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1:15 (목)
마음을 다스리는 민요공동체 ‘산다이’를 찾아서
마음을 다스리는 민요공동체 ‘산다이’를 찾아서
  • 홍순일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 승인 2012.05.29 14: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섬이야기 7 전남 신안군 가거도

우리나라 서남단의 ‘끝섬’인 가거도는 약재, 철새, 수산자원, 관광, 태풍, 지정학적 위치 등으로 주목받고 있다. 가거도 소리는 시간과 공간, 인간과 상호교섭하며 가거도를 무대로 삼아서 삶을 영위하게 된 가거도 사람들의 생애사와 앎이 융합돼 있다. 산다이는 다 같이 모여 소리하며 노는 민요공동체를 말하는 것이지만 가거도의 산다이는 곡명을 함께 지칭하기도 했다. 위 사진은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2리 항리마을 전경이다. 사진 제공=사진작가 주병수
전남을 비롯한 서남해 도서·연안 지역에서 널리 퍼져있는 산다이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노는 독특한 놀이문화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도덕의 굴레로부터도 해방돼 본성에 충실한 정서를 노래한다. 놀이를 지향하는 소리문화요, 따라서 일종의 민요공동체라 할 수 있다.

산다이의 어원은 정확하지 않지만 현지조사를 할때 산다이가 일본말이라고 말하는 제보자가 적지 않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오래 전부터 성행해오던 ‘산대(山臺)’ 라는 놀이의 일본식 발음이 아닐까 한다. 산다이는 특정한 날, 예컨대 설, 추석, 초상 때 많이 한다. 그래서 명절 산다이, 노래판 산다이, 장례 산다이라는 말이 있다. 장례 때 밤을 새우며 노는 것을 특별히 ‘밤달애’(비금도), ‘다시래기’(진도)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넓은 의미의 산다이에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번엔 우리나라 서남단의 ‘끝섬’ 가거도의 산다이를 소개하기로 한다. 가거도는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리에 속하고, 흑산면 가거도 출장소가 들어서 있다. 현재 약재, 철새, 수산자원, 관광, 태풍, 지정학적 위치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섬이다. 가거도에서 10노트의 속도로 3시간 정도 가면 해양기지가 건설된 영토지킴이 가거초가 속해 있기도 하다.

특이하게도 가거도에는 「산다이」라는 곡명의 민요가 있다. 민요공동체의 놀이문화와 민요의 곡명을 동시에 산다이라 지칭할 정도로 가거도는 산다이의 섬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제보자에 의하면 「산다이」라는 노래는 길게 빼는 소리인 ‘청춘가’와는 달리,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서 조곤조곤 내는 소리라고 한다. 「산다이」는 「가거도 멸치잡이노래」와 함께 가거도 사람들의 마음이고, 생각인 셈이다. 홍대용이 “노래는 정을 말로 한 것이다. 정이 말에서 움직이고, 말이 아름다운 형식을 이루면 노래이다”라고 했던 말과 딱 들어맞는다.

  몰라나 주네 몰라나 주네 이내 마음을 몰라만 주네.
  (에야디야자~ 에야디야자~ 에~헤~헤~이야~~에야~ 아디혀라~ 산아지로구나~)
  알아만 주게 알아만 주게 이내 마음을 알아만 주게.
  (에야디야자~ 에야디야자~ 에~헤~헤~이야~~에야~ 아디혀라~ 산아지로구나~)

 가거도1리 회룡경로당에서 주민들이 산다이하는 모습이다.
가거도 사람들은 아버지 때, 할아버지 때도 산다이를 했다. 놀 때는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는다. 이 때문인지 가거도리 3구 대풍 마을의 경우 같은 섬마을 사람끼리 부부 연을 맺은 사례가 10쌍이나 됐다고 한다. 산다이를 할 때 보통 5~6명이 모인다. 낮밥을 해 먹고 놀다가, 저녁밥을 해 먹었다. 놀 때는 마을간 이동하면서 놀기도 했다. 설날 전후, 추석날 전후, 단오날에 약재가 되는 풀을 뜯으러 갈 때, 초상집에서 날을 샐 때 등이다. 어장이 잘 안되는 12월부터 2월까지 많이 했다. 여럿이 산에 올라가면 문득 쉬면서 산다이를 했다. 「생애소리」, 「산다이」, 「청춘가」, 「새타령」, 「성주풀이」, 「농부가」, 「뱃노래」, 「멸치잡이 노래」 등의 민요는 물론이고 심지어 대중가요도 불렀다.

