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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품에서 ‘튤립’이 피는 뜻은
네덜란드의 품에서 ‘튤립’이 피는 뜻은
  • 최재목 영남대ㆍ철학과
  • 승인 2012.06.18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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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유랑ㆍ상상ㆍ인문학⑲ 큐켄호프에서 튤립을 바라보며

큐켄호프의 튤립 모습. 사진=최재목
4월에 들른 큐켄호프(Keukenhof). 노랑, 빨강, 초록…. 튤립의 만개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5월 초순, 나는 일본에서 온 지인과 거길 한 번 더 간다. 라이덴역에서 버스를 탈 때 설레는 마음만 가득. 그 開化는 어떨까. 밭이랑 사이로 꽃은 순이, 옥이의 웃음처럼 아름다운가.

네덜란드의 5월. 흐렸던 땅에 햇살이 많아지고, 쌀쌀했던 날씨는 포근해진다. 들판엔 꽃으로 흘러넘치고. 그야말로 피크다. ‘피크’, 곧 내리막길이 있다는 말인데, 뭘로 후딱 갈아타야 하나. 그래 봤자. 꽃 떨어진 여름날 뿐. 아! 이래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여왕들이 많은 유럽이니, 남성의 ‘왕’은 이상하고, ‘여왕’이란 말이 자연스런 거다. 꽃 축엔 아예 끼질 못하는 수컷들. 씁쓸하다.

기대했던 대로다. 여왕처럼 서서, 형형색색 千의 얼굴로 큐켄호프를 빛내는 튤립. 네덜란드의 상징. 아니 튤립은 이미 그냥 식물이 아니다. 네덜란드인들의 삶에, 다양한 형태로, 깊숙이 관여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가나 정치가 아닐까. 그건 액세서리가 아니라 네덜란드인들의 삶의 ‘표현방식’이자 살아가는 ‘이야기’다.

암스테르담에서 18km가량 떨어진 리세(Lisse)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구근화훼류 전시장. 튤립을 중심으로 한 꽃 테마 공원, 큐켄호프. 600만주 이상의 식물이 자라는 8만5천000평의 너른 공원이다. 3~5월 사이, 가장 큰 규모의 세계적 꽃 축제가 열리고, 그걸 보러 매년 1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든다. 큐켄호프. 부엌(keuken)에 물자를 공급하는 정원(hof)이란 뜻. 여기서 귀족들의 연회용 야채와 허브를 재배하고, 또 이곳이 사냥터로 이용됐던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튤립, 나무신발(나막신), 풍차, 치즈로 유명한 네덜란드. 풍차와 나막신과 치즈에다 ‘添花’라. 과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은 뭘까. 한국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이런 저런 생각에, 네 가지 이미지를 하나로 묶은 엽서를 쳐다본다. 누가, 언제부터 이런 각각의 이미지들을 하나의 틀로 묶어낸 걸까. 흩어졌던 각각의 문화요소를, 새롭게 디자인하여, 고유명사로 사유화하는, 그 ‘領有(appropriation)’의 아이디어가 부럽다.

꽃들에게도 제 각기 고향이 있다. 인친척도, 혼인 관계도, 과거도 있다. 그 뿐인가. 그 이면엔, 그것을 만들어온 인간들의 다양한 해석이 있고. 이런 ‘앎(知)’의 밭고랑(=분류법) 위에 그들은 피어있다. 저, 흔들리는 줄기며, 꽃잎이며, 붙여진 이름. 그건 인간의 욕망과 의지의 표상 아닌가. 그런 語法에 포기포기 뿌리박은 이름들. 그렇다면, ‘無名’이란 영영 올 수 없는 존재를 흠모하는 말인가. 

큐켄호프의 튤립 모습. 사진= 최재목

큐켄호프에 도착. 버스에서 내려 공원의 내면으로 걸어들 때, 나는 다시 한 번 꽃에 압도당한다. 공원 밖에서는 흐드러진 튤립 밭고랑들의 축제. 순간, 나는 착각한다. 저 밭의 꽃들, ‘위조지폐’처럼, 가짜는 아닌지. 기하학적인 풍경의 고랑. 나는 그 끄트머리에 서서 눈길로만 따라갈 뿐. 거기 짜 맞춘 듯 차가운 형식의 ‘이성’, 형형색색의 꽃봉오리와 매혹적인 꽃잎의 ‘상상’, 인간과 함께 살아온 꽃들의 ‘기억’이 동시에 작동된다. 썰물처럼 뒤로 물러나, 물끄러미 튤립의 생애를, 나는, 스캔하고 싶어진다.

말라르메는 ‘꽃!’이라고 말하면, 꽃이라는 대상물은 사라지고, 순수한 관념으로서의 꽃이 떠오른다 했다. 이 ‘꽃’은 세상 어디에도 찾을 수 없고, 알려진 어떤 꽃과도 다른 꽃이다. 언어에만 있는 ‘그 어떤 꽃다발에도 없는 꽃’(장 마르크 드루엥(김성희 옮김), 『철학자들의 식물도감』, 알마, 131쪽 참조)처럼, 내가 보는 튤립도 그런 걸까.

기나긴 세월, 인간의 생활과 생각의 도처에 뿌리내려온 꽃들, 식물들. 화폐처럼, 출렁이는 인간들의 욕망과 관습의 이야기 속에서, 수시로 호출당하며 유통해 온 그들. 인도 보리수에서 석가모니를, 바오밥나무에서 어린왕자를, 우리의 찔레꽃에서 ‘남쪽나라 내 고향’을 떠올리듯, 꽃은 늘 인간의 기억과 희망 사이에서 피고 졌다.

튤립의 원래 고향은 중앙아시아란다. 그것이 네덜란드의 품에 안긴 것은 식물학자 카를로스 클루시우스의 공적. 그가 라이덴 대학 부속 식물원의 책임자로 부임할 때(1592년), 해외에서 튤립 구근을 가져와 네덜란드에서는 처음으로 꽃을 피워냈다(1594년). 튤립이 네덜란드의 품에 안기기까지 넘은 많은 국경들. 내 눈에 문화적 디아스포라로만 보이는 그 꽃.

튤립을 보다, 문득 귀에 익은, 1952년에 만들어진 동요「꽃밭에서」를 흥얼댄다. 그런데, 어느 신문의 광고를 보고 난 처음 알았다. ‘채송화도 봉숭아도 담장 위에 나팔꽃도 어느 것 하나 정겹지 않은 것이 있을까요. 언제 어떻게 이 땅에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울고 웃으며 이제 모두에게 사랑받는 꽃이 되었습니다. 함께 해요 다문화’.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에 핀 꽃들. 채송화, 봉숭아, 나팔꽃. 어느 하나 우리 것 아니랴.

최재목 영남대ㆍ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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