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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지식인 사회의 분화
대학과 지식인 사회의 분화
  • 최은진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 승인 2012.06.25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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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_ 중국의 지신인 담론 지형 변화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 변화와 맞물린 중국의 부상은 자연스레 중국내 지식담론의 지형에 눈길을 주게 만든다. 이들이 어떤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지, 이를 통해 무엇을 겨냥하는지 등은 지적이면서도 실제적인 관심사가 될 숭 lT다. 최근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총서 2로 출간된『현대 중국의 지식생산 구조』(은종학 엮음, 도서출판 길)가 읽히는 지점이다. 공동저자의 한 사람인 최은진 국민대 HK연구교수「중국의 담론지형 형성과 변화」에서 주요 부분을 발췌했다.

국가와의 암묵적 연계 속에서 계몽적 지식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면서 높아졌던 지식인들의 위상은 1990-년대 이후 시장화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대학사회의 변화, 대중매체의 발전 등으로 달라지게 됐다. 이제 주변으로 전락한 지식인들은 스스로 통일된 중국 사상계나 지식계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으로 인식하게 됐으며 실제 중국사회는 현실적 문제에 대한 대안을 놓고 구체적인 지식인의 분화라는 양상을 드러내게 됐다.

지식의 전문성이 강조되면서 전문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은 계몽적 지식인의 활동방식과 차이를 낳게 됐고, 매체를 통해 대중과 접하는 지식인들은 새로운 공간으로서의 매체를 활용하기도 하고 매체의 성격에 의해 변질되기도 하면서 공공지식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 나갔다. 2004년 <남방인물주간>은 ‘공공지식인’을 선정했다. 공공지식인은 대학의 지식인이면서 전문지식을 지닌, 대중매체를 통해 중용한 사회적 사안에 대해 영향을 끼치는 지식인을 말한다. 대학과 매체 지식인들의 연계 또한 하나의 현상이 된 것이다. 이와 비슷하긴 하지만 2002~2004년까지 <천애>5기에 주쑤리가 분류한 공공지식인에는 <독서>와 <천애>에서 활동하는 ‘신좌파’에 포함되는 사회과학자들이 더 중시됐다.

매체 성격에 따른 공공지식인의 정체성

이들 공공지식인은 학과나 전공과 관련 없이 중국경제와 관련된 논의를 주로 했다. 문학자 왕후이와 왕딩딩, 역사학자 친후이 언어철학 전공자 쉬유위 및 정치학자 류쥔닝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대학과 연구소 등에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글을 통해 사회에 참여하는 강렬한 사회책임의식을 지니고 있다. 당시 <남방인물주간>이 명단을 제공한 이유는 독자들에게 중국의 공공언론의 문제를 환기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중국 지식인들이 언론과 출판 자유가 제한된 상황 속에서 얼마나 활동의 폭을 넓게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중국정부는 사회적 책임의식의 공유  속에 자신들의 문화적 역할을 모색해 가는 지식인을 폭넓게 수용했다. 2천년 이후 국가권련과 구성 및 운영, 대중과의 관계, 분배의 문제 등 복합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정의 인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사상적·이념적 모색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기에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각 대학과 연구소의 98명의 전문가를 선정해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수립해 나갔다. 그 결과 2002년 중국공산당 제16차 당대회와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소프트파워를 중시하는 문화대국 논의를 전략적으로 제시했다.

후진타오는 2007년 10월 제17차 당대회에서 “사회주의 선진문화를 발전시키고 사회주의 문화 건설의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해 전 민족문화의 창조적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나라의 문화 소프트파워를 향상시켜야 한다”라고 제창했고, 특히 소프트파워의 주요한 내용을 중국 전통문화의 재창조, 전통문화의 현대화에 뒀다. 그러므로 민족적·국가적 통합과 세계문화의 중국화까지 도모하려는 의도 아래 중국정부는 정치경제 등 사회과학자 중심의 지식인은 물론 역사·철학·문학 영역의 인문지식인까지 활용범주를 넓혀 나갔다. 정부의 민족주의 기획에 의거한 유교전통관련 연구는 실상 마르크수주의 연구보다 더 활발하게 진행됐다. 런민대학의 공자학원 설립, 칭화대학의 유교연구원 설립이 이뤄졌고 인문학과에 대해 관련 연구과제가 수주됐다. 2006년 CCTV의 백가강단에 대한 대중 열풍도 문화대국전략 아래 지식인이 매체활동을 보여준 예다.

민족 부흥 사명 감당할 전략지식인

2010년 9월 18일 ‘대국흥국과 전략지식’이라는 주제로 베이징에서 <인민논단>의 편집, 중국인민대학 마르크스주의학원 원장 등의 주관으로 중공중앙당사연구실 부주임 등 외 9명이 참여한 회의가 열렸다. ‘전략지식인’이란 민족부흥의 필요에 부응할 지식인을 의미하는데 <인민논단>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당정과 대학생, 대학의 종사자 등 3만 명 이상이 참여했고 참여 지식인들 70퍼센트가 전략지식인의 존재에 찬성했다고 한다. 전략지식인은 단순한 싱크탱크의 지식인과는 다른 범주의 지식인을 의미하면서도 서구의 비판적 지식인 개념에서 비롯된 공공지식인과도 다름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논의는 ‘08헌장’ 이후 지식인들의 움직임 등을 포괄해서 지식인을 국가의 민족주의적 틀 안에 수용하려는 중국의 새로운 움직임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소수의 탄압을 받았던 지식인들은 이제 중국사회에서 필요한 존재로 부각됐지만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의 생산자로서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의식을 중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은 대학이나 매체의 구조 변화에 따라 분화됐다. 그리고 이는 지식인의 활동의 폭을 넓힐 수도 좁게도 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비판적 지식인’의 위상은 점차 주변화 되면서도 매체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역할이 부가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와 지식인의 관계는 협력과 갈등의 혼합 양상을 보여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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