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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과학과 철학』 이봉재 편집인(서울산업대·교양학부)의 이유있는 항변
[특별기고] 『과학과 철학』 이봉재 편집인(서울산업대·교양학부)의 이유있는 항변
  • 교수신문
  • 승인 2002.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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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4 18:50:44
지난해 12월 ‘과학과 철학’12집을 발행한 이봉재 편집인이 오는 16일 버클리대(시카고)로 떠나기 앞서 우리 신문에 장문의 기고글을 보내왔다. ‘과학과 철학’이라는 녹록치않은 전문 저널을 발행하면서 느꼈던 이 교수의 고뇌와 애로는 우리 학계의 학술 저널의 현주소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더 많은 성찰을 촉구하면서 이 교수의 문제제기를 소개한다.

한국의 학문은 어디에 와있을까. 과연 지식을 ‘생산’할 능력을 갖고 있을까.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지식생산이란 전문적 지식의 세밀함과 더불어 개별 분야를 넘어서는 지적 교류, 진지한 주제의식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 어느 것도 우리에게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

왜 분야를 넘어서는 지적 교류가 중요한가. 생산은 독창적인 아이디어 없이는 불가능하며, 독창성은 한 분야의 과도하게 체계화된 사유틀에서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생물학과 정보공학, 철학과 물리학, 역사학과 사회과학 등 조금은 낯선 것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사유의 싹이 자라기 쉽기 때문이다. 새삼 학제적 연구를 강조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서구의 지식 창조자들은 항상 그렇게 하고 있었다.

‘과학과 철학’은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철학궛墟?학제적 연구의 기록이다. 1990년 김용준 교수가 이끄는 공부그룹, 장회익, 김두철, 소광섭, 이태수, 김남두, 서정선 등 물리학, 의학, 철학의 분야에서 훈련받은 진취적인 공부집단이 모태가 되어, 김남두 교수 (서울대 철학과)를 초대 편집인으로 해서 창간된 이후 이제 13년째이다. 매년 한권씩 발간하며, 올해 가을이면 ‘생물학의 시대’를 주제로 하여 13집을 발간한다.

초창기 ‘과학과 철학’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과학궱또隙?소통한다는 지적 흥분과 더불어 당시 그런 수준의 지적 작업이 드물었던 탓이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과 철학’은 점차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

과도하게 팽창한 대중문화가 수준있는 지적 관심을 약화시키며, 대학조차 양적 성과와 쉬운 강의라는 압력 아래서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과학과 철학’은 대학 수준 이상의 독자에게 소화가능한데, 대학(인력)은 점차 그런 능력과 여유를 상실해가고 있다.

다른 고급 학술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일텐데, 이는 중대한 상황이다. 대략 말해서 지금 한국의 지성계는 학회지와 대중지, 그 둘로 양분되고 있다. 학문의 폐쇄적 전문성을 넘어서는, 그리고 동시에 대중문화의 피상성에 어떤 깊이를 보완해줄 고급 지성의 매체, 학술적 매체는 자리를 찾기 어렵다.

자평하건대 ‘과학과 철학’은 미흡한대로 한국최고의 철학수준을 대표한다. 사태를 충분히 철학적으로, 즉 견실한 전문적 연구를 토대로 해서 다른 분야와도 소통할 수 있는 메시지와 스타일을 시도해 본다는 것, 그것이 ‘과학과 철학’의 기획 가이드라인이다. 오직 전문적이기만 하다거나, 소통은 원활하나 피상성을 벗어나지 못한 연구들은 모두 거절한다.

‘과학과 철학’이 가장 어려운 이야기, 시급한 주제에 대한 답을 준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무능력하다. ‘과학과 철학’은 당대의 주제에 대하여 ‘다른’ 방식으로 깊이있게 생각해볼 뿐이다. 전문화된 학술지가 감당할 수 없는, 대중수준의 쉬운 잡지도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수준을 유지하는 지적 모험이자 탐색의 장이다. 이런 종류의 작업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문화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화가 성취한 수준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시급한 일이야 어느 문화든 다뤄낸다. 문화의 수준이란 당장 닥친 것이 아닌 일을 감당해내는 능력과 방식에서 드러난다. 잠재된 기회와 위험, 원리에 대한 자세에서 판가름난다. 상상의 모험, 지식의 탐색을 허용하는 수준에서 드러난다.

‘과학과 철학’과 같은 수준의 철학적 시도는 한국에서는 달리 없다. 그런 작업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와 실질적인 작업들이 몹시 드문 탓으로 적절한 필자를 찾기도 여간 어렵지 않다.

약간의 학술지원을 받기에 다른 학술지만큼 어려운 형편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독자를 만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존속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일년에 한번 출간되며 딱히 다른 홍보수단을 갖지 못하는 ‘과학과 철학’ 같은 시도들은 교수신문과 같은 고급저널리즘에 의해 ‘정기적으로’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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