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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지식 풍경 벗어나야 세계지성 다산을 만날 수 있다
한국적 지식 풍경 벗어나야 세계지성 다산을 만날 수 있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07.19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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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탄신 250주년 기념 다산학국제학술회의 풍경
▲ 출처 : 김호석 화백이 2009년 그린 다산 초상화. 전남 강진 다산기념관 소장.

다산 정약용, 장 자끄 루소, 클로드 드뷔시, 헤르만 헤세. 네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유네스코가가 지정한 올해의 문화인물이란 점이다. 2012년은 다산 정약용(1762.6.16~1836.2.22) 탄신 250주년이 되는 해다.

학계도 조선이 낳은 천재 실학자 다산을 재조망하는 각종 학술대회로 분주하다. 우선 지난달 9일 고려대에서 한국한문학회와 한국실학학회, 실학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다산 연구의 새로운 모색’이라는 대규모 학술대회가 있었다. 50여 명의 국내 연구자(실학, 철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법학, 행정학 등)가 모여 다산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발표했다. 이는 다산 자체가 문헌학으로부터 예학, 경학 등 ‘세상의 모든 학문’에 능숙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교수신문> 649호)

지난 5일부터 3일간 코리아나호텔·한국프레스센터에서 다산학술문화재단이 주관한 국제학술대회 ‘세계유산: 다산프로젝트’도 이어졌다. 국내외 학자들이 모여 다산의 일상, 정치이념, 신학, 텍스트 등 다양한 층위로 다산학에 관한 담론을 풍성케 했다. 오는 10월이면 다산학술문화재단에서 지난 10년 가까이 매진해 온 『여유당전서』 정본화 사업도 완료된다.

 다산을 바라보는 국내외 학자들의 시선

다산학술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이번 학술대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산을 바라보는 국내외 연구자의 시선 차이다. 국내 연구자들이 간찰을 비롯한 다산의 텍스트와 일상, 가족 계보, 문학 등 조선사 속에서의 다산을 다뤘다면, 외국 연구자들은 동아시아 유학의 흐름 속에서 다산의 위치를 정립하려고 했다. 黃俊傑 대만 인문사회고등연구원 원장은 기조강연 「동아시아 유학 중의 다산학: 21세기의 시각에서」에서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다산을 포착해냈다.

그는 2천500년 전 중국 산동반도에서 기원한 유학이 동아시아로 확산된 점에 주목했다. 2천 년간 보편적 가치와 지역별 특수성을 갖게 된 ‘동아시아 유학’은, 조선에서 국교의 지위를 획득하고, 중국유학과 일본유학의 중개자 역할을 했다는 것. 동아시아 삼국의 유학사 지형도를 그려낸 그는 그 안에서 다산학이 차지하는 위치를 ‘천주교와의 접촉’과 ‘유학의 새로운 방향 개척’에서 찾았다. 다산의 사상이 워낙 방대해 여러 방면에서 접근할 수 있지만, 동아시아 유학사 중에서 헌 것을 융합하고 새로운 것을 주조해 낸 전승자의 역할에 무게를 실었다.

“동서남북의 가운데에 있으면 어디든 다 중국이다. 소위 ‘중국’이라는 것은, 요순우탕의 다스림이 있는 중국이다. 공안사맹의 학문이 있는 것이 중국이다. 오늘은 무엇으로 ‘중국’이라고 부르는가? 성인의 다스림이나 성인의 학문은 동국에 옮겨졌으니 멀리가서 구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여유당전서』2권)

지리적 위치로 ‘중국’을 정의하는 것을 반대했던 다산은 문화의 가치와 이념으로 국가 간의 정치적 장벽 혹은 군사적 충돌 해소를 주장했다.

黃俊傑 원장은 다산의 주장이야말로 21세기 세계 질서의 재건에 시대적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다산전문가인 김상홍 단국대 석좌교수(한문교육)는 「다산의 문학 연구」에서 그동안 주요 연구의 성과를 한국, 북한 및 중국 순으로 정리하고, 연구과제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김 교수는 1862년, 득세하는 탐관오리 문제로 신하들이 철종에게 『목민심서』를 추천한 것을 근거로 들어 다산 사후 26년에도 이미 다산 연구의 중요성이 존재했음을 밝혔다.

