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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세상이 온통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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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05.30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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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_ 두 사회학자의 체험적 사회학 하기

루터교 신부가 되려다 잠시 외도하는 바람에 80평생을 전 세계를 떠돈 사회학자, 늦깍이 교수로 올해 정년을 맞기까지 한 표본 집단을 25년간 추적한 사회학자. 5일 간격으로 두 사회학자의 책이 출간돼 관심을 끈다. 사회학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이름은 들어본 명저『사회학에의 초대』의 저자 피터 버거 보스턴대 명예교수와 동국대 교수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조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글로벌 트레킹 사회학자의 체험 다뤄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피터 버거의 지적 모험담』(노상미 옮김, 책세상)은 사회학 이론과 종교사회학, 지식사회학, 현상학적 사회학에서 뚜렷한 궤적을 남긴 세계적 석학 피터 버거 교수의 자서전이다. 그는 어린 시절 선물 받은 장난감 전기기차 이야기로 ‘어쩌다’가 아니라 ‘운명적으로’ 사회학자가 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스위치만 누르면 장난감 기차가 터널을 움직일텐데 네 살 피터 버거는 배를 깔고 엎드려 기차에 탄 상상 속의 승객들과 얘기를 나눴다. 그는“그때 이후로 나는 내내 그런 대화를 나눠왔다고 할 수 있으리라. 후회하지 않는다. 재미있었고 아직도 그렇다”라고 고백한다.

피터 버거 교수는 뉴스쿨 대학원에서 배운 세 가지 이론적 관점이 자신의 지적 배경을 형성하는 기초가 됐음을 책에서 밝힌다. 알베르트 잘로몬 교수에게서 사회학의 관념사적인 위치 이해와 프랑스 사회학의 전통을, 알프레트 쉬츠 교수에게서 현상학과 지식사회학의 교통성을, 마지막으로 카를 마이어 교수에게서 종교 사회학 접근 방식과 베버 저작 연구를 배웠다.

지적 단련을 거친 피터 버거의 이후 행보는 세계여행이었다. 도시의 비밀을 캐려고 밤이면 파리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살롱, 관청, 상점, 선술집, 매음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해하고자 했던 발자크. 그를 사회학자의 표상으로 여긴 피터 버거는 미국의 발자크가 돼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금연운동 같은 사회운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책은 이 글로벌 트레킹 사회학자의 개인적 경험을 사회학적으로 세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의 지적 모험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사회학과 세상의 거리가 상당히 가깝게 느껴진다.

이에 반해 조은 교수의『사당동 더하기 25』(또하나의문화)는 유쾌하던 피터 버거의 책보다 무겁다. 시종일관 진지하다. 처절한 ‘가난의 빈곤’에 대한 기록 때문이다. 조은 교수는 오로지 처음 설정한 표본 집단을 25년간 따라다닌다. 조은 교수가공간을 이동하는 경우는 표본이 이사를 간 경우뿐이다. 조 교수는 연구 사례 가족과 조 교수의 가족이 ‘짝을 맞춘 듯 같은 세대’라는 사실을 10년이 지나서야 인식할 정도로 철저히 거리두기를 지킨다.

물론  이 시기 동안 연구 참여 가족이  아무 탈 없이 지내길 바라면서도 극적인 사건이 생기길 바라는 이율배반적인 속내도, 연구자의 ‘개입’과 ‘객관적 관찰’의 경계에 대한 딜레마도 솔직히 드러낸다. 조 교수의 조금 다른 체험적 사회학 하기는 숫자로 점철된 국내 사회학 연구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영상매체를 교육자료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10년에 걸친 촬영은「사당동 더하기 22」(2009)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개봉됐다.

현장중심 연구, 사회과학 새 지평 열어

조 교수는 금선 할머니 가족을 비롯한 표본 집단에서 보는 가난한 이들의 삶의 이력은 곧 한국 근대사임을 밝힌다. ‘산동네’, ‘달동네’에서 들리는 1/n 전기세 악다구니, 산꼭대기 공터의 고스톱판, 그 사진을 찍어 보상금을 타내려는 이의 실랑이, 가정폭력, 알콜중독으로 대변되는 ‘빈곤문화’. 조 교수는 25년간의 끈질긴 사회학적 추적을 통해 ‘빈곤문화’란 없으며 빈곤이 있을 뿐이고 ‘가난의 구조적 조건’이 있을 뿐이란 사실을 발견해낸다. 연구 참여 가족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며 그 충격적인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두 사회학자의 공통점은 없을까. “모든 이론은 회색이지만 생명의 황금나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괴테의 말처럼, 철저히 현장 중심적이라는 것. 또한 사회학이 한 사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려는 끝없는 노력이자 개개인이 가진 동기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라는 것을 두 책은 서로 다른 체험적 사회학하기로 보여주고 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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