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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하고 분명한 말과 글
반듯하고 분명한 말과 글
  • 조재수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 위원
  • 승인 2012.06.2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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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수의 국어사전 이야기 ③

반듯한 물체는 어디가 기울거나 굽거나 이지러짐이 없다. 반듯한 생각과 분명한 행동은 개인이나 사회를 바로 서게 한다. 말과 글도 그 형식이 반듯하고 내용이 분명해야 순조로운 소통을 할 수 있다. 조리가 정연하고 표현이 분명한 말이 반듯한 말이다. 프랑스어는 18세기부터 국제언어로 지위를 굳혔다. 그런 프랑스어에 대해 1783년 베를린 학술원이 “무엇이 프랑스어를 세계어로 만들었느냐?”에 대한 해답을 현상 모집한 일이 있었다 한다. 이에 가장 우수한 해답은 긴 논문으로가 아니라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알려 온, ‘정확성’, ‘평이성’, ‘합리성’에 있다는 것이었다(『세계문화사』, 크레인 브랜튼 외 지음, 양병우·민석홍 외 옮김, 1971). 한 언어의 우수성을 ‘정확하고’, ‘쉽고’, ‘합리적인’ 특성에 있다고 한 것은 그 언어 하나하나의 됨됨이(형태)나 지닌 뜻바탕이 정확하고, 쉽고, 합리적임을 말해 준다.

말의 형태와 의미가 분명하고 이해하기 쉽고 이치에 잘 맞는 언어야말로 잘 가꾸어진 ‘반듯한 언어’라 하겠다. 우리말의 세계적 지위는 어떠할까. 남과 북, 해외 동포 사회까지 아울러 7천500만이 쓰는 언어로 사용 인구로는 세계 12위, 상위권에 든다고 한다. 언어의 고유성과 자기 언어에 대한 애착심 등으로는 어떠하며, 위에서 본 언어의 정확성, 평이성, 합리성으로는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우리 언어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물음이라 생각한다. 국어는 겨레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국어도 돌보고 가꾸어야 꽃처럼 피어난다. 말을 가꾼다는 것은 말을 캐고 정리하는 일이다. 그래서 사전 편찬인은 늘 겨레말을 캐고 또 반듯하게 정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어찌, 사전 편찬인 뿐이랴. 우스운 정도가 심해 매우 우습거나 가소로울 때 흔히 “우스꽝스럽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 ‘우스꽝스럽다’의 말 짜임새가 좀 묘하다. ‘우습다’의 불규칙 어간에 접미사로 보이는 ‘-꽝’과 ‘-스럽다’가 붙은 말이다.

이와 같은 형식의 말에 ‘객광스럽다’, ‘밉광스럽다’가 있다. ‘객광스럽다’는 ‘객스럽다’와 비슷한 말로, 꽤나 실없거나 쓸데없다는 뜻의 말이며, ‘밉광스럽다’는 매우 밉살스럽다는 말이다. 여기 ‘-광’은 어떤 정도가 심함의 뜻을 나타내고, ‘-스럽다’는 어떤 특성이 있어 보임을 나타내는 낱말 조각(형태소)이다. ‘어리광스럽다’ 역시 같은 짜임새이나 ‘객광-’, ‘밉광-’과는 달리 ‘어리광’이 먼저 명사로 익어졌다. 이들로 보면 ‘우스꽝-’을 ‘우습광-’으로 적을 만 한데 그렇지가 못하다. 사전에 다루어 온 자취를 보자.

우스꽝스럽다/우습광스럽다(?)

『문세영 사전』(1940)은 ‘우숩강스럽다’로 올렸다. 한글학회의 『큰사전』(1957)과 북의 사전에는 ‘우습강스럽다’로 올렸다. 북에서는 ‘우습강’을 명사로 ‘우습강을 부리고, 떨고, 피운다’ 등으로 쓴다. ‘우스개’와 비슷한 말이다. 연변 동포 작가 글에서도 ‘우습강’을 볼 수 있다. “호호호―철호 동무도 꽤 우습강을 잘하는군요. ……”(김경모, 「청산의 매」 연변. 1979)” ‘우습강스럽다’가 한글학회 『중사전』(1958)에 와서 오늘날 쓰는 ‘우스꽝스럽다’로 바뀌었는데 그 경위는 알 수가 없다. 이 ‘우스꽝스럽다’가 『국어대사전』(민중서관, 1961~1971년)에는 ‘우습광스럽다’로 되고 ‘우스꽝스럽다’는 ‘우습광스럽다’의 변한말로 보였다.