 

 

 또한 김 교수는 부국강병을 꿈꿨던 고종이 『흠흠신서』·『경세유표』 등을 저술한 다산과 같은 위대한 인물과 동시대에 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고 지적하면서,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4년에 걸쳐 『여유당전서』 전질 154권을 발행한 것이 다산 연구의 기폭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1945년 광복 이후, 다산 문학을 주목했던 洪以燮을 시작으로 시론, 문장론을 연구했던 1970년대의 김지용, 김상홍, 그리고 강진 유배 시절의 교육활동 및 성과를 조명한 1980년대 임형택 등으로 이어지는 다산 연구의 계보도 정리했다.

다섯 가지 다산 문학 연구 과제

김 교수는 다섯 가지의 다산 문학 연구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는 해설 일색인 연구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국애민의 정신이 내재된 사회시만 다산시로 분류할 것이 아니라, 주제별, 장르별로 폭넓게 연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둘째는 다산의 산문 연구가 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연구분야를 지적한 셈이다. 셋째는 소실된 다산시를 발굴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다산이 50세(1811)부터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에 돌아온 57세(1819)까지 8년간의 문학적 공백기를 복원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넷째는 다산의 한글 시조집에 대한 연구다. 이는 새로운 다산 연구의 지평을 열어줄 것으로 예측된다. 마지막으로 남북간 공동 연구이다. 김 교수는 북한에서 국책과제로 다산 연구가 진행된 경우가 있으므로, 공동연구가 다산학의 계승과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다산의 일생과 사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리플릿도 선보여 학회 참가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처음 선보인 이 ‘지식의 지도’는 문화총괄기획팀 캠프21에서 기획했다. 다산의 ‘사상지형도’는 생애, 경학 등의 산발적인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정확한 체계에 의해 표를 갖춘 것으로 누구라도 이 지도 한 장이면 대략적으로 다산학을 탐험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초·중·고·대학생까지 볼 수 있지만, 연구자들도 이 지도 한 장이면 한 학기 강의가 가능할 정도로 지도의 방향과 표지판이 명확하며 충실하다. 이주행 다산학술문화재단 선임연구원은 이 지도를 영어, 일본어로 번역해 수출할 예정이며, 앞으로도 원효, 퇴계, 율곡 등 전통 사상가, 지성의 지도도 만들어 해외 전시 및 공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학술대회 마지막 순서는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한문교육)가 좌장을 한 집담회였다. 각 세션의 사회자들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세션별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만을 나누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흘러 아쉬움을 자아냈다. 2012년에 다산의 학문이 유효기간이 끝난 것인지,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에서는 최진덕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인문학부)가 “다산이 근대지향성을 가지고 있다면, 근대화가 일단락된 지금으로서 다산의 시효가 다 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했지만, 다산이 추진했던 기획이 다 이뤄지진 않았고, 실현된 근대로서의 기획과도 거리가 있었다는 반박이 이어졌다. 논쟁의 불씨가 제대로 점화되지 못한 셈이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동양철학)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는 기존 전통의 연구틀에 갖힌 다산학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연구를 가능케 하도록 푸코 등의 새로운 학자들과 자유롭게 비교하는 작업도 과감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 교수는 다산 하면 강진, 양수리 등의 유배지가 먼저 떠오르는 것이 민주화 과정의 트라우마라고 지적하면서 다산을 한국의 지식 풍경에 가두지 말 것을 주문했다. 다산의 ‘사상적 세계시민’으로서의 면모를 부각하자는 주장으로 읽힌다.

▲ 오백만자로 풀어낸 『여유당전서』

 

 

두 번의 다산탄신 25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지나갔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우선 퇴계 이황처럼 중심연구소와 지역거점별 연구소가 유기적으로 연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재 다산관련학회는 다산학술문화재단과 강진에 위치한 연세대 국학연구원 부설 다산실학연구소 정도다. 지난달에 다산학술대회를 주최한 곳은 한국한문학회와 한국실학학회, 실학박물관이다. 이 단체들의 공통점은 ‘다산’을 주목하지만, 각각의 설립취지가 다르다. 꾸준하고 응집력 있는 연구를 위해서는 통일된 연구 체계가 필요해 보인다. 또 그간 국학에만 집중됐던 다산 연구의 확장이다. 김신자 빈 대학 교수의 노력으로 다산을 유럽 학계에 제대로 알리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내외 학자들간의 체계적인 공동연구 필요성을 깨우쳐주는 사례기도 하다.

일단 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을 기념하는 생일상은 성대하게 차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행사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전체의 아젠다가 지정돼야 하고, 이에 따른 로드맵과 구체적인 수행계획, 그리고 이를 운영해 나가는 거시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국가의 일부 보조나 민간재단의 재원을 통한 산발적 연구가 진행된다면, 300주년 학술대회의 풍경도 2012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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