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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代, 생각으로 조종하는 ‘노인용 게임’에 푹 빠졌다
50代, 생각으로 조종하는 ‘노인용 게임’에 푹 빠졌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06.04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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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노인용 컴퓨터게임’으로 게임상 휩쓴 중년의 공학도, 김경식 호서대 교수

노인을 위한 게임을 개발한다고 해서 보드게임과 레크레이션을 떠올렸다. 아님 관절건강에 좋은 아쿠아로빅(물 안에서 하는 에어로빅) 같은 것?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길래 물리치료기기 안에 탑재하는 프로그램을 연구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진짜(!) 컴퓨터게임이었다. 3D TV를 보면서 팔다리를 이리저리 흔드는 게임도 있고, 뇌파인식기를 피부에 붙여 집중력 대결을 벌이는 게임도 있다. 2009년 대한민국 게임인 대상, 2011년 대한민국 게임대상 ‘학술상’을 연거푸 휩쓴 김경식 호서대 교수(53세, 게임학과·사진). 노인과 컴퓨터게임이라는 어딘가 ‘어색한 만남’을 주선해온 김 교수가 궁금해졌다.

‘기억’을 간직 하고 싶은 노인들에게 바친다

김경식 호서대 교수
“제 얘기잖아요.” 노인용 컴퓨터게임을 개발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김 교수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대답은 기대만큼 거창하진 않았다. 50대 초반에 불과한 자신을 노인이라니. 차라리 ‘이제 나도 노인이 될 것’이란 말에 가깝게 들렸다. ‘연구활동’으로 노후준비를 겸할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재차 물었다. 노인들이 컴퓨터게임을 할 줄 아느냐, 수요가 있나. 김 교수는 “컴퓨터게임으로 즐길 거리와 건강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쏘아붙였다.

사실 김 교수가 노인용 컴퓨터게임에 확신을 가졌을 때는 40대 초반이었다. ‘자신의 얘기’라는 대답에, 지금보다 설득력이 더 떨어졌던 시기다. 치료와 교육이 가미된 ‘기능성 컴퓨터게임’은 김 교수가 한국게임학회장을 지냈던 지난 2005년부터 이미 학계의 화두이기도 했다. 2007년, 때마침 호서대가 연구지원 프로젝트 ‘월드클래스 2030’을 내놨다. 호서대 간호학과, 노인복지학과, 전자공학과 교수들과 공동연구 과제(노인용 기능성 게임을 통한 휴먼서비스 프로젝트)를 냈고 올해로 연구 4년째다. 연구비로 매년 1억원을 받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던 김 교수는 1991년 호서대 전산학과에 전임강사로 임용됐다. 호서대에 게임학과가 만들어지기 전인 1997년까지 김 교수는 컴퓨터 이론분야를 연구했다. 70여 편의 논문제목만 봐도 게임학과 이전과 이후, 연구방향의 확연한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 컴퓨터 제어시스템과 네트워크의 알고리즘을 분석해오던 김 교수는 1997년을 기점으로 ‘가상현실 게임’, ‘3D 온라인 슈팅 게임’, ‘밸런싱 게임을 통한 노년층의 게임 플레이 조사’ 등 컴퓨터게임 연구로 확실히 돌아섰다. 특히 지난해 발표한 논문 「뇌파 인터페이스와 의자형 게임 컨트롤러 및 스마트 신발이 결합된 노인복지 게임 고찰」은 뇌파와 의자, 신발을 활용한 ‘노인복지 게임’이라는 연구영역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지연불량 ‘0.5초’에 비밀이 숨어있었네

가정용 게임기는 일본의 닌텐도사 등을 통해 시장이 형성돼 있지만 인지능력이 비교적 떨어지는 노인들이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가정용 게임기는 센서가 민감하게 작동해 노인들이 게임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교수는 연구 주제를 언제나 노인과 그들의 생활환경에 맞춘다. “노인들은 대체로 호흡이 느린 게임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1인용보다는 2인용 게임이 효과적이죠.”

