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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인기를 얻은 조선의 정궁
이제야 인기를 얻은 조선의 정궁
  • 김희연 기자
  • 승인 2012.06.20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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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 경복궁 뒷 이야기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낙점하며 계획된 법궁인 경복궁. 주변 풍수지리를 섬세하게 고려한 정궁이었다.

경복궁은 처음부터 그렇게 인기 있는 궁은 아니었다. 조선의 세 번째 왕인 태종은 경복궁이 풍수가 나쁘다고 생각해 창덕궁을 따로 지어 지냈고, 1553년 명종 때는 큰 불이 나 편전과 침전이 모두 그을린 데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란으로 비워 경복궁은 더욱 피폐해졌다.

창덕궁으로 귀환한 선조에 이어 즉위한 광해군은 경복궁을 재건하지 않고 창덕궁, 덕수궁(경운궁) 등에서 생활했다. 경복궁은 이후 273년간 버려져 있다가 흥선대원군 주도로 1865년 중건을 시작했다. 당백전을 발행해가며 힘들게 진행된 공사는 7년이나 걸렸으며 백성들의 온갖 원성을 흡수했다.

그리고 시간을 뛰어넘어 일제 침략과 6ㆍ25 전쟁을 거쳐 경복궁 재건이 다시 시작됐다. 두 재난이 경복궁에 끼친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1990년 복원을 시작할 당시에 원래 규모의 7%만 남았을 정도다.

경복궁은 1990년~2010년 진행된 1차 복원정비사업으로 25%까지 회복됐으며 지난해부터 2030년까지 예정된 2차 복원정비사업으로 70%대까지 제 모습을 찾는다고 한다.

지난 2010년 8월 15일 1차 복원정비사업의 마무리로 광화문을 복원하고 연 개문식에는 15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게는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했고 서울 시민들에게는 공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 청와대 자리도 사실 옛 경복궁의 울타리 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권력자부터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골고루 쓰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버려진 ‘법궁’이었던 경복궁. 왕조의 권위는 빛이 바랬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친근한 장소로 탈바꿈했다. 아무래도 경복궁이 가장 인기 있는 시대는 현재일 듯싶다.

김희연 기자 gomi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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