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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빛’과 ‘푸른 하늘’이 이토록 그립고도 낯선가
왜 ‘빛’과 ‘푸른 하늘’이 이토록 그립고도 낯선가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 승인 2012.06.04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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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유랑·상상·인문학⑱ 네덜란드의 일상 풍경 앞에서

구름이 떠 있는 네덜란드 라이덴 근처의 바닷가. 네덜란드엔 항상 구름이 떠 있다. 사진=최재목
네덜란드에선 봄, 여름의 맑은 날씨에도 피부를 스치는 바람이 차갑다. 아파트의 창가에 가만 앉아 있으면, 금방 창문을 닫고 싶어진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여름날에도 늘 바람막이 옷을 입고 다녀야 한다. 8월 초인데도, 얼마나 쌀쌀하던지, 라이덴 시내 운하 옆 한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가 채 10분도 못 돼 건물 안쪽으로 피신했던 기억이 생생.

네덜란드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맑다가도 흐리고 비 뿌리고, 또 흐리다가도 맑다. 하늘을 쳐다보면 항상 구름이 떠다니나 그 뒤론 태양이 쨍쨍하다. 어쨌든, 빛의 총량이 부족한 곳, 네덜란드. 이곳 사람들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나 벤치에 쉴 때나 햇살이 비치는 쪽에 본능적으로 모인다. 햇살이 쨍하면, 윗옷을 벗은 채, 운하에서나 어디서나 빛을 달콤하게 즐긴다. 빛은 이들에게 비타민이자 보약이다. 부족한 햇빛 때문에 비타민 D의 별도 복용을 일부러 권한다. 해 뜨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향했던 유럽. 그건 비타민 보충의 길이었을까. 예전에 인도가 신라를 ‘구구탁예설라(矩矩矺䃜說羅)’ 즉  ‘꼬꼬댁(=닭, 鷄)의 신라’로 불렀던(『三國遺事』『歸竺諸師』조) 것도 해 돋는(=뜨는) 나라에 대한 그리움 아니었을까.

빛은, 광학적으로 보면, 물 알갱이를 만나 수많은 스펙트럼을 갖는다. ‘열아홉 설레는 순정’처럼, 빛은 구름 틈으로 슬쩍슬쩍 세상을 향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너른 하늘이 떡 하니 버티고 있고, 태양과 햇빛과 구름이 수분과 만나 다양한 印象을 창출해내는 네덜란드의 자연. 다양한 모양의 구름 사이로 비치는 빛, 물이 많은 들판이 반사하는 빛, 수면에서 상승하는 공기 중의 수분이 반사하는 빛. 이중 삼중의 빛의 반사가 다양하고 미묘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런 빛을 그리고자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이 네덜란드를 찾았다. 그러나 언제나 햇빛이 찬연한 법이 없고, 더욱이 그것마저 그리 밝지도 못하며, 한 해의 반 정도는 빛을 보기도 힘들다.(박홍규, 『작은 나라에서 잘 사는 길』, 15-16쪽).

바다 보다 낮은 땅의 나라 네덜란드에 또 하나 낮은 것이 ‘하늘’. "네덜란드를 부르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낮은 하늘(low sky)의 나라다. 땅이 낮기에 하늘이 낮다는 것이 아니다. 10월이 되면 별안간 날이 짧아지고 매일처럼 구름이 드리워져 하늘을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덜란드에서 가을을 보내기란 대단히 고통스럽고, 우리의 천고마비의 가을 하늘이 그야말로 그리워진다. 게다가 그 ‘낮은 하늘’의 가을과 겨울은 길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가 태양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갔고 네덜란드로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간다. 또 렘브란트나 베르메르를 비롯한 네덜란드 화가들이 왜 그렇게도 빛을 중요하게 그려댔는지 이해가 간다."(박홍규, 같은 책, 19쪽)

우리들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다. 라이덴에서 거주했던 중국 시인 多多 栗世征(1951~)이 라이덴을 읊은 시 ‘沒有’(없다)엔, ‘沒有光’(빛이 없다), ‘沒有黎明’(여명이 없다)이란 구절이 눈에 띈다(Lyriek in Leiden, 128쪽). 늘상 보는 빛과 여명, 그게 네덜란드엔 없다는 것, 충격이다.

태양과 햇빛과 구름, 그리고 물이 만드는 풍광이 아시아권과 다르다. 이 점은 근대기 일본인의 눈에도 딱 걸렸다. "세계는 똑같은 푸른 하늘로 덮여 있는 것처럼 보이나 구름 색깔은 나라마다 다르다. 어디에나 산이 솟아 있고 물이 흐르고 있다지만, 산 모습은 나라마다 다르고, 물 빛깔도 다르다. 더욱이 인물과 초목은 땅에 따라 기품을 달리한다." 이른바 ‘이와쿠라(岩倉) 사절단’의 수행원 구메 구니타케(久米邦武, 1839~1931)가 기록한 유럽 풍광 일부다(『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 제5권, 제83장).

빛은 인간의 심리를 좌우한다. 자연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듯, 회화 속에서도 빛은 인간의 감정과 생명을 화폭에다 불어넣는다. 그림 전체에 빛을 비추어 화려하고 밝게 했던 루벤스. 빛을 이용하여 자신이 말하고 싶은 주제에 집중시켜 감동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렘브란트. 이들에게서 빛이 창의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빛과 하늘이 그리운 네덜란드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빛 알갱이를 무수히 찍어내어 그림을 완성한 베르메르의「델프트의 풍경」. 그 빛의 微分法 뒤엔 광학의 발달이 있었다.

네덜란드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의 철학자.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이들도 모두 광학과 깊이 관련돼 있다. 프랑스 출신 데카르트는 네덜란드서 21년간 은둔했는데, 그 시기에 굴절광학, 기상학에 대한 글을 썼다. 스피노자는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덴하그(헤이그)로 이주하여 학문적 탐구를 위해 평생 렌즈를 깎았다. 그가 깎은 제품은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호이겐스의 망원경 등에 사용될 정도였는데. 이런 일들이 왜 하필 네덜란드서 일어났을까.

우연이 아닐 것이다. 태양이 빛나는 가운데도 비는 내리고 또 그치는데. 거기, 허다하게 발견되는 무지개를, 나는, 한참동안 바라보곤 한다.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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