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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 인터넷서점 지각변동의 함의
[초점] : 인터넷서점 지각변동의 함의
  • 교수신문
  • 승인 2002.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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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0 12:02:39
백원근 / 한국출판연구소 선임연구원

지난 5월 13일 국내 최대 규모 인터넷서점인 ‘예스24’와 ‘와우북’이 합병을 선언했다. 극심한 할인경쟁을 벌여온 인터넷서점업계 선두업체간의 공동전선 구축을 통한 능동적 자기방어라는 분석, 높은 매출액 신장에도 불구하고 적자경영에 허덕여온 업체들의 생존전략이라는 지적, 와우북의 실적이 예상보다 저조하자 기관투자자인 벤처캐피탈 KTB(한국종합기술금융)가 막후조정을 했고 주식시장 상장을 앞둔 예스24와 이해가 맞아떨어져 전략적 합병을 추진했다는 등의 다양한 시각이 나왔다.
모두 신빙성이 없지 않지만, 합병 원인에 대한 ‘업계 연예가 중계’는 그다지 의미가 없을 듯하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난 구조적 배경과 향후 출판문화 전반과 독자에게 끼치는 영향에 있다.

인터넷서점의 폭발적 성장 비밀

한국의 인터넷서점은 2가지의 세계 신기록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발전 속도, 세계 최대의 출판유통 점유율이 그것이다. 출판유통 경로별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인터넷서점의 비중은 미국 8%, 독일 3%, 일본 1% 등인데 비해, 우리 나라는 10%를 돌파해 이미 15%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가파른 성장력의 배경은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우리가 IT 강국으로서 초고속통신망과 네티즌 등 모든 측면에서 절호의 인프라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인터넷서점의 책값이 싸고 이용하기에도 편리하므로 경제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독자)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내 인터넷서점 급성장의 비밀은 다름 아닌 ‘반사이익’에 있다.
모든 매장형 서점들이 1977년 이래 자율적인 도서정가제에 따라 책값을 정가에 판매한 데 비해, 인터넷서점들은 처음부터 할인전략에 의존해 급성장 가도를 달려온 것이다. 말하자면 정가와 할인가라는 책값의 이중가격 체계는 공정한 경쟁의 룰이 적용되기 어려운 일방적 독주(갓길 통행)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세계 어디에도 이러한 온라인-오프라인 이중가격 체계는 없다. 영어권 국가들은 자유가격으로 온궭의 모두 할인판매를 하고, 유럽 각국과 일본 등 다수의 비영어권국에서는 도서정가제를 통해 온궭의 동일 가격 체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각국 인터넷서점 발전 속도의 차이는 바로 할인판매 여부에 달려있는데, 우리의 경우 이중가격제에 의해 그 가속도가 더욱 커진 셈이다.
인터넷시대의 개막과 함께 인터넷서점, 전자상거래의 대명사가 된 아마존닷컴이 세계적으로 부상한 때가 1996년이다. 이후 IT와 인터넷 열풍 속에서 국내에 선보인 토종 인터넷서점의 효시는 1997년 5월 종로서적이 개점한 사이버서점이다. 그 해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대형서점 대부분이 인터넷서점을 개설했고, 1999년부터는 예스24를 비롯한 할인형 인터넷서점들이 본격적인 영업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2년이 지난 작년 기준 인터넷 매출 성적표는 할인형 인터넷서점의 압승, 오프라인 대형서점의 상대적 저조로 나타났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이제는 대형서점들 역시 너나 없이 인터넷 할인판매 경쟁에 합세했다. 20∼30% 할인은 물론 50% 이상 할인도 다반사가 되었고, 할인의 마지노선이라는 최저가격 보장판매제까지 내걸고 있다. 이제 매장 서점에서 책을 사면 손해라는 것이 일반 독자들의 가치 판단으로 굳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매장 서점들은 거래질서 안정을 위해 책값 할인을 극구 피하며 정가제를 고수하고 있다. 나아가 서점 단체(한국서점조합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1999년 이래 도서정가제 의무화를 골자로 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있고, 현재도 국회에 계류중(출판및인쇄진흥법)이다.

도서정가제와 인터넷서점

그간 할인형 인터넷서점들은 팔릴수록 적자라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매출 외형과 시장 점유율을 높여 왔다. 또한 전국에 산재한 2백여 개 대형 할인점의 도서 코너, 일부 중소형 서점들의 할인영업, 마일리지 서비스를 이용한 대형서점의 간접 할인 등 출판시장의 할인은 점차 구조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국내 인터넷서점들은 할인 전략에만 의존해 압축 성장을 한 결과, 동일 도서의 전국 균일가에 의한 문화복지 향상과 매장 서점의 안정적 영업에 기여해온 자율적 도서정가제를 형해화시켰고(이것도 세계 진기록이다), 가격 경쟁을 버티기 어려운 소형 서점들의 연쇄 도산을 초래했다.
인터넷서점의 구매자들은 대부분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낮다. 가격이 싼 곳이 최고이므로 좀더 싼 가격을 제시하는 사이트로 곧바로 이동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싼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책값 할인경쟁의 여파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출판 유통질서의 왜곡과 같은 산업적 측면은 제외하고, 독자의 권리에만 초점을 두고 이 문제를 짚어보자.
첫째, 책값 그 자체의 문제이다. 책값은 뛰어 오르고 거품가격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할인형 인터넷서점이 본격 출현하기 시작한 2∼3년 전에 비해 현재 책값은 많이 올랐을 뿐 아니라, 할인을 한다 해도 결국 비싼 값이 되기 마련이다. 가격체계에는 시장기능이 작동하고 관련 업자들이 손해보며 사업을 할 리 만무하므로, 소비자는 봉이 되기 십상이다. 평균 30% 정도 오른 책값에서 25% 내외로 할인을 해봐야 독자는 실속 없는 할인의 기쁨을 누릴 뿐이다. 인터넷서점들이 기존 오프라인서점의 위탁이나 어음거래 관행과 달리 현금 매입을 하는 것은 출판사와 소비자를 위한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대량 구매를 통한 매입가 인하를 위한 것이다.
둘째, 독자가 직접 책을 살펴보고 살 수 있는 문화적 선택권의 문제이다. 인터넷서점은 나름의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할인 경쟁에 의한 성장으로 동네서점들을 전폐업에 내모는 것은 ‘실물 책을 보고 구매 선택할 권리’를 앗아가는 것이다. 인터넷서점들은 매출이 올라도 돈 안 되는 매장 서점을 개점할 생각이 없으며, 독자들이 싼 값만 쫓는 사이 서점 수는 3년 전에 비해 절반이나 줄었다.
가격 선택권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문화적 선택권이다. 동네서점의 몰락을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탓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가뜩이나 열악한 경영으로 대형서점들조차 ‘지하서점 왕국’이 된 엽기적인 이 나라에서, 소형서점을 구멍가게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일반 소매점으로 생각하는 民度와 정책 담당자들의 문화지수가 답답할 따름이다.

할인, 그리고 독자의 권리

향후 인터넷서점의 구조 개편은 시장논리와 할인경쟁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온궭의조瓚括 상생에 의한 수익모델 창출과 윈윈게임이 정보사회 산업 패러다임 모델의 잠정적 정답이라면, 이중가격 체계에 의한 일방의 성장과 다른 일방의 퇴출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하루 속히 마련돼야 한다. 이는 ‘일부 업계’의 밥그릇 싸움이나 정보사회에서 불가피한 과도기적 현상이 아니라, 우리 나라 지식·문화·정보 관련 가치사슬 전반에 보내는 적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적신호는 오래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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