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0:05 (금)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66 학습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66 학습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2.07.02 18: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움은 일종의 생존수단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크게 보아 자극을 감지하고 용케도 후딱 행동을 바꾸는 것을 學習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환경)은 번번이 변하기에 항상 같은 자극이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적당한 행동 변화(반응)를 일으키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해진다. 이렇듯 배움은 속절없이 일종의 생존수단인 셈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 하지 않는가. 그럼 동물세계에서 공부와 앎이란?

동물의 행동(behavior)에는 빛이나 화학물질 따위(자극)의 방향으로나 반대방향으로 이동하는 走性(taxes), 등골·무릎이나 동공(눈동자)이 일으키는 무조건반사(autonomic reflex), 어미젖을 빨거나 집을 짓고 먹이를 잡는 등 태어나면서 갖고 있는 본능(instinct) 같은 것은 하등동물들의 선천적 행동으로 유전적인 것이다. 반면 반복된 경험에서 얻어지는 학습(learning)이나 대뇌가 관여하는 포유류 이상의 지능(intelligence)은 후천적 행동이다.

동물의 행동을 결정짓는 위 다섯은 하등한 것에서 고등한 것으로 발달(진화)한 순서인데,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는 것은 뭐니 해도 학습과 지능이다. 하지만 주성, 무조건반사, 본능도 영향을 미친다. 버스나 기차를 타면 어쩐지 선뜻 창가에서 지그시 몸을 기대고 싶은 ‘양성주촉성’이 발동하고, 무릎을 망치로 때리면 다리를 번쩍 들거나(등골반사) 밝은 빛에 동공이 좁아지는 등의 반응(중뇌반사)은 ‘무조건 반사’이며, 아기가 입술에 뭐가 닿으면 무조건 빠는 행위 따위는 본능이다.

다음은 반드시 중추신경(뇌)이 관여하는 동물학습(공부) 이야기들이다. 무척추동물 중에서도 아주 하등한 편형동물인 플라나리아(planaria)에게 빛을 쬔 다음에 전류를 흘리면 절로 수축하는데, 이러기를 여러 번 반복한 다음에 빛만 줘도 몸을 움찔 움츠리는 것은 개에게 먹이를 주기 전에 종소리 들려주기를 되풀이하면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조건반사(conditioned reflex)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행동학자 로렌츠가 밝혔듯이 갓 태어난 아기나 새 새끼가 처음 며칠 동안에 먼저 본 물체나 사람이‘어미’로 각인돼 골똘히 따르는 것도 학습인 것. 달팽이 큰 더듬이(대 촉각)를 건드리면 오므리고 좀 지나 도로 쑥 밀고나오는데 이를 거듭하면 나중에는 지쳐 쉽사리 반응하지 않으니 이는 둔화(습관화, habituation)된 것으로 이 또한 학습이다.

이런 것 말고도 동물의 학습에는 쥐, 개미, 지렁이들의 미로학습(maze learning), 침팬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바나나를 달아놓고 몇 개의 상자와 막대기를 늘어놨더니 처음엔 갈팡질팡(시행착오)하다가 주변의 상자와 막대기로 바나나를 따는 행동, 돌고래 쇼나 마약을 찾는 개들의 길들이기도 학습이다.

이들의 배움에는 반복이라는 것이 따라야 하며, 이들의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必爲 ‘상과 벌’이 있어야 하고, 지능에 따라 학습에 차이가 나는 것은 사람도 매한가지다. 실컷 칭찬합시다! 또 마냥 매를 아끼지 맙시다! 敎學相長이라 했던가. 다른 동물들도 가르치고 배우니, 물새의 먹이잡기에서부터 사자사냥 법까지 죄다 가르치고 배운다. 휘파람새만 해도 지역에 따라 울음이 다 다르고(사투리를 씀), 어릴 적에 아비 없이 자란 녀석들은 소리에 서툴다고 하지 않는가.

모방은 창조라고 했지. 다분히 모방(imitation)도 학습의 일종이다. 자연과 인공이 반반인 일본원숭이는 여태껏 고구마와 옥수수를 해변에 뿌려놓았더니만 흙 묻은 고구마는 껍질을 까먹고 옥수수 알을 일일이 주어먹었다. 어쩌다가 꼬마 녀석 중에 한 놈이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고 강냉이를 손으로 퍼서 바다에 집어던져 뜨는 것을 건저 먹게 된다. 이것을 본 어른들까지도 일견 새로운 문화를 모두 소리 소문 없이 따르게 된다.

그런데 무리 중에서 새끼들이 얼른 신문화를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어미였다. 하지만 지질하고 고집불통인 수놈아비는 요지부동, 거들떠보지도 않고 줄곧 고구마를 벗겨먹고 옥수수 알갱이를 한 톨 한 톨 주워 먹고 있었다. 어쩌면 요렇게 못 말리는 보수꼴통인 아버지와 선생님을 닮았담!?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