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08:45 (수)
작년부터 국가차원 지원 시작 …‘긴 호흡’ 연구 필요
작년부터 국가차원 지원 시작 …‘긴 호흡’ 연구 필요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07.02 16: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디아스포라 연구 어디까지 왔나

소수자, 이산, 망명으로 이해되는 ‘디아스포라’라는 단어의 기원은 유대인으로 소급된다. A.D. 70년 예루살렘 성이 로마군에 함락되고,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진 유대인들의 역사를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나라를 잃었다는 것은 그저 살 거주지를 잃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디아스포라가 시작된 이후, 유대인은 다수 유럽인들로부터 경멸의 대상이 됐거나, 홀로코스트 같은 참혹한 사건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 디아스포라가 국내에도 존재한다. 일제강점기, 6·25를 겪으며 일본으로, 러시아로, 중국으로 이주해 갈 수 밖에 없었던 동포들의 이야기다. 국내 디아스포라학 연구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임채완 교수(전남대 정치외교학)의 글을 통해 글로벌 디아스포라학의 필요조건을 짚어본다.

 

일제강점기 사할린 브이코프탄광에서 한인 모습

 현대에 들어서면서 ‘디아스포라’의 개념은 조금 달라진다. 재일교포 2세로 민족 차별의 경계에서 고스란히 소수자로서의 아픔을 겪은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는 저서『디아스포라의 눈』에서 디아스포라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원래 이산 유대인을 가리키는 이 말은 현대에는 좀 더 폭넓게,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나와 같은 재일조선인도 식민 지배와 민족 분단이라는 외적인 힘에 의해 이산당한 백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그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언제나 마이너리티(소수, 비주류)이다. 당연히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건 즐겁지 않다. 하지만 디아스포라에겐 이점도 있다. 그것은 머조리티(다수, 주류)에겐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국민국가 시대에 머조리티란 ‘국민’이기 때문에, 디아스포라는‘국민’에게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존재이다.”

“디아스포라 개념 확장해야”

국내에 디아스포라에 관한 연구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재외 동포, 재외 한인을 주제로 개별 연구자가 꾸

카자흐스탄 강제이주 생존자 알렉산드리아 할머니
준히 있었지만, 학계에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이 등장한것은 불과 20년 남짓이다. 현재 국내의 ‘디아스포라’ 연구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디아스포라학을 최초로 시작한 전남대 세계한상문화연구단,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도하는 네 개의 연구소, 마지막으로 HK연구소를 비롯한 대학의 개별 디아스포라 연구소가 있다.

디아스포라학의 선구자는 두말할 것 없이 전남대 세계한상문화연구단(단장 임채완 정치외교학 이하 한문 단)이다. 한문단은 모스크바 레닌도사관, 동북 3성을 오가며 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자료들을 모았다. 대부분 1세대 해외이주코리안의 문헌자료들이었다. 2만 건이 넘는 자료는 DB화 작업을 마친 상태다. 문헌정보학, 사학, 국문학, 사회학 등 관련 분야별로 분류방식이 다르기에 각 과 교수들에게 분류법 자문을 구한 기간만 2년이 넘는다. 이런 과정을 거친 DB는 학술적으로도 학문후속세대에게 기초자료로 제공되고, 재외한인 2,3세대를 위한 교육용 자료로 사용될 수도 있다.

디아스포라 연구에 대한 국가차원의 지원도 시작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진흥사업단이 지난해 발족한 것이다. 해외의 코리안 커뮤니티가 국가의 자산이 된다는 기치아래 커뮤니티 중심으로 문화정체성을 유지해가는 연구를 국가전략상 지원한다. 지난해 공모를 통해 일본, 중국, 러시아, 허브 디아스포라 연구소를 각각 선정했다.

정윤재 한국학진흥단장은 ‘디아스포라’라는 용어의 개념을 광의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 패망 전후시기, 6·25 전후시기의 타의로 해외이주한 사람들은 기존의 디아스포라 개념에 포함된다. 정 단장은 “미래를 생각해볼 때, ‘디아스포라’는 재외한인의 한 부분이고, 자의로 나간 사람들도 포함해야 합니다. 경제적 이유, 입양 등 여러 부류가 있으니, 포괄적인 단어로는 ‘재외한인’연구로 확장해야하지 않을까요? 여기에 조총련, 북한과 연관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디아스포라’의 범위는 상당히 넓어질 겁니다”라고 말한다. 한국학진흥단의 디아스포라 연구 사업은 5년으로 예정돼 있지만, 정 단장은 ‘긴 호흡’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 디아스포라 연구는 동덕여대 한중미래연구소(소장 김윤태 중어중문학)가, 일본 디아스포라 연구는 청암대 재일코리안연구소(소장 정희선 호텔관광학)가 맡아서 DB작업을 비롯한 첫걸음을 뗐다. ‘조선족’, ‘재중한국인’등 용어부터 통일해야 한다는 김윤태 한중미래연구소 소장 역시‘디아스포라’가 더 이상 피동적 의미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한국 이외 일본, 미국 등으로 흩어져 간 ‘글로벌 조선족’, 중국 내 머무르는 ‘재중 조선족’, 경제적 이유로 한국에 온 ‘재중 한국인’. 이렇게 세 카테고리로 나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허브 연구소를 맡고 있는 윤인진 한민족공동체연구센터장(고려대 아세아연구소 산하연구단)은 박사 논문을 코리안 아메리칸에 관해 쓸 정도로 디아스포라 연구기간이 길다. 중국, 일본, 러시아, 중앙아시아, 캐나다 등의 재외한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온 경험으로 허브 연구소에 선정됐다. 재외한인학회장의 경험을 살려, 각 연구소의 아젠다를 설정하고, 디아스포라와 트랜스내셔널리즘의 이슈, 이론,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 윤 센터장의 연구지향점이다.

대학별 연구소의 활동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건국대 아시아·디아스포라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신일섭 교수(일어일문학)는 2007년, 재일동포 문제를 풀어보자는 문제의식으로 연구소를 열었다. 신 소장은 한·중·일·러 4개국으로 시선을 확장시켰고, 전임연구교수 3명과 1년에 2회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목포대 도서연구원, 경원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성공회대 동아시아 연구소 등 대학별 연구소 및 HK연구소들과 연계해 매월 콜로키움을 연다.

국내 다문화문제 해결에도 시사

그는 디아스포라의 대척점에 ‘다문화’가 있음을 주지시킨다. 1세대 해외이주 한인들이 처음으로 타향에서 겪었을 일상의 문제들이 오늘날 한국 다문화사회에서 외국인들이 겪는 문제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신 소장은 인문학적 연구를 통해, 국내 다문화가정에서 벌어지는 문제점들을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NGO와 연대하는 시민교육, 다문화가정 장학기금마련을 위한 음악회를 열며 연구와 네트워크, 시민환원을 실천하는 중이다.

한국은 700만 재외동포를 가진 나라다. 국가차원에서 이들을 민족자산화하려는 자구책으로 연구를 진행하든, 연구자 개인적인 관심으로 연구를 진행하든, 이제 새로운 ‘디아스포라’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동시대적 사건을 공유하지 않은 이들과 민족적 유대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디아스포라’연구는 시급해 보인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