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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가 ‘썩은 나무’에 비유하며 제자를 꾸짖은 이유
孔子가 ‘썩은 나무’에 비유하며 제자를 꾸짖은 이유
  • 박원호 고려대 명예교수·중국근세사
  • 승인 2012.07.1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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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비평

<교수신문> 644호(2012.5.14)에 사마천 『사기』 「공자세가」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공자를 ‘상갓집의 개'에 비유한 부분)를 소수 학설로 재해석했던 박원호 고려대 명예교수가 고전번역에서 텍스트 외부의 맥락(컨텍스트)을 중시하면서 『논어』 「공야장편」부분을 통설과 달리 설명하는 글을 기고했다.

『논어』 「公冶長篇」을 읽다 보면, 공자가 제자 宰予를 호되게 꾸짖는 장면이 있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서도 엘리트인 재여는 어느 날 낮잠을 잤다가, 스승으로부터 평생 잊기 어려운 모욕적인 꾸지람을 듣게 된다. 『논어』를 통틀어 봐도 공자가 제자에게 ‘썩어빠진 나무’니 ‘똥거름 담장’이니 하며 제자를 질타하는 장면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 대목에 대한 원문부터 살펴보기로 하겠다. 宰予晝寢, 子曰,“腐木不可彫也, 糞土之牆, 不可朽也. 於宰予何誅!” 子曰, 始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宰予改是. 상상력과 통찰력은 번역자가 갖춰야 할 소양