‘우습광스럽다’가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1992)도 ‘우습광스럽다’를 표준으로 올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스꽝스럽다’가 자리를 지켜온다. 『국어대사전』도 나중 나온 민중서림 판(1982)부터는 전날에 바로잡았던 것을 후퇴해 ‘우스꽝스럽다’에 풀이를 보였다. 꽤나 우여곡절을 겪은 말이다. ‘우스꽝-’을 ‘우습광-’으로 고쳐 잡고, 『큰사전』(1957)과 북녘의 ‘우습강-’과 어울러서 표준을 정하면 좋을 것 같다. ‘미나리-꽝’(남)과 ‘미나리-깡’(북) 같은 말도 그렇다. 마침 겨레말 큰사전 남북 표기 분과 위원회는 ‘우스꽝스럽다’와 ‘미나리깡’을 합의안으로 정한 바 있으나, ‘우스꽝스럽다’를 ‘객광스럽다’, ‘밉광스럽다’와 한가지로 ‘우습광스럽다’로 재론해 봤으면 싶다. 북녘에서 써오는 명사 ‘우습강’도 ‘우습광’으로 통일하면 ‘어리광’과 함께 가지런해지겠는데, 지나친 획일주의일까.

진무르다, 짓무르다, 짓물다

‘진무르다’와 ‘짓무르다’는 뜻이 다르고 발음은 같은 낱말이다. 『문세영 사전』(1938)에는 ‘진무르다’만 올려 “살이 상하여 문드러지다”라 풀이했다. 『큰사전』(한글학회. 1957)과 『국어대사전』(이희승. 1961)에는 ‘짓무르다’를 올려 ‘진무르다’의 사투리로 보였다. 『큰사전』은 ‘진무르다’를 “살이 상하여 문드러져 진물이 나다”라 풀이했다. 북의 『조선말 사전』(1962)에는 반대로 ‘짓무르다’를 규범어로 올려 “살갗이 몹시 헐어서 진물진물하게 되다”라 풀이했다. 『문세영 사전』외 세 사전은 앞의 말조각 ‘진-’과 ‘짓-’을 뜻이 같은 형태소로 본 것 같다. 그러나 둘은 다르다. 북의 『현대조선말사전』(1981)에 와서 두 말은 서로 다른 말로 바르게 자리를 잡은 것을 볼 수 있다. ‘진무르다’는 살갗이 헐어서 진물진물하게 되다. ‘짓무르다’는 몹시 물렁물렁해지거나 물크러지다. [용례] 짓물러빠진 도마도. 로 구분해 올렸다.

여기 ‘진무르다’의 ‘진-’은 살갗이 헐어서 나는 ‘진물’의 ‘진-’이며, ‘짓-’은 ‘짓누르다’, ‘짓밟다’ 등에서처럼 ‘함부로(마구)’, ‘몹시’의 뜻으로 행동의 정도가 심함을 나타내는 접두사다. ‘접두사’를 최현배는 ‘앞가지’, 북에서는 ‘앞붙이’라 한다. ‘진무르다’는, “눈이 진무르고 피골이 상접해서”(박경리, 『토지』), “한번 진물러 터진 살갗은 아물지를 않았다”(한승원, 『해일』) 등의 예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짓무르다’는, “짓물러빠진 도마도”(『북녘 사전』), “감은 한차례 눈을 맞아서인지 태반이 짓물러 있었다”(공선옥, 「홀로어몸」), “몸은 멀쩡하나 마음은 짓물러 터져 흐늘흐늘하고”(김원일, 「우유도일」)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둘을 분간하지 못하고 쓴 예가 많다는 점이다.

 아래 인용례에서 괄호 안에 ‘⇒’로 보인 것이 바른 표기임을 참고하기 바란다.

