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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보다 ‘마음의 작동’이 독자를 움직였다
‘개성’보다 ‘마음의 작동’이 독자를 움직였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07.10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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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편집자가 뽑은 문제작 ⑧ 동녘사이언스

 

동녘사이언스는 동녘(대표 이건복)의 자회사다. 1977년 이태복 씨가 설립한 광민사를 1980년 그의 동생 이건복 씨가 인수해 동녘으로 문패를 바꿔 달고 『영국노동운동사(상·하)』 등과 마르쿠제의 평론 모음집 『위대한 거부』 등을 펴내면서 전문 사회과학 출판서로 발을 내딛었다. 그 동녘이 2007년에 새로운 브랜드 출판사로 들고 나온 게 바로 ‘동녘사이언스’다.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지구온난화를 둘러싼 대논쟁』 등의 문제작들을 내놓았다. ‘사이언스’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동녘사이언스는 사회과학보다는 ‘과학’ 일반에 좀 더 손을 내밀고 있다.

이곳 편집자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책은 심리학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개성의 탄생』(곽미경 옮김)이다. 저자는 1998년 ‘양육 가설(The Nurture Assumption)’에 관한 주장을 담은 책을 출판함으로써 학계에 논쟁과 더불어 큰 반향을 이끌어낸 인물이다. 이 책에 이어 발표된 것이 바로 1997년 작 『개성의 탄생』이니, 출간 직후 곧바로 번역에 착수한 책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인간의 독립성과 개성을 추적하고 있다.

그녀는 개성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관계, 사회화, 지위라는 3가지 체계에 의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인지과학, 역사학, 범죄학은 물론 곤충학까지 넘나드는 그녀의 연구 역량이 새로운 학설과 주장을 뒷받침하는 동력이 됐다. 저자는 인간의 개성과 차이를 설명하는 프레임인 본성과 양육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저자는 심리학의 핵심 질문에 이렇게 도전한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개성과 행동이 다른가?” 같은 유전자를 지니고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개성이 다른데 단순한 본성·양육의 프레임으로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저자는 진화심리학과 인지과학의 연구 결과를 기초로 모듈 형태의 마음 이론을 전제로 삼는다. 모듈 형태의 마음 이론이란 ‘마음은 단일한 기관이 아니라 여러 기관으로 구성된 하나의 체계로, 각 기관은 심리적 기능 또는 마음 모듈’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개성이 모두 다른 이유로 관계 체계, 사회화 체계, 지위 체계를 제안한다. 우호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관계 체계, 집단의 성원이 되려고 하는 사회화 체계, 경쟁자를 앞지르려고 하는 지위 체계가 우리들을 모두 다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책 자체로는 무게감도 있고, 내용도 매우 급진적이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박상준 기획편집부 차장은 “아카데미에 소속돼 있지 않은 독립연구자인 저자가 쓴 책이지만, 뻔한 틀을 부수려는 시도가 좋아 선택했다”라고 번역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어판 표지에 에곤 쉴레의 그림을 사용했더니, 왜 그 그림을 사용했는지를 설명해 달라고 저자가 이메일을 보내와, 편집자가 부랴부랴 A4 1장 분량의 답변을 보내기도 했다. 박상준 차장은 “독립연구자가 어떻게 연구할 수 있고,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라고 아쉬워했다. 아마도 이것은 ‘개성의 탄생’을 뒷받침하는 저자의 다양한 학제적 연구 내용과 우리 독자들과의 시선의 차이에서 빚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호응이 좋았던 책 역시 번역서인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김한역 옮김)였기 때문에 ‘독자들의 이해도’만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

이 책은 진화심리학계를 대표하는 학자인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의 대표작이다. 영문판은 1997년 출간됐다. 특이하게도 이 책은 핑커의 저작에서 『언어본능』(영문판 1994년 출간)과 『빈 서판』(영문판 2002년 출간) 사이에 있는 책인데, 한국에서는 이들 책이 먼저 출간되고,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나중에 출간됐다. 박상준 차장은 “이 때문에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얘기가 낡은 것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962쪽이라는 엄청난 분량과 4만원이라는 상당한 가격에도 독자들의 반응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어떤 연구자는 “서점에서 책을 보자마자 사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빈 서판』은 모든 사람이 백지 상태로 출발해 개인들 간의 차이가 선천적이 아니라 경험에서 발생한다는 ‘타불라 라사’를 비판한다. 반면 이 책은 마음을 역설계(reverse engineering)하는 과정을 보여 주면서, 자연선택에 의해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설명한다. 여기서 역설계란 대상을 분해하고 구조를 분석해 그 설계로 거꾸로 파악해가는 기법을 말한다.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자연선택이 우리 조상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식량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사물, 동물, 식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직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설계한 기관들의 연산 체계가 바로 마음이다.

이를 통해 예술, 종교, 창의성, 열정 등 인간 마음에 대한 가장 만족할 만한 설명들을 종합해 냈다는 것이다. 이 책과 『빈 서판』은 원래 5년의 간격을 두고 쓴 핑커의 핵심 저작이기 때문에, 두 책을 함께 읽을 때 핑커가 그리는 커다란 그림을 멀리서 넓게,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다. 소박한 의미에서의 ‘마음에 대한 궁금증’이 책을 선택하게 한 것도 있지만, 사회생물학-진화생물학 등 다양한 논의가 교차하는 시절이란 점도 한 몫 거들었을 것 같다. 같은 진화심리학 계열 책인데도 이처럼 명암은 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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