2005년에 <교수신문>이 ‘최고의 고전번역을 찾아서’를 기획연재 할 때, 30명의 전문 교수들에게 “대학생 수준에서 읽기 좋은 『논어』 번역본을 추천해달라”고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동양고전연구회와 유교문화연구소의 번역본이 가장 신뢰할만한 『논어』 번역본에 선정됐는데,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두 번역본의 역문을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재여가 낮잠을 잤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담장은 흙손질할 수 없다. 재여에 대해서 무엇을 책망하겠느냐? 처음에 나는 사람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믿었는데, 지금 나는 사람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까지도 본다. 재여를 보고 이렇게 고쳤다.(동양고전연구회) 재여가 낮에 자거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에는 새기지 못할 것이며, 썩은 흙으로 쌓은 담은 손질하지 못 할 것이니, 재여에게 무엇을 꾸짖겠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내가 사람에 대하여서 그 말을 듣고 그 행실을 믿었으나, 이제 내가 사람에 대하여서 그 말을 듣고 그 행실을 살펴보게 되었으니 재여 때문에 이를 고치게 되었다.(유교문화연구소) 공자가 재여를 꾸짖은 말과 다음 공자가 남의 말을 들으면 이제 그 실천까지 지켜보게 됐다는 고백은 시간이 한참 흐른 후의 일로 보인다. 필자는 번역에서도 역자는 언어지식에만 기대려고 해서는 안 되고, 역시 상상력과 통찰력을 갖춰야만 좋은 번역을 할 수 있다고 평소에 믿고 있다. 사마천이 『史記』에서 언급한 공자 제자 77명 중 『논어』에 등장하는 인물은 오직 29명 뿐이다. 이 29명 중에서 다시 핵심 제자들로 한 그룹을 구성한다면, 이들이 이른바 ‘十哲’로 불리는 이들이 될 것이다. 「先進篇」에는 “德行: 안연(顔淵, 顔回), 민자건, 염백우, 중궁. 言語: 재아(宰我, 宰予), 자공. 政事: 염유, 계로(季路, 子路). 文學: 자유, 자하”를 꼽았다. 공자는 신분사회에서 “교육에 신분의 종류는 없다[有敎無類]”를 외치며, 평민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교육을 보급시켰던 선구자적인 교육가이기도 했다. 이러한 위대한 교육가가 후일 ‘十哲’ 안에 포함되는 유능한 제자에게, 낮잠을 이유로 심한 모욕을 준 일은 필자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재여는 자공과 더불어 辯舌에 뛰어난 인물이었고,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문장을 자랑했던 것 같다. 조금 고집스러운 면이 있으면서도 대담한 성격의 소유자로 상상이 된다. 재여는 공자에게 “3년喪은 너무 길지 않습니까? …… 1년(喪)이면 족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당돌한 질문도 할 수 있는 청년이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3년喪中) 쌀밥 먹고 비단옷 입는다면, 네 마음이 편하겠는가?” “편할 것 같습니다” 이 대답에 심기가 틀어진 공자는 “군자는 초상을 당하면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가 않으며 거처도 편치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를 않는 것이다. 이제 자네가 편하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게”라고 했다. 재아(宰我, 곧 宰予)가 방을 나가자 공자가 말했다. “재여의 不仁함이여! 어린애가 태어나 3년 이후라야 부모의 품을 벗어날 수 있다. 무릇 3年喪이란 천하에 두루 행해지는 喪禮이다. 재여도 부모의 품에서 3년간 사랑을 받았겠지!”(『논어』 「陽貨篇」) 『논어』에는 子路가 주로 공자로부터 면박 당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또 자로도 가끔 볼멘소리로 스승의 모순되는 언행을 지적하고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자로는 공자와의 나이 차이가 불과 9년 밖에 나지 않았으나, 재여는 공자보다 무려 29세 아래였음에도 스승에게 자기 견해를 분명하게 개진하는 성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여가 ‘낮잠’을 잤다는 이유로, 공자가 제자에게 그렇게 모욕적인 언사를 구사할 수 있을까. 여기서 필자는 소수 학자의 해석에 불과해 정설이 되지 못한 완전히 다른 해석에 초점을 맞춰 보고자 한다. 극소수 학자들이 외롭게 주장해 온 이 해석에 더욱 힘을 실어 주기 위해, 필자는 글자가 지니는 뜻과 용법을 검토해 보기로 하였다. ‘잠을 자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漢字는 대체로 睡, 眠, 寐, 寢의 네 글자가 이리저리 조합돼 사용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 의미와 용법에 미묘한 차이도 있으므로, 다음과 같이 특징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쪾睡: 눈을 감고 앉은 채 졸며 자는 모습에 전형적으로 사용됨. 현대중국어에서도 ‘따커수이[打 睡]’는 “꾸벅 꾸벅 졸다”는 뜻이다. 쪾眠: 누워서 눈을 감고 잠들어 있어 지각이 없는 상태를 이름. 마취약을 ‘眠藥’이라고도 한다. 쪾寐: 네 글자 중 가장 적게 쓰이는 글자임. ‘寤寐不忘’이나 “‘夢寐’에도 잊지 못할”이란 말 속에서 그 용법을 짐작할 수 있다. 쪾寢: 이부자리와 베개 등 寢具가 갖추어진 잠자리에 많이 쓰임. 寢牀, 寢室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글자이다. 『삼국지연의』 35회에 “현덕은 수경의 말이 생각나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웠으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玄德因思水鏡之言, 寢不成寐]”란 말 속에서 ‘침’과 ‘매’의 용례를 아주 잘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다. 유비는 잠을 자기 위해 이불 속으로 들어갔으나[寢], 근심이 많아 좀처럼 잠을 이룰 수[寐]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여가 ‘晝寢’을 했다는 말은 결국 대낮에 침구를 깔아 놓고 낮잠을 잤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제자의 ‘말 재주’에 실망한 공자 만약 오후에 몸이 나른해진 재여가 잠깐 ‘낮잠’에 곯아떨어지는 바람에 공동체 생활에 지장을 줬다면, 공자가 그토록 혹독한 비난을 퍼부었을까. 그리고 ‘午睡’라는 더 적절한 글자를 두고, 왜 ‘晝寢’이란 무거운 표현을 써야 했던가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이곳의 ‘寢’은 ‘同寢’을 의미함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즉 재여는 백주 대낮에 어떤 여인과 동침을 하고 온 사실이 드러났던 것이다. 반드시 재여 한 사람을 지목해서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공자는 “젊은 시절에는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않은 상태이니, ‘色’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논어』 「季氏篇」에 남기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된 이 ‘宰予晝寢’에 대한 공자의 어투를 보아, 재여가 이전에도 유사한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었다는 것을 行間에서 읽어 낼 수 있다. 공자가 일과시간에 행해진 재여의 ‘동침’을 알고 이를 질타했지만, 실은 이제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 재여의 ‘말 재주’에 더욱 실망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된다. 학문은 다수결이 아니다. 필자는 자기 해석만이 반드시 옳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글을 발표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고, 설득 당할 수 있는 더 나은 해석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수 학자라도 그들과 보조를 함께 할 것이다.

 

박원호 고려대 명예교수·중국근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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