주위에 도움을 주는 이타주의는 어떻게 해석할까. 혈연선택은 맹목적 이타주의를 설명하는 자연선택의 일종이다. 물론 인간의 사회적 진화는 유전적이기보다는 문화적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인간 사회에서 강하게 표출되는 근원적인 감정들은 유전자를 통해 진화한다. 이타주의 중에서 철저하게 자기 파멸적인 것은 없다.

인간이 자신의 가족 및 친족에게만 맹목적이라면 지구 전체의 조화는 극히 제한적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더 큰 조화와 사회적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계산적이며 이것이 목적적 이타주의다. 숭고한 도덕 가치들의 문화적 진화가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자체 추진력을 획득해 진화를 대체할 수 있을까. 도덕 가치들은 인간의 유전자 풀에 미치는 결과에 따라서 불가피하게 속박된다고 윌슨은 설명한다. 흥미롭게도 윌슨은 종교 행위도 생물학적 이익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종교는 위대한 능력이 있음을 주장하는 집단의 확실한 구성원 자격을 인간에게 부여함으로써 개인적 이익에 부합되는 삶의 목표를 제공한다. 신앙은 현대 생활에서 신화의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 고대로부터의 신화들을 하나씩 붕괴시켜 왔기 때문에 이제 신화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발판을 딛고 서 있다. 즉 현재 인류는 신앙 자체가 자연과학의 설명 대상이 되는 시점에 도달해 있다고 윌슨은 선언한다. 과학은 자연세계를 설명하고 제어하는데 성공을 거둬 왔다. 생명과 정신은 물리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물리학 법칙들은 생물학 및 사회과학 법칙들에 부합되며 인과적 설명 사슬로 연결될 수 있다. 과학자들과 인문사회과학자들은 발견의 항해에 나서는 교양인들이 나아갈 원대한 목표를 체계화하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명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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