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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정치학의 세계화
[학이사] 정치학의 세계화
  • 김진영<부산대·정치학>
  • 승인 2002.07.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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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0 11:54:50

한국 경제 발전에 비례해서 세계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한국 정치에 관한 외국 학자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 한반도의 분단과 국제관계 등은 한국 정치가 세계사적인 관계 속에서 외국 학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슈이다. 고전적 정치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한국의 정치경제에 관한 관심도 높아졌는데, 경제위기 전에는 놀라운 경제발전을 가져온 한국의 제도와 국가의 리더십에 초점을 맞춘 정치경제학 연구들이 많았다.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는 한국경제를 위기의 파국에 밀어 넣는 데까지 기여한 한국 정치경제제도의 문제를 분석한 연구들이 산출됐다.

한국정치에 관해 관심을 가진 외국학자들이 다 한국학자들이 쓴 우리말 연구물들이나 우리의 원전 자료가 해독가능한 것은 아니다. 경험적으로 느끼기는 관심을 가진 사람에 비해 한국어 원전 해독이 가능한 외국학자는 매우 소수에 불과하다. 이들 외국학자들은 한국학자와 공동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한국학자들에게 한국정치에 관해 영어로 좀 더 많은 글을 발표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하는데, 나는 이럴 때 당신들이 한국말을 배워서 깊이 있는 한국연구들에 접근해라, 우리들도 영어 배워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반박한다. 사실 외국어로 학문을 하는 것이 모국어로 하는 것 보다 몇 배 더 힘들다는 것을 영어권에서 영어로 된 온갖 자료들을 다 접하며 편안하게(!) 공부해온 이들은 실감하지 못 할 것이다. 개인적 소회가 그렇다하더라도 한국 정치학자들이 영어나 가능하면 기타 외국어로 한국정치에 관한 더 많은 연구들을 내어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동의한다.

한국정치학자들의 연구 중에 문제의식의 영역이나 그를 다루는 논의의 깊이가 영어로 발표된 글들을 능가하는 글들이 많다. 초창기 한국정치에 관심을 가진 외국학자들은 사실 분석의 깊이도 별로 없는 저널리즘 수준의 한국에 관한 글들로 만족하는 경우도 상당히 있었다. 그러나 해외유학파들이 증가하고 이들이 중견 이상의 학자로 성장하면서 상황은 조금씩 나아져 왔다. 앞으로도 한국 정치학자들의 깊이 있는 정치학 담론과 한국 정치의 구체적인 여러 이슈들에 대한 연구가 더 많이 영어로 출간돼서 외국학자들에게 한국정치 연구의 지평을 넓혀줘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 정치학자들이 한국정치학의 세계화와 관련하여 해야 할 일은 한국정치연구를 위한 통합적 패러다임과 새로운 한국정치의 발전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이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지만 이런 방향으로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정치학은 미국의 정치학보다 젊다. 한국에는 현대 정치학의 연륜이 짧고 그만큼 덜 발달했다는 얘기도 된다. 미국 정치체제 자체가 2백년 역사를 통해 자리잡은 만큼 미국의 정치학도 학문분야로서나 분석틀의 면에서 안정되고 비교적 통합되어 있다. 실용적이고 ‘문제해결’ 중심의 사고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므로, 새로운 사회에 대한 거칠더라도 신선한 비전과 상상력이 없는 것이 갑갑하게도 느껴진다. ‘미국정치학’이란 분야는 정치학의 여러 분야 중 하나로 자리 잡고 거의 독보적이고 통합적인 패러다임을 이루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정치학’은 정치학의 여러 분야 중 하나이지만 변화무쌍한 한국의 정치 현실을 반영한 듯 통합적인 패러다임이 없다. 뿐만 아니라 추구하는 비전과 이념도 미국정치학보다 다양하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신좌파계열의 국가론에서부터 자유주의의 합리적 선택이론까지 이념의 폭이 넓다. 한국 정치학자들은 미국 정치가 가진 권력의 견제와 균형, 법치주의, 정당정치의 질서 등을 연구해서 배울 점을 발굴해야 하지만, 우매한 자국제일주의나 원자화된 개인을 양산하는 미국식 모델이 아닌 한국적인 새로운 정치발전의 모델을 계발해야 한다. 미국 표준화가 세계화가 아닐진대, 한국적인 것을 만들어 세계에 내어놓는 것이 세계화 시대의 풍성한 지적교류와 세계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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