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04:15 (수)
20년 전 내 모습을 본다
20년 전 내 모습을 본다
  • 홍인권 단국대 화학공학
  • 승인 2012.06.19 1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의연구실

앞줄 왼쪽부터 이승범 교수, 홍인권 교수, 이상묵 연구교수, 이창근(박사과정), 뒷줄 왼쪽부터 전길송(석사과정), 전현·박정우·한소라·박현수·박태규·이재룡(학부생)

교수로 처음 부임됐을 때는 연구실을 갖고 계신 교수님들이 한없이 부러울 뿐이었다. 이제 교수로 부임해 학생들과 연구하고 생활한 지 20여년이 되니 연구실이 생활이 되고, 밖에 있다가도 학교로 돌아와야 안정이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연구실 생활은 중독을 넘어 종교생활인 듯하다. 학생들과 같이 전공연구테마를 같이 공부하고 실험하고, 작은 결과에도 흐뭇해하고 일요일에도 나와 봐야 속이 풀리는 듯하다.

지금 연구실에 들어와 있는 학부연구생이나 석사과정, 박사과정 학생들의 생활도 내가 젊었을 때 생활과 많이 다르지 않은 듯하다. 밤늦게 까지 실험하고 지도교수님이 요구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다보면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도 결혼까지 하고 한 가정의 가장인 상태로 대학원을 다녔으니, 내가 다닌 학교의 창문을 경비아저씨 몰래 열고 새벽 3시에 나온 적이 셀 수도 없는 듯하다. 아침까지 밤을 새우고 테니스를 하면 일찍 나오신 교수님들은 왜 그리도 대학원생이 운동하는 것을 싫어하는지, 꼭 지적을 하시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 지도교수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오늘도 저녁 후에 들어와 보니 실험실에는 아무도 없다. 시험 때라 일찍 나갔나? 뻔할 뻔이다. 오늘 연구보조 인건비가 지급되는 날인 듯하다. 어디서 저녁밥만 먹는 게 아니라 이 세상 고민들 혼자 짊어지고 가는 듯, 밥상자리에 푸른 음료수병 같이 놓고 서로의 컵에 채워주는 모습이 선하다. 물론 난 그들을 믿는다. 오늘 술을 먹는다고 매일 술 먹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할 일들을 잘도 찾아 할 것이다.

실험실에서는 100도까지 온도를 올릴 때도 있고, 수백 기압까지 압력을 올릴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항상 마음 편하게 퇴근길로 돌아서지 못할 때가 많다. 항상 안전이 염려되고 취약한 것이 대학의 실험실인 것 같다. 내가 음주운전 경험을 하게 된 것도 실험실에서 일어난 해프닝이 계기가 됐다. 학교 근처 저녁자리에서 술을 좀 먹은 상태에서 실험실 학생한테 전화가 왔다. 실험 중 반응기 과열로 연기에 경보기가 울리고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대리기사를 부르느니, 택시를 부르느니 하다 가장 빠르다고 생각한 것이 내가 운전하는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찔한 순간들이다. 

실험은 항상 예상한 결과만 도출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90년대 이미 실험실에서 ‘마이크로웨이브로 고분자’를 합성해본 경험이 있다. 기사에서는 이것을 ‘전자렌지’로 고분자를 요리한다고 다뤄졌다. 충분한 시설과 자금이 없지만 연구실에서 학생들은 항상 진지하고 최선을 다한다. 이게 우리 열역학연구실의 분위기이고 목표인 것 같다. 하찮은 듯 시작해서 모양 좋게 결과를 도출하고, 그렇게 작성된 학위논문에 자랑스러워하면서 취업을 해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대학의 연구실의 존재이유인 것 같다. 하지만 또 8월이 되면 난 대학원생들의 등록금을 걱정한다. 마치 나의 아버지가 2월과 8월에 나의 등록금을 걱정하듯, 등록금 걱정은 가정이 아니라 학교로 끌어들여 대를 잇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연구실에 들어와 대학원 과정을 진학 하려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다. 대학원생 한 명을 실험실에 앉히기 위해서는 봄이 아니라 2학년 겨울부터 공을 들이고 학부과정을 돌봐야 가능한 게 현실이다. 결국 연구실은 학생들에게 고향으로 남고, 나에겐 종교가 됐다. 부족한 환경에서도 성실한 연구로 1등이 돼가는 제자들이 더 성장해서 찾아오고, 다시 모이는 졸업생의 남대천이 바로 열역학연구실이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