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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풍경] :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는 ‘중국 근현대 오대가 회화전’
[예술계풍경] :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는 ‘중국 근현대 오대가 회화전’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07.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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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0 11:54:14
그녀의 입술은 농염하기도 하다. 담장에 팔을 걸치고 매화를 바라보는 그녀의 은근한 눈빛도, 가지가지 탐스럽게 피인 매화도, 그녀의 붉은 입술보다 유혹적이지는 못하다. ‘사녀도’의 작가 임백년은 단 한번의 붓놀림만으로 무채색의 분위기를 ‘유채색’으로 둔갑시켰다. 그녀의 입술에 찍힌 ‘붉은 점’ 하나로 인해 그녀의 머리는 칠흑같은 검은 ‘색’으로 덮였으며, 그녀의 얼굴 또한 시리도록 하얀 ‘색’으로 채워졌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오는 9월 1일까지 열리는 ‘중국 근현대 오대가 회화전’에서는 임백년을 비롯해 오창석, 황빈홍, 제백석, 서비홍 등 총 5명의 중국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정형민 서울대 교수(미술사)는 이번 전시가 ‘중국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지만 그 의미가 ‘중국 회화’만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정 교수는 “근대미술을 전통과 현대의 사이에 끼인 ‘미술의 쇠퇴기’ 정도로 치부하는 인식 아래 19∼20세기 미술은 중국에서 뿐 아니라 한국, 일본 모두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해 왔다. 그러나 이 시기는 동양의 전통 예술이 서양의 문물을 만나 하나의 독창적인 예술로 ‘승화’한 시기로, 이 시기의 작품들에는 전통적이면서도 또한 근대적인 ‘변환된 양식’이 드러나 있다”며 이번 전시의 의미를 찾는다.
시·서·화에 모두 능했던 오창석은 ‘등화엄영매화영도’를 통해 ‘등불이 매화 그림자를 막아 가린다’고 탄식하고 있다. ‘그림자’가 가려지는 것조차 안타까워할 정도로 매화에 심취했던 화가의 마음은 ‘뾰족한’ 소나무와의 대조를 통해 매화의 동그스름한 향기를 표현하려 한 ‘송매도’에서 또 한번 표출된다.
황빈홍의 ‘서령호산도’가 먹물만으로 ‘유채화’의 느낌을 뿜어내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덧칠’ 덕택이다. ‘유사한 크기의’ 점으로 때로는 나무 한그루를, 때로는 잎새 하나를, 때로는 바위 위의 풀 한 포기를 표현해 낸 황빈홍의 작품 속에는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는 그의 깊은 사색이 담겨 있기도 하다.
‘척이도’의 노인은 왜 귀를 씻고 있나. 작가 제백석은 ‘들려오는 소문을 견딜 수 없어서’라고 답한다. 귀 속의 묵은 찌꺼기들을 후벼내니 마음 속의 응어리도 함께 사라져 가는지, 한쪽 눈을 슬며시 감은 노인의 표정은 시원한 듯, 아쉬운 듯.
동양화라 하기엔 너무도 서양적인, 그러나 서양화라 하기엔 너무도 동양적인 작품이 바로 서비홍의 ‘시마도’다. 한올한올 말갈기의 섬세함을 동양적 붓터치로 시원스레 해결해낸 작가의 ‘똑똑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말이라는 ‘흔한’ 동물에게서 새삼스런 감흥을 끌어내도록 한다.
힘든 과도기를 살아낸 다섯 작가. 이들의 작품 세계 속에는 전통과 현대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농익을 대로 농익은 나머지 ‘터져’ 녹아내리고 있다.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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