대개 맨 처음엔 노래로 시작한다. 노래하다가 뛰면서 논다. 춤도 춘다. 벌칙을 정해 노래를 또 시킨다. 닭쫓기 놀이도 한다. 노는 도중에 내기를 해서 먹고 싶은 것을 사오기도 한다. 어떤 제보자는 남편이 죽은 후에 노래가 없었다면 아마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소리로 짜증이나 우울증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민요공동체인 산다이는 가거도 사람들의 삶 그 자체인 셈이다.

산다이에서 부르는 노래에는 가거도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과 삶에 대한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꽃다운 이내 청춘이 다 늙어가고, 아깝다 내 청춘 다 흘러 간다”라 노래 부르며, 자신의 시간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엄마야 아빠야 나를 잡지 마세요, 현대 시대가 이렇게 생겼으니 아니할 수가 없어요”라 노래 부르며 바깥 세상의 시대를 탓하기도 한다.

공간에 대한 생각이다. “무정한 가거도 너무 멀리 떨어져, 아까운 내 청춘 다 썩어진다”거나 “무정한 가거도 너무 멀리 떨어져, 우리네 일자무식들 너무나도 고생을 한다”처럼 뭍을 염두에 두고 섬을 탓한다. 그러다가 “잠을 자도 가거도, 꿈을 꿔도 가거도, 영원한 가거도 돌고 돌아도 가거도”라거나, “산이 좋아서 가거도냐 물이 좋아서 가거도냐, 영원한 가거도 나는 좋더라”처럼 가거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삶에 대한 생각이다. “날 데려가거라 날 데려가거라 돈 없어도 좋은 게, 날만 사랑할 사람아 날 데려가거라”처럼 사랑을 염원하고, “백년이나 살자고 백년초 심었더니, 백년초는 아니 나고 이별 수가 들었다”처럼 이별을 탓하고, “노랑저고리 섯코에 떨어지는 내 눈물, 너 탓이냐 내 탓이냐 중신애비 탓이다”처럼 부부관계의 한풀이도 한다. 그리고 “답답한 이내 마음, 알아 줄 사람 하나도 없네”라거나 “말 못하는 소주병도 남자 마음을 아는데, 대장부 남자가 여자 마음을 모르네”처럼 단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엄마는 죽으믄 두룬박에 담아서, 한가쿠(필자: 가시가 많은 엉겅퀴)로 막애질 놈 예시골로 보낸다”고 노래하며 시집살이시킨 시어머니에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처럼 가거도 사람들은 산다이의 소리를 통해서 그들의 진솔한 생각들을 표출한다. 시간, 공간, 인간이 상호교섭된 가거도 소리는 가거도를 무대 삼아서 삶을 영위해온 가거도 사람들의 생애사가 융합돼 있다. 이것이 시간과 관계를 맺어 문화사를, 공간과 관계를 맺어 문화권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가거도 소리가 가거도의 소리만이 아닌 우리의 소리가 되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거도 소리를 가거도의 민요공동체(산다이)와 관련시켜보되, 기쁘고 즐거운 말이 시(言之)와 노래(長言之)와 춤(舞之) 등 예술을 발생시키므로, 시(詩)가 가(歌)로 통하고, 가(歌)가 무(舞)로 통하는 보편적 예술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럴 때 가거도의 산다이는 독특한 섬의 문화이면서 보편적 우리 문화로 자리매김 될 것이다.

홍순일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