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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와 번역의 오류
FTA와 번역의 오류
  • 김영철 편집위원
  • 승인 2012.06.0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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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非世說

번역은 어렵다. 정설이자 통설이다. 타국의 언어를 모국어로 읽을 수 있게 하는 이 작업은, 단순히 단어나 말만 바꾸는 게 아니다. 단어와 구절에 담긴 개념을 응축해 표현해내야 한다. 그리고 그 것을 바탕으로 다시 쓰는 글이 번역이다. 그래서 번역은 제2의 창작이란 말이 나온다. 잘 된 번역은 오히려 원문을 능가하는 경우도 있다.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가 『장미의 이름』을 펴낸 게 1980년이다. 중세 수도원에 얽힌 종교 추리소설로 전 세계 40여 개 국에서 번역되는 등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됐는데, 그게 1986년이다. 번역가는 몇 년 전 타계한, ‘번역의 달인’으로 일컬어지는 이윤기 선생이다.
워낙 명성이 자자했던 책이라, 우리말 번역본이 나왔을 때 얼른 사봤다. 그러나 난해했다.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수도원 구조를 설명하는 부분에선 도표까지 그려가면서 파악하려했는데 어려웠다. 번역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번역자인 이윤기 선생의 ‘고백’으로 드러난 사실이다. 선생은 결국 몇 년 후 책을 다시 번역해 새로 펴낸다. 그 과정에서 라틴어 등도 익혔던 것으로 알고 있다. 번역은 이처럼 어려운 작업이다.
문화, 예술이나 학술 분야에서의 번역의 오류는 번역자의 실력, 혹은 실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읽는 독자뿐만 아니라 관련 분야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이런 관계로 번역이 잘못됐으면 빨리 그것을 인정하고 수정하는 게 상책이다. 이윤기 선생 번역의 『장미의 이름』이 아직까지도 독자들의 구미를 돋우고 있는 이유 중에 이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포함돼 있다.
국가 간 협정문이나 합의문의 번역에 오류가 생긴다면,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나라의 국익이 걸린 문제니 그 자체로도 엄청난 사안이지만, 그 여파 또한 대를 이어 나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니 국가 간 문서는 자구 하나하나에 신경을 기울여 파악해내야 하고 올바른 내용과 의미를 국민들에게 전해야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자유무역협정(FTA)의 번역의 오류는 이런 점에서 두고두고 지적될 우리 외교의 무능이고 흠이다. FTA 한글본에서 발견된 번역 오류가 한-EU가 207건이고, 한-미 간의 오류는 무려 296건이다. 국민은 무엇이 맞고 틀렸는지를 알아야 하고 이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과 관련된 오류에 관한 ‘정오표’가 6월말 공개된다고 한다. 외교부가 국민 요구에 맞선 재판에 졌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번역에 오류가 있었다면, 이를 밝힌 후 철저하게 검토, 수정하고 대처했어야 했다. 그게 만시지탄이나마 국가와 국민을 위한 올바른 길인데, 그 걸 실기한 느낌이다. 'Time flies like an arrow.' '시간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다'로 번역되는 격언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도 나온다. '타임이란 류의 파리는 화살을 좋아한다.' 번역의 어려움을 패러디한 인용인데, 이 경우는 어떻게 봐야할까. 오류, 혹은 애교?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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