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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知者樂水, 仁者樂山’의 저편에 서다
동양적 ‘知者樂水, 仁者樂山’의 저편에 서다
  • 최재목 영남대ㆍ철학과
  • 승인 2012.07.09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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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유랑ㆍ상상ㆍ인문학 ⑳ 유럽의 산과 물을 둘러보며

알프스 산록. 가파른 지형과 산의 절벽이 보인다. 서양의 산은 동양과 달리 결코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척박하고 무서운 이미지다. 사진=최재목

유럽의 지붕이라 부르는 알프스의 정상 융프라우요흐에 오른다. 융프라우(Jungfrau)는 ‘처녀’, 요흐(Joch)는 ‘峰=봉우리’의 뜻. 산악열차를 타고 멀리 보는 산은 아름답지만, 깎아지른 듯한 지형, 척박한 땅은 무언가 정겹지만은 않다. 눈 녹아 흐르는 계곡은 물살이 급하고, 푸르지 않다. 어두운 청색이랄까. 손발을 담그고 느긋이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곳도, ‘살어리 살어리랏다. 靑山에 살어리랏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라는 정겨운 산도 아니다.

우리가 흔히 읊조리는 ‘知者樂水, 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한국 사람은 한 걸음 더 나간다. ‘靑山도 절로절로 綠水도 절로절로/山절로 水절로 山水間에 나도 절로/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金麟厚의 時調). 이쯤 되면 山-水-人間은 모두 ‘절로절로’에 얹혀 아무 ‘간극’이 없다. 이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一體無間의 직관은 지극히 ‘동양적’인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처럼 수평적, 개방적, 합리적, 동적(역동적-변모), 외적-지식 지향적이란다. 어디론가 멀리 흘러 뻗어 나가는 물처럼 부단한 자아실현의 길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반면, 어진 사람은 산처럼 수직적, 보수적, 정적(안정적-장중), 평화적, 내적-덕성 지향적이란다. 자신을 움직이려 하지 않는 산처럼, 고요한 깊이, 사색과 성찰의 길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이처럼 山과 水의 이미지는 각기 맛깔스럽다.

산은 우리에게 언제나 귀의하고픈 이상향이다. 살아있을 땐 정겹게 오르내리다가 죽고서도 거기 편히 몸을 묻고 싶은 곳 아닌가. 그윽하고 또 그윽한 ‘玄之又玄’의 깊고 깊은 산일수록 더 좋다. 세속으로부터 멀어진, 고요하고 아득한, 깨끗한 곳은 높은 정신적 단계에 오를 수 있는 최적의 수행 장소라 본다. 그래서 도인들은 산꼭대기로 올라가 신선처럼 天界에 닿기를 꿈꾸었다. 천상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바로 深山幽谷. 그래서 산은 상승, 지위, 권력의 이미지로도 연결된다.

스위스의 필라투스 산. 산세가 가파르다. 사진=최재목

그런데 서양의 산은 동양과 달리 결코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척박하고 무서운 이미지다. 중세 유럽에는 악마가 사는 장소거나 추악한 대지의 혹이거나 지옥처럼 공포의 대상이었다. 처음 알프스산을 등정하려고 했던 페트랄카는 산에 오르는 것이 신을 모독하는 짓이라는 말을 듣고 중단했단다.

그렇다. 서양에서는 등산 또는 방랑이 저주받은 네덜란드인, 유대인, 집시의 행태로 경원시되었다. 이것은 알프스산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산이 오랫동안 사유지였다는 점과 연관된다. 사유지인 산을 개방하는 ‘자유로운 산’ 운동은 19세기 말에서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이는 사회 전반의 반권위주의적 추세와 결부된 것이다. 그 이전 서양의 산은 로빈 후드의 숲처럼 도둑이나 범죄자의 은신처였다. 단테의『신곡』에서처럼 하늘은 천국이지만 산은 연옥으로, 오르기에 힘든 곳의 이미지였다. 19세기까지 서양의 자연은 종교, 역사, 신화의 소재이긴 했으나 그림의 소재가 되진 못했다. 간혹 자연을 그리는 경우에도, 17세기의 화가 클로드 로랭이나 푸생처럼, 이상적·도덕적인 완벽한 자연으로 표현되었다. 이런 반인간적-부정적인 산의 이미지를 처음 인간적-긍정적인 것으로 바꾼 것은 18세기엔 프랑스의 루소, 19세기엔 영국의 워즈워스와 독일의 니체였다.(박홍규, 『구스타프 클림트, 정적의 조화』, 58~59쪽)

니체는 해발 3천500m 알프스 유리엘 파스 산정을 모델로『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다음 序說을 썼단다. ‘짜라투스트라가 나이 서른이 되었을 때 그는 그의 고향과 고향의 호수를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자기의 정신과 고독을 즐기며 10년 동안 조금도 지치지 않고 지냈다’. 산에 기대고 물에 기대온 우리들의 감각에서는 니체가 산속에 들어가서 지냈다는 언급이 뭐 그리 유별난 건 아니다. 그러나 ‘靑山에 살어리랏다’는 식의 樂山 관념이 없는 서양의 전통에서 ‘짜라투스트라가 10년을 산 속에서 지냈다’는 설파는 대담한 것이다.  

유럽의 이곳저곳을 돌면서 나는 느낀다. 하늘과 구름과 노을, 흙과 나무, 안개 모두 동양의 느낌과 다르다는 것을. 지금의 내 눈에만 그렇게 비친 건 아니다. ‘산 모습, 물 빛깔은 나라마다 다르다’(제5권 제83장)고 ‘이와쿠라사절단’의 수행원이었던 구메 구니타케(久米邦武)는『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에 적었다.

알프스 산록의 호수. 물이 어두운 청색이다. 사진=최재목

그는 더 관찰한다. ‘모름지기 물이라는 것은 푸른색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구미의 땅을 돌아보건대, 영국의 물 색깔은 거뭇거뭇하고, 스위스의 물은 어두운 청색이고, 스웨덴의 물은 짙은 청색이다. 물의 색깔은 토지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략) 참으로 드넓은 땅에 펼쳐진 자연이 가는 곳마다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다채로운 풍경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제2권 제32장) 다시금 나도 이국적인 낯선 서양의 산수를 우리네 것과 대비해본다. 그건 분명 동양적 ‘知者樂水, 仁者樂山’의 저편에 있는 것이 아닐까.

최재목 영남대ㆍ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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