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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원리포트 : 공교육의 이념, 프랑스의 대학제도
해외통신원리포트 : 공교육의 이념, 프랑스의 대학제도
  • 김유석 / 프랑스 통신원
  • 승인 2002.07.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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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0 12:00:46
6월 중순을 전후로 프랑스의 각급 학교들은 모든 학사 일정을 마치고 약 4개월 가량의 긴 방학에 돌입했다. 이맘때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내용이 바로 바깔로레아라고 부르는 프랑스의 대학입학시험이다. 하루 날을 정해서 모든 과목을 한번에 평가하는 한국의 대입수학능력시험과 달리, 바깔로레아는 여러 날에 걸쳐 과목별로 평가를 한다. 그리고 이 성적을 가지고 고등학생들은 들어가고자 하는 대학과 학과를 지원하게 된다. 시험을 준비하고자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이나, 대학 합격의 기쁨을 부모와 함께 나누는 모습 등은 다른 나라들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정작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고 살펴보면, 프랑스의 대학제도는 우리와는 무척 다르다는 것을 알 게 된다.

사실 프랑스의 대학 입시가 한국처럼 치열한 것은 아니다. 대입 합격률이 고등학교별로 80~90퍼센트에 달하는 것을 보면, 대학은 지원하는 거의 모든 학생들에게 열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의 대학은 모두 국립이며, 196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진행된 교육 개혁 이후 평준화되고 특성화됐다. 재미있는 점은 정부가 대학 평준화를 위하여 대학마다 고유이름을 없애고 일련번호를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파리의 경우, 1대학부터 13대학까지 총 13개의 대학이 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르본은 1대학(팡테옹 소르본), 3대학(소르본 누벨), 4대학(파리 소르본), 그리고 5대학(르네 데카르트 소르본)으로 분할돼 있다. 각 대학마다 전공학과와 학풍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학과가 있는 대학에 등록을 하면 된다. 입학이 쉽다고 해서 졸업까지 쉬운 것은 물론 아니다. 입학에서 학사학위 취득까지 걸리는 공식적인 기간은 3년이지만, 인문 사회과학의 경우 50퍼센트 이상, 이공계열의 경우 70퍼센트 가량의 학생들이 제 기간에 학위를 따지 못해서 재 등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까다로운 졸업시험과 엄격한 평가를 통과할 수만 있다면, 대학간의 이동은 무척 자유로운 편이다. 인문 사회과학의 경우, 대학 과정은 2년간의 교양학부과정(DEUG), 1년의 학사과정(Licence), 1년의 석사과정(Maitrise), 1년의 심화연구과정(DEA) 또는 전문가과정(DESS), 마지막으로 3년의 박사논문과정(These) 순으로 돼있는데, 각 과정의 학위를 취득한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지도교수나 학풍을 찾아서 학교를 옮기거나 상위 과정을 등록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프랑스 대학생들의 등록과 학교 이동을 자유롭게 해 주는 가장 큰 요인은 무료나 다름없을 정도로 저렴한 등록금에 있다. 교양 학부과정이나 학사과정의 경우 1년 등록금이 약 10만원 정도이며 마지막 과정인 박사의 경우도 약 30만원 남짓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처럼 부전공이니 복수전공이니 하는 제도는 프랑스에서는 의미가 없다. 학생들이 개인의 능력과 관심에 따라 원하는 만큼 여러 대학과 학과에 등록해서 다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환경의 바탕에는 프랑스의 공교육 이념이 깔려있다. 즉 모든 국민은 교육의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그 책임 주체는 국가여야 한다는 이념이 그것이다. 우선, 개인이 고등교육을 받음으로써 사회에서 더 좋은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니 교육 서비스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미국식 수혜자 부담의 원칙과는 달리, 프랑스의 교육이념은 조세 부담을 지는 국민이 당연히 고등교육의 권리를 갖는다고 본다. 또한 국가를 통해 양질의 교육을 받은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사회 각 분야에서의 노동을 통해 자신이 받은 혜택을 국가에 환원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이념이 견고하게 뿌리 박힌 가운데, 프랑스의 대학은 단순히 학문의 확대재생산이라는 기능을 넘어서 국민 전체를 품으려 하는 진정한 공교육의 장으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김유석 / 프랑스 통신원·파리1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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