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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임용 비리, 수렁에 빠진 공주대
교수임용 비리, 수렁에 빠진 공주대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06.18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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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교육과 교수 6명 중 4명 구속 … 교수직 ‘1억원 현금 거래’

지난 12일 오후 공주대 음악교육과, 연습실은 그리 한산하지 않았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는 학생들의 손은 더 빨라졌다. 현장에서 만난 피아노 전공의 한 학생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교수임용 비리에 대해) 예체능계열은 다 그런 것 아니냐.”, “국립대라서 걸린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 학생은 “지난달 처음 비리 사실이 알려졌을 땐, 학생들이 성명이라도 내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지금은 ‘폭풍이 지나간 후’라 안정을 찾았다”고 말했다.  

마지막이었다. 학과 최선임자였던 F교수(61세, 남)만 받으면 모든 게 끝이었다. 40대 중반의 신임교수 A씨(46세, 남)는 연구실 복도의 가장 끝방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호흡이 가빠졌지만 인사차 방문하는 것일 뿐이라고 마음을 쓸어내렸다. 더군다나 그의 옆에는 차선임자 B교수(66세, 여)가 있지 않은가. ‘거사’는 B교수의 몫이었기에 그나마 안심이었다. 연구실 문이 열렸다. A교수는 문밖에서 기다렸다.

B교수는 F교수보다 5살 많지만 학과에 온 지는 6개월 늦은 후배교수였다. B교수는 돈봉투 네 다발을 책상에 올려놨다. A교수로부터 넘겨받은 5만원권 현금 2천만원이다. “(교수임용의) 대가성이 아니고 후원금입니다. 다른 교수들도 다 받았습니다.” 정년을 앞두고 있고, 30년 넘게 한솥밥을 먹어온 동료였기에 수월하게 풀릴 거라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F교수가 끝내 돈을 받지 않은 것이다.

‘시간강사’는 내정자 임용의 정지작업

공주대 음악교육과가 사상 초유의 교수임용 비리로 수렁에 빠졌다. 2011년 1학기에 임용된 A교수가 학과 교수 전원을 금품으로 매수하려다 덜미가 잡힌 것이다.

대전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부장검사 김범기)에 따르면, A교수는 교수가 되려고 지난 2009년부터 학과장 등 학과 교수 전원에게 총 1억2천100만원을 전달했다. 2009년, 당시 학과장을 지냈던 C교수(62세, 여)와 같은 과 D교수(61세, 남)가 각각 5천만원을 받았다. 2011년 3월, 교수임용에 성공한 A교수는 모교출신의 ‘막내’ E교수(45세, 남)에게 접근했다. 학교 인근 식당에서 ‘인사비’ 명목으로 현금 100만원을 쥐어줬다. E교수는 그러나 몇 일 후 고스란히 돌려줬다. 이 학과 최선임자인 F교수에게도 ‘후원금’ 2천만원을 두 차례에 걸쳐 건넸지만 끝끝내 F교수가 뿌리쳤다. 결과를 놓고 보면, A교수는 B교수와 손잡고 C·D 두 교수에게 총 1억원을 주고 교수직을 얻은 셈이다.

대전지검은 지난 7일, 공주대 음악교육과 교수 6명 가운데 4명을 구속기소 했다. 돈을 받진 않았지만 A교수의 ‘뒤를 봐준’ B교수도 구속기소 됐다. 이들은 ‘뇌물수수 등 공무원법 위반’으로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100만원을 받았다 되돌려준 E교수는 입건유예, 돈을 받지 않은 F교수는 무혐의 처리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검찰조사를 바탕으로 추적해보면, A교수가 돈으로 교수들을 매수한 시점은 2009년 2월이다. 외부활동을 통해 ‘친분’이 있던 B교수와 공모했다. 이 둘은 같은 피아노 전공이다. 당시 학과장을 맡고 있던 C교수를 만나 교수직을 대가로 5천만원을 전달했다. 비슷한 시기, D교수에게도 5천만원을 줬다. 이때부터 이들 네 교수의 ‘검은 거래’가 실행에 옮겨졌다. 그렇다고 곧바로 교수직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이들은 조금씩 학과 분위기를 A교수의 경력에 맞춰가기 시작했다.

2009년 1학기 중반, A교수와 같은 전공의 강사가 출산을 이유로 휴직했다. 유일하게 피아노 전공교수였던 B교수는 A교수를 추천했다. 명분을 만드는 작업은 세 학기가 채 걸리지 않았다. 2010년 하반기 공개채용에서 피아노 반주법 전공자를 뽑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이 대학 음악교육과 교수진의 기본 구성은 피아노 2명, 작곡 2명, 성악 2명, 국악 1명이다. 2008년 전후로 피아노 전공 교수 2명이 정년퇴임을 하면서, 새롭게 올 교수는 전공범위를 좁혀서 뽑자는 게 학과의 중론이었다. 특정 분야에서 우수한 ‘피아니스트’보다 다양한 분야를 가르칠 수 있는 ‘반주법 전공자’를 찾기로 했다. 이번 일에 연루되지 않은 교수 2명은 이들의 ‘거래’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엔 교육적 가치에 합의했는데, 돌이켜 보니 A교수를 염두에 둔 명분 만들기 아니었나 싶다.”

25명의 지원자 가운데 A교수의 연구·공연 실적이 가장 우수한 축에 들었다. 임용심사는 물 흐르듯 진행됐다. 당시 심사에 참여한 한 교수는 “A교수가 연구실적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점수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학생들 “A교수, 교육 등한시 했다”

“A교수님은 학생들 사이에 평판이 안 좋았어요. 피아노 레슨을 일주일마다 받는데 ‘쳐봐라’하고 시켜놓고는 컴퓨터를 하셨죠. 연주를 마치면 ‘다음엔 더 빠르게 쳐라’ 이게 다였죠.”

금품으로 매수한 교수직은 ‘교육 부실’로 이어졌다. 지난 12일, 공주대 음악교육과 연습실에서 만난 한 학생은 A교수가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안 느꼈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학생들도 레슨을 받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학생들은 A교수를 “자기 발전을 위해 교수직을 이용한다”거나 “교수직을 마치 스펙쌓기용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는 등 혹평을 쏟아냈다. 실제로 A교수는 교수에 임용되면서 학교 앞에 고깃집을 차려놓고 대학원생들에게 서빙을 시키기도 했다. 사범대학의 한 교수는 “교육자로서 준비가 전혀 안 된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번 주 중반이면 기말고사가 끝난다. 공주대는 2학기 공개채용에서 전임교수 3명을 충원한다는 대책을 내놨다. 김창호 공주대 교무처장(식물자원학과)은 “개인 간에 이뤄지는 임용비리는 본부에서 파악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학과에서 교수들이 담합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주대는 일단 임용비리에 휩싸인 음악교육과 교수 2명을 제외시키고, 외부인사만으로 올 하반기 교수임용을 진행하기로 했다.

(공주)글·사진=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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