지난해 천안종합복지관에서 노인 300여명에게 시연한 걷기게임 ‘팔도강산’은 대표적이다. 먼저 노인복지학과에서 수요조사를 했다. ‘등산’이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여가활동으로 꼽혔다. 김 교수는 제주 올레길을 걷는다는 아이디어에 착안, 제작에 들어갔다. 제주 올레길 외에도 민속촌, 해안, 절벽 등 여러 장소를 3차원 영상으로 만들었다.

게임을 하는 사람은 발판 위에서 실제로 걷는다. 오르막길에서는 게임 속도가 느려지고, 내리막길에선 빨라지는 원리다. 지루함을 줄이려고 양을 몰아가는 설정도 넣었다. 양을 몰 땐 양손에 부착된 압력센서를 누르면 된다. 팔다리를 동시에 쓰는 ‘걷기게임’이다. 김 교수는 “두 명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을 하니 혼자할 때보다 체감성이 훨씬 높다”라고 분석했다.

시연과정에서 의외의 성과도 나왔다. 발판과 손잡이에는 각각 2개씩 4개의 센서가 달려있다. 2인용 게임이라 총 8개의 무선센서가 한꺼번에 정보를 전송하다보니 대략 0.5초의 지연현상이 발생했다. 연구팀은 현장에서 서둘러 조치하려했지만 노인들은 지연시간을 오히려 편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발판에서 발을 떼고 0.5초 후에 실행되는 건 사실은 ‘사고’인데 ‘부소득’이 된 셈이죠.”

연구팀은 ‘팔도강산’의 무선 버전을 올해 안에 완성할 계획이다. 상용화되면 전국의 양로원, 복지관 등지에서 만날 수 있다. 납품단가를 낮춰 개인에게 판매하는 데까진 앞으로 5년을 내다본다.

움직임이 없는 게임도 있다. 노인들의 집중력을 보완하는 게임이다. 성능이 조금 떨어지는 저가의 뇌파탐지기를 이용한 스포츠게임 ‘스키점프’다. 뇌파탐지기가 잡아내는 집중도와 평안도 뇌파를 이용해서 만든 게임이다. 하강할 때는 집중도가 높을수록 속도가 빠르다. 착지할 때는 평안도가 높아야 안정적으로 착지한다. 김 교수는 “몸이 느린 노인들을 위해 ‘생각’으로 뭔가를 조종할 수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이 게임은 김 교수가 활용한 뇌파탐지기를 개발했던 미국의 ‘유로스카이社’에서 역제안이 들어온 경우다. 이 덕에 ‘스키점프’는 대상을 일반인까지 넓혀서 출시됐다. 이밖에도 뇌파의 집중도를 이용한 경주게임 ‘2030 러너’도 최근 개발을 마쳤다. 김 교수는 뇌파를 이용한 컴퓨터게임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12월, 서울시 치매센터 26곳에 보급

김 교수의 ‘작품들’은 언제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선을 긋는다. “상용화는 안전 틀이라든지, 미각적인 부분 등 고려할 게 많습니다. 자본금도 필요하죠. 상용화는 비즈니스 영역에서 할 일이 아닐까요?” 김 교수의 연구목표는 특허와 원천기술 확보다.

그렇다고 아예 요원해 보이진 않는다. 지난해 8월, 서울시와 문화부에서 내놓은 ‘10억원 프로젝트’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는 치매관련, 인지기능 향상을 위한 기능성 아케이드게임이다. 김 교수가 책임자로 있는 호서대 노인용기능성게임연구센터는 아케이드 회사와 손잡고 벌써 게임 개발을 마쳐놨다. 올 여름께 병원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시연하고, 오는 12월이면 서울 소재 26개 치매센터에서 게임을 할 수 있을 전망이다.

김 교수의 연구지론은 명확하다. 노인용 게임에서 맨 앞에 놓여야 하는 건 언제나 ‘노인’이다. 고령화 사회와 컴퓨터게임이라는 미개척 분야를 탐지하는 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대다수의 노인들은 ‘기억’을 갖고 싶어 합니다. 컴퓨터게임을 통한 반복학습은 기억력과 인지기능을 높여주죠. 치료와 교육을 병행할 수 있는 기능성 컴퓨터게임을 활성화하는 연구는 가까운 미래에 수요가 급증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 이 연구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겁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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