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21:00 (목)
[해외통신원리포트] 일본의 ‘십만 유학생 양성책’
[해외통신원리포트] 일본의 ‘십만 유학생 양성책’
  • 박영준 / 일본 통신원
  • 승인 2002.07.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07-20 12:03:18
동경만 한가운데 축조된 인공섬 오다이바는 지금은 첨단 건축양식을 자랑하는 방송사, 쇼핑센터, 그리고 고급호텔이 들어서서 어느덧 긴자와 시부야를 능가하는 일본 젊은이들의 데이트장소이자 유수의 관광지가 됐다. 그러나 이 섬은 원래 1853년 페리제독의 함대가 내항한 직후에 막부가 추가적인 구미 이양선의 도래를 저지하기 위해 만든 포대 주변지역을 매립해 만든 섬이다. 유래상 강화도 포대와 서울의 상암지구를 연상시키는 그 화려한 섬의 한 가운데 일본 정부가 전체 8백세대의 유학생이 입주할 수 있는 국제교류대학촌을 건립한지 1년이 됐다. 서구 오랑캐를 막기 위해 건립했던 포대 위에 오히려 각국으로부터의 유학생을 맞이하려는 고급 기숙사촌을 세운 역설은, 유학생 유치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의사표명을 말해주는 것으로도 보인다.

일본 정부가 유학생 유치에 대해서 적극적인 비전과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 것은 지난 1983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카소네 정권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통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일본이 그 경제적 실력을 바탕으로 지적·문화적으로도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를 의도했다. 당시 일본의 고등교육기관에 재적하는 유학생 대비 내국학생의 비율 측면에서 일본(1.8%)이 영국(16.9%)이나 미국(6.2%) 등 선진제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을 문제시, 21세기까지 유학생 10만명을 유치한다는 정책목표를 제시했다. 1983년 당시 일본의 유학생 총수는 1만명에 못미치는 수준이었는데, 나카소네의 정책은 이를 20년 이내에 10배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의미했다.

이후 일본의 문부과학성(당시는 문부성)을 중심으로 유학생 10만명 유치에 필요한 예산확보 및 조직의 정비 등 구체적인 정책이 추진됐다. 그러나 유학생 10만명 유치 정책은, 단순히 관련 예산을 확보해서 국비장학생을 늘리고 국제사회에 일본의 인지도를 알리는 것 이상으로 일본 국내의 사회문화적인 변혁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10만명 규모의 유학생이 일본을 유학 희망국으로 선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일본의 학문수준이,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국제적인 경쟁력과 매력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일본의 각 대학도 유학생에 대한 어학프로그램을 비롯한 적절한 교육제도를 제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물가로 악명높은 일본의 대도시에서 기본적인 생활을 보내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지급되는 국비장학금 이외 지방행정단체나 민간단체에서 유학생들에 대해 지원하는 장학금 및 생활지원제도들이 갖춰져야 하고 외국 국적의 유학생이 아르바이트로 취로할 수 있는 제도적 사회적 여건이 정비돼야 한다.
1999년 3월, 일본 문부대신이 조직한 유학생정책 간담회(노벨상을 수상한 에자키 레오나씨가 회장)는 그 보고서를 통해, 유학생 10만명 유치정책이 국제사회에 대한 일본의 지적 영향력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구조를 국제화하는데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그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 과제로서 일본 대학의 경쟁력 강화, 개방적 유학제도 구축, 관민 일체의 유학생 지원체제 구축 등을 들고 있는데 이는 정곡을 때린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유학생 10만명 유치정책은 일본사회의 학문수준 및 사회수준의 국제화, 국가의 품격 향상이 없이는 달성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21세기의 도래 이전까지 유학생 10만명을 유치하겠다는 일본의 정책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이래 중국과 한국, 대만 등 아시아 주변국으로부터의 유학생이 비약적으로 늘긴 했지만 2001년 5월 현재 유학생 총수는 7만8천명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목표수준 미달에 대해 일본 정부 내외에서는 반성의 소리가 드높다. 아직 일본의 학문과 사회적 수준이 서구 선진국에 비해 덜 매력적인 것은 아닌가, 혹은 정치적 리더십의 약화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논의가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비록 정해진 기간 내의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7만명 규모의 유학생을 보유한 일본 사회는 그로 인해 보다 다문화공생적인 사회의 특성을 띠기 시작한 것으로도 보인다. 외국에서 온 예비 지식인들이 몇 년씩 상주하는 일본 사회는 자연히 세계에 대한 보다 열린 태도와 상호이해의 기회를 많이 갖게 됐다. 도쿄대학출판회에서 간행되고 있는 연구서적들의 추세를 보아도 한국이나 중국 유학생들이 남긴 박사논문급의 업적들이 일본의 학계를 보다 풍요롭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위를 끝내고 귀국하는 유학생들과 일본에 직장을 얻어 계속 체류하는 유학생들이 일본과 세계를 이어주는 가교가 되고 있는 점도 일본 사회로는 큰 무형의 자산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일본 정부가 유학생 유치 정책에 대한 의욕을 완화할 생각은 없는 듯 하다. 서구 양이를 막기 위해 건설한 포대 위에 대규모 유학생 기숙사를 건설한 아이러니는, ‘세계를 향한 가교’인 유학생 유치정책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강력한 의사를 세계에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동북아 비지니스 중심국가 구상 및 다양한 문명이 공존하는 지역공동체 구상이 대두되면서 보다 적극적인 외국유학생 유치논의가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유학생 유치가 단순히 국위선양으로 이어지는 방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국제화와 학문적 사회적 품격 향상을 요청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일본의 선례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박영준 / 일본 통신원·도쿄대 박사과정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