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24 18:46:36
최근 ‘韓國古代 金石文綜合索引’이라는 책이 나왔다. 이 색인집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0세기 중엽까지 1천2백여 년 동안 학계에 보고된 우리 금석문 6백여 점을 총망라해서 정리, 3천6백여 항목에다 각주를 단, 그야말로 집념의 산물. 게다가 금속과 돌에 새겨진 기록뿐만 아니라 나무, 기와, 벽돌 등에 남은 문자기록도 대상으로 했고, 우리나라 사람, 우리나라 내의 기록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쓴 우리나라 사람에 관한 기록도 함께 정리해 놓았다. 권덕영 부산외국어대 교수(사학)는 색인집을 펴내면서 “‘연구자들의 책상머리에 항상 놓여있을 수 있는 책을 만들자’는 일념으로 정성을 다했다.”라고 말했다. 어떤 특별한 대가도 바라기 힘든 작업임에도 묵묵히 작업에 몰두해온 권 교수에게, 이번 연구와 책에 관한 얘기를 함께 들어봤다.
△금석문의 사료적 의미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금석문은 당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남긴 생생한 역사자료입니다. 그 속에는 윤색되고 자의적으로 편집된 여러 문헌기록, 예를 들면 역사서나 개인문집과 같은 자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꾸밈없이 용해돼 있습니다. 왕들의 치적과 승려들의 행적, 축성사업에 징발당한 촌부들, 귀족들의 놀이 형태, 심지어 토지매매계약서라 할 수 있는 내용까지 금석문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금석문은 인간생활 전반을 포괄하는 종합 자료의 성격을 띠고 있는 이른바 1차 사료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금석문은 지난날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사상 등 인간생활사 전반을 포괄적이고 가장 사실적으로 재구성하고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금석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습니까.
“문헌자료가 부족한 한국고대사 연구에 있어서 금석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학부과정 때부터 한국고대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저로서는 자연스럽게 금석문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특히 석사학위논문 작성과정에서 “고대사 논문을 올바로 쓰기 위해서는 금석문을 독파해야 한다”는 논문지도교수의 말씀에 자극을 받고 금석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10여 년 전에 발견된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위문제가 한국고대사학계의 쟁점으로 떠오르자, 저는 이 사료의 진위문제를 판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자료는 당시(古代) 사람들의 진솔한 기록인 금석문 밖에 없다고 생각해 금석문에 더욱 관심과 애착을 가지게 됐습니다.”△이 책의 발간이 학계에 어떤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십니까.
△작업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있으시다면요.
“저 나름대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별다른 아쉬움은 없습니다. 다만 이 책과 같은 연구업적에 대한 외형적인 격려랄까 보상이 너무나 인색하다는 점에서, 우리 학계와 사회에 대한 다소의 아쉬움이 있습니다. 금석문색인집을 출간한 후, 가까운 몇몇 분들게 저의 책을 보내 드렸더니 한결같이 하는 말이 “참 고생 많이 했겠다.”라고 했습니다. 그에 대해 저는 일관되게 “제가 참 미련한 짓을 했습니다.”라고 응수했습니다. 이 책을 출판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요즘 모든 대학에서 연구업적평가를 시행하고 있는데, 그러한 제도 하에서 編著로 돼있는 이 책은 점수를 후하게 받지도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8여 년 동안 이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련한 짓을 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이 책이 한국사 특히 한국고대사 연구의 활성화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의 미려한 짓이 조금도 후회스럽지 않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시죠.
“단기적으로는 ‘한국 금석문연구사’를 정리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인적 물적인 여러 가지 여건이 허락된다면, 고대금석문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이후에서부터 현대까지의 금석문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가칭 ‘한국금석문종합색인집’과 이들의 데이터베이스화를 추진하고 싶습니다.”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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