*쉬지 않고 새어 나온 물은 사방에 새어 들었다. 기둥뿌리를 썩히고 집을 앉힌 단단한 지반을 묵처럼 진무르게(⇒짓무르게) 했다.(현기영, 「아내와 개오동」) *올 게울(겨울)에도 눈이 짓무르게(⇒진무르게) 베를 짜겄구나(짜겠구나). (박경리, 『토지』) *로인(노인)은 …… 짓무르기(⇒진무르기) 시작한 눈귀로 연방 이슬이 괴여(괴어) 떨어졌다. (「무성하는 해바라기들」, 북녘 소설) *하도 자리를 뜨지 않고 서화에 열중하는 바람에 여름이면 엉덩이께가 견디기 힘들 만큼 짓물렀고(⇒진물렀고)(이문열, 「금시조」)

더하여, ‘짓물다’에는 두 동음어가 있다. 입술을 ‘짓물고’, 어금니를 ‘짓물었다’ 하는 ‘짓물다’는 ‘물다’에 접두사 ‘짓-’이 붙은 파생어로 ‘세게 물다’라는 뜻의 말. 또 하나의 ‘짓물다’는 ‘물어도 준치 썩어도 생치’라는 속담에 나오는 ‘물다’에 접두사 ‘짓-’이 붙은 말. 이 ‘물다’는 ‘습기나 열로 말미암아 떠서 상하다’라는 말이며, ‘짓물다’는 그 상한 정도가 매우 심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두 ‘짓물다’는 뜻이 전혀 다른 말이기에 잘못 쓰이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짓물다’와 앞에서 본 ‘진무르다, 짓무르다’의 활용형의 쓰임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진물러’는 ‘진무르다’의 불규칙 활용형, ‘짓물러’는 ‘짓무르다’의 불규칙 활용형, ‘짓물어’는 ‘짓물다’의 활용형이다. 아래 인용례에서 괄호 안에 ‘⇒’로 보인 것이 바른 표기임을 참고하기 바란다.

*물 좋은 생선과 짓물어서 상한 생선 『조선말대사전』(북. 1992) *나는 월곡댁의 짓물러진(⇒진물러진) 눈가장이(눈가)에 흠뻑 젖어 있는 눈물을 훔쳐보았다. (송기원, 「배소의 꽃」) *하지만 불그레 짓물러진(⇒진물러진) 그의 눈 속에선……. (김흥익, 「살아계시다」, 북. 1995) *배종두는, 발가락이 동상으로 짓물어진(⇒진물러진) 데다 영양 실조로 늘어져 누워 있는 산에 두고 온 박귀란을 생각하고 있었다. (김원일, 『불의 제전』)

‘진무르다’와 ‘짓무르다’를 제대로 밝혀서 보인 북의 『현대조선말사전』(1981) 이후의 사전들에는 어떻게 보완됐을까. 아쉽게도, 보완이 아니라 개악이 되고 말았다. 북의 『조선말대사전』(1992)에는 둘을 구분해 올리되 ‘짓무르다②’에 ‘짓물다 1②’를 동의어로 대어 ‘진무르다’와 섞여 있다. 그 ‘짓물다 1②’의 용례를 보면 ‘진무르다(진무르니, 진물러)’에 해당하는 것이다.

남녘의 『표준국어대사전』(1999)에는 ‘짓무르다’에 ‘진무르다’ 등이 섞여 있으며, ‘진무르다’는 아예 ‘짓무르다’의 잘못이라 했다(지면 관계로 그대로 인용해 보이지 못함). 정확하지 못한 낱말 지식, 갈피가 분명치 못한 사전의 풀이, 더욱 익히고 다듬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덧붙이는 말. 우리말 동사, 형용사는 사전에 ‘~다’ 기본형으로만 올려진다. 위에서 본 ‘진물러’와 ‘짓물러’를 사전에서 찾아보려면 ‘진물러’는 ‘진무르다’에, ‘짓물러’는 ‘짓무르다’에 가서 예문을 통해서나 겨우 볼 수 있다. 용언의 불규칙 활용형을 모르는 대다수 이용자에게는 불편한 일이다. 이에 대한 사전적 처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조재수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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