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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8인 참여해 번역 … 프랑크푸르크학파 비판 이론의 핵심을 읽는다
전문가 8인 참여해 번역 … 프랑크푸르크학파 비판 이론의 핵심을 읽는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06.05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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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_ 출간 앞둔 테오도르 아도르노‘강의록 시리즈’

서양 철학은 하나였다. 근대를 거치며 서양철학은 두 갈래로 나뉜다. 혁명을 성공한 프랑스 철학과 혁명을 하지 않은 나라의 철학으로. 영국은 경험론, 철저한 실증주의로, 독일은 이상주의, 관념론으로 빠져들었다. 데카르트, 칸트, 헤겔로 이어지는 관념론의 독일 철학사.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수장으로 알려진 테오도르 아도르노(1903~1969·사진)의 ‘강의록 시리즈’가 곧 출간된다. 동시대 철학자 벤야민에 가려져 부정의 철학자, 예술로의 도피자로 오인 받던 아도르노의 강의록 시리즈 중 첫 권,『부정변증법 강의록』이 6월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 시리즈는 모두 17권으로 소개되며, 아도르노의 다른 저작 2권도 번역, 소개될 예정이다.

부정변증법 강의록 독일어판
아도르노 강의록 시리즈 출간의 시작은 이렇다. 칸트를 연구하던 이순예 이화여대 강사(독문학)는 2008년 접한 아도르노의『부정변증법 강의록』을 보며 부정변증법의 모호했던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강사의 개인적인 연구로 묻힐 뻔했던 아도르노의 강의록은 세창출판사 이강원 사장을 만나며 시리즈 번역으로 탈바꿈했다. 독일 저작권자에게 1년간 메일을 끈질기게 보낸 결과, 계약이 성공한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연구자들이 몰려들었다. 아도르노 번역자인 홍승용 대구대 교수(독문학)를 비롯해 음악학 박사 출신의 김방현 서울대 강사(미학과), 칸트 순수이성비판을 번역중인 박중목 명지대 강사(철학), 문병호 연세대 HK교수(철학) 등 8명의 전문 번역자가 간행위원으로 참여했다.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된 아도르노의 저작은『부정변증법』,『계몽의 변증법』,『미학이론』정도다. 이순예 강사는 국내의 젊은 연구자들이 독일어를 어려워 해 영국, 미국의 번역서로 아도르노를 대하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똑같은 유럽인데도 영국의 경험론, 대륙의 합리론으로 구분한다. 독일은 사회학적인 분석이 되지 않는 나라라고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르프
가 얘기하지 않았나. 중역도 문제지만, 문화적 정체성이 다른 영미 번역서로 국내 연구자들이 아도르노를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며 제대로 된 연구 번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로 다른 전공의 전문가들이지만 번역의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용어의 개념을 잡는 데만도 수 시간씩 회의를 한다.

오류 막기 위해 용어 개념 잡는데 주력

독일 연구자들이 발견한 아도르노 육성 강의 녹취로 만들어진 독일어 저본 아도르노 강의록 시리즈는 모두 17권이다. 이 강의록에는『미학강의』,『칸트의순수이성비판 강의』,『변증법강의』등이 포함돼 있다. 국내에 소개되는 시리즈 외의 텍스트로는『베토벤, 음악의 철학』,『신음악의 철학』이 있다. 이번 달에 출시 될 첫 강의록『부정변증법 강의록』의 번역을 맡은 이 강사는 독일어와 한국어가 일대일 대응이 어려워 힘든 작업이었다면서도 이 강의록을 통해 왜 아도르노가 칸트, 헤겔의 변증법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에 맞춘 부정변증법을 주장했는지 그간 난해했던 부분들을 상당부분 해소시켜 줄 것으로 기대했다.

아도르노의 사상은 철학, 윤리학, 문화, 자본, 미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뻗어있다. 그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독일인의 ‘자기 상대화’를 이해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웃나라 프랑스가 치열하게 혁명하는 것을 보기만 했던 독일의 지식인층(융커계층: 대토지소유자, 가정교사 등)은 신분제 사회에서 시민사회로의 이행단계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했음을 자책했다. 그들은 단두대로 끌려갈 걱정에 ‘교양시민’의 개념을 끌고 온다. 사회구조를 바꾸지는 못했으나 서로가 평등한 시민이란 이념에 동의한 것이다. 이들은 오늘날 ‘복지국가 독일’의 시스템을 만든 독일식 부르주아들이다. 혁명의 달콤함에 취해 보수화된 프랑스 부르주아의 ‘계몽’과는 다른 의미의 ‘계몽’을 실천하는 이들이다.

혁명이 아닌‘불편한 예술’선택한 거인

전쟁을 겪고 미국 생활을 했던 아도르노는 자본이 얼마나 위험하게 세상을 잠식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경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아도르노
고했다. 전통적인 ‘분석적 사유’라면 식량부족에는 종자개량, 대량생산으로 기아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아도르노는 유전자까지 조작시켜버리고, 원전을 핵무기로 둔갑시키는 군수산업과 자본을 비판했다. 달나라를 갈 정도로 지적 능력이 승리했지만 역으로 9·11 테러도 가능해진 현실, 원자력 개발로 생활은 편해졌지만 히로시마 사태를 불러일으킨 자본의 사회잠식. 아도르노는 머지않은 미래에 지구가 인간에게 복수할 것이라는, 변용된 마르크스주의 생태론을 주장한다.

원전과 핵무기의 경계선과 소통을 안 할 수 없었던 아도르노의 종착점은 예술이었다. 프롤레타리아가 이미 자본에 잠식돼 비정규직, 정규직을 놓고 투쟁하는 판국에 혁명은 애당초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아도르노는 생각했다. 세상일이 짜증스럽고, 욕망은 채워지지 않을 때, 포도주를 마시는 감각적인 즐김보다는 내 안에서 즐김이나 쾌감이 일어나게 하는 것, 그럼으로써 분석적 사유에서 해방되고 진정한 충족감을 맛보게 하는 것. 아도르노에게 그것은 예술뿐이었다.

2012년, 월가, 유럽 중앙은행을 점령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프롤레타리아의 죽음을 인정하자는 아도르노는 작금의 세태에 ‘혁명만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생업에 바쁜 사람들 자꾸 끌어내지 말고, 기득권에게 일침을 가해야 한다고 이순예 강사는 덧붙인다. 비판하는 사람들도 완전무결하지 않은 시대, ‘불편한 예술’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아도르노는 마지막으로 외치고 있다. 사유의 관성을 멈추고 아도르노의 외침에 귀 기울여 볼 때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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