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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심리학의 유쾌한 ‘통섭’이 던지는 시사점
미술과 심리학의 유쾌한 ‘통섭’이 던지는 시사점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07.05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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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편집자가 뽑은 문제작 ⑦ (주) 사회평론

1993년 출발한 (주)사회평론(대표 윤철호)은 이름 그대로 ‘사회적 문제’와 연관된 단행본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역사와 문화, 예술, 인문 관련 책들도 자주 출간했다. 요즘은 고고학과 미술사와 관련된 무게 있는 책들을 내놓고 있다. 이들이 꼽은 저평가된 책과 호응이 좋았던 책은 무엇일까.

‘색채 현상의 본질을 규명하고 색과 인간 생활과의 상호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풀이되는 ‘색채학’은 우리에게 여전히 생소한 분야다. 단순히 색의 성질을 이해하는 데서 더 나아가 색채에 대한 반응들, 생리적이며 심리적인 현상과 미학적 현상까지 다루는 폭넓은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물리학에서 출발해 미학으로 이어진다고도 보고 있다. 사실 이 분야와 관련된 기왕의 책들은 대부분 배색 이론이나 색채 치료 등 제한적인 영역에 치중해 있었다. 색채에 대한 종합적 접근은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색채학을 비교적 일찍 탐구한 외국의 경우에도, 색채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보다는 몇 개의 부분으로 범주화된 접근이 주를 이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주) 사회평론 편집팀은 이런 저간의 사정을 고려해 영국 케임브리지대 미술사학부 학부장을 지낸 존 게이지(John Gage)의 색채에 대한 통합적인 연구를 국내에 소개하기로 기획했다. <네이처>지도 “미술에서 색채를 진지하게 공부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존 게이지의 모든 저술을 읽어야 한다”라고 보도한 바 있을 정도로 존 게이지는 이 분야의 독보적 연구자였다.

김천희 주간은 “존 게이지의 연구를 소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책의 출간은 출판사의 자체 판단도 작용했지만, 미술사 분야 연구자들의 권유가 계기를 만들어줬다. 이들은 국내에도 색채학과 관련해 종합적인 고찰이 담긴 텍스트가 필요하다, 존 게이지의 Colour and Culture(Univ of California Press, 1999)가 독보적이라는 추천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선뜻 달려들 수 없었다. 김천희 주간은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무겁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Colour and Culture의 축약본 느낌이 강한 Colour and Meaning(Univ of California Press, 1999)를 번역 출간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그렇게 해서 출간된 책이 『색채의 역사: 미술, 과학, 그리고 상징』(한수진·한재현 옮김)이었다. 저자는 책에서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대의 미술작품, 공예품, 의복, 건축 등 색이 들어가는 대부분의 것들을 통해 색채를 고찰한다. 따라서 저술 과정에서 접근한 문헌 또한 그 양과 범위가 방대하다. 여기에 미술 이론과 기법, 작품과 작가론은 물론 미술사, 미학, 철학, 문학, 사회경제사, 문화사, 심리학와 같은 인문학적 고찰에 광학, 화학과 같은 자연과학적 방법론까지 말 그대로 색채와 관련해 종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종합했다. 김천희 주간은 “출판사로서도 욕심이 나는 작업이었다. 제대로 소개할 수만 있다면 그간 부분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었던 색채에 대해서 종합적인 통찰을 줄 수 있는 작업이었다"라고 술회했다.

학계와 현장 양쪽에서 모두 중요하게 읽히는 텍스트를 낼 수 있는 기회긴 했지만, 또 그만큼 어려움이 뒤따르는 일이기도 했다. 김 주간은 “방대한 범위를 다양한 방법론으로 분석해 들어간 작업을 번역한다는 것이 번역자에게는 큰 부담이 됐다”라고 말했다. 이런 부담 때문인지 결국 편집자들의 기대와 달리 반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설명은 이렇다.“원서가 지닌 방대함, 난해함으로 인해 번역에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학계와 현장의 반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여전히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다소간 욕심이 많았던 텍스트가 아니었나 하는 판단을 해본다.”

사회평론이 내놓은 기대와 달리 호응이 좋았던 책은 지상현 한성대 교수의 『한국인의 마음』이다. 저자는 학부에서 미술과 디자인을 공부하고 학위는 심리학으로 한, 이를 테면 이론과 실제를 통합한 연구자다.

그의 이전 저작들도 대부분 심리학에 기반한 뇌과학을 통해 미술과 디자인의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소개하는 것들이었다. 권현준 팀장은 “그런 그에게 처음 요청한 것은 한국 디자인사 저술이었다. 하지만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저자의 방법론으로 우리 전통 미술 작품 속에 내재해 있는 일관된 원리를 찾아, 이것을 한국인의 감성 기질, 즉 심리적 기질과 연결해보자는 작업으로 이야기가 확장됐다”고 책의 탄생을 설명했다. 출판사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국내 저자가 국내 사례를 통섭적으로 바라본 텍스트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지 교수는 1년간의 구상을 통해 모델을 연구했고, 저술을 시작했다.

저자는 주로 한국과 일본의 민예품과 전통 미술작품을 비교하고, 이를 심리학과 뇌과학의 방법론으로 고찰해 양국의 집단적인 감성과 심리를 도출해내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도출됐다. 저자는 거리를 순식간에 광장으로 만드는 열정을 보이다가도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평가를 듣기도 하는, 모순돼 보이는 한국인의 감성 기질을 ‘매닉친화형 기질’로 정리해냈다. 이것은 다시 역사적으로 우리 민예품과 미술품에 내재돼 있는 심리적 코드와 접목돼, 미술작품을 읽어내는 새로운 관점과 시선으로 거듭났다.

주제와 방법론의 참신성, 이론과 실제의 결합, 미술작품과 심리학의 통섭이라는 호기심을 끄는 소재, 무엇보다 지금 현재 우리의 삶과 연결된 내용이어서 살짝 기대됐다. 그러나 편집에 풍부한 시간을 투자하지 못해 원고의 맛을 100% 살려내지 못했던 아쉬움이 걸렸다. 권현준 팀장은 “국내 저자가 이런 통섭적인 관점으로 우리의 사례를 분석해나가는 과정은 거의 없었고, 방법론에 있어서도 인문학과 과학을 종합적으로 사용해 객관성을 확보한 점, 무엇보다 학술적인 연구를 대중적인 글로 풀어낸 저자의 감각 등이 상승 작용을 일으켰던 것”이라고 선전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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