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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청원은 ‘학자적 양심’? … 비판 잇따라
수정 청원은 ‘학자적 양심’? … 비판 잇따라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06.12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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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 vs 진화론, 교과서 논쟁으로

그동안 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져 온 진화론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6일 <네이처>는 ‘한국이 창조론자들의 요구에 굴복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회장 이광원, 이하 교진추)는 지난해 11월과 지난 4월,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종이 아니다’, ‘말의 진화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라는 청원을 제출했다. 그동안 단 한 건의 진화론 정정 청원도 수락하지 않았던 심의위원들은 이 두 건의 청원을 받아들였고, 이후 3개의 출판사에서 해당 내용을 수정 혹은 삭제했다.

교진추 이광원 회장은 “과학교과서에 허위나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만물의 기원을 소개하는 것은 학생들의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문제의식으로 이 운동을 시작했다”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진화론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진화론의 사례를 교과서에서 삭제하자는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고등학교 생물교사 출신이다.

교과서 진화론에 타격을 입힌 교진추는 2008년 발족한 단체다. 140여명의 회원이 있고 산하에 40여명의 교수, 연구원으로 구성된 학술위원회가 있다. 일 년에 4회 정기적 모임을 갖고 집필, 연구를 분담한다. 그러나 진화생물학 전공자는 한 명도 없다.

전창진 경북대 교수(생명과학부)는 현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 실린 진화론 부분이 틀렸다고 지적한다. 전 교수는 학생들에게 잘못된 것을 가르칠 수 없다고 학자적 양심을 토로하며 청원에 참여했다. 그는 “1984년 국제시조새학회에서 이미 새라고 판명을 내렸고, 헥켈의 진화재연설도 1997년 <네이처>에서 대사기극이라 발표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교과서에는 이 내용이 실리고 있다. 창조와 진화 문제를 떠나 ‘학문적 살해 행위’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번 청원이 받아들여짐으로 교과서진화론 개정에 탄력을 받은 교진추는 생물분야를 넘어서서 지구과학, 화학 분야까지 교과서 진화론 오류 바로잡기를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진추는 오는 16일 서울역에서 일반인이 참여하는 포럼을 연다.

그동안 미온적 입장을 보였던 진화론 과학계는 이번 창조론자들의 ‘도발’에 크게 당황한 눈치다. 무대응에 대한 이유를 밝힌 장대익 서울대 교수(생물진화론)는 “대처해주는 것 자체가 그들의 이름을 올려주는 일이다. 창조론 진영의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하지만 교과서는 전 국민이 배우는 것이다. 이 상황이라면 끝까지 링에 남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진화론 과학계가 앞으로 강경한 대처를 할 것임을 밝혔다.

현재 장 교수는 한국생물교육학회(회장 김경호, 공주교대․과학교육과)를 비롯해 6개 학회가 가입된 생물과학협회와 연대해 청원무효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시조새도 현생 조류의 일부가 불분명한 것이지 공룡에서 나왔다고 밝혀졌다. 이 논문이 게재될 때 진화론자들은 오히려 창조론자들이 이를 오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기까지 했다”고 반박했다. 장 교수는 ‘생명의 자연발생(화학진화)은 불가능하다’, ‘소진화가 모여 대진화가 일어나는 일은 없다’등의 교진추의 주장에 일일이 반박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장 교수는 교진추가 스스로를 한국창조과학회(회장 이웅상 목사)와는 무관한 단체라고 이야기하지만, 클릭 몇 번이면 금방 사실관계가 확인된다고 말했다.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서 교과서위원회 배너를 누르면 교진추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화학)는 “이슈화시키려는 창조론자의 의도가 아니라면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논쟁이다. 200년 전 다윈 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논쟁을 새삼스럽게 이슈화시키는 것이 이상하다”며 언론의 과잉보도 자제를 요구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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