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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63 최소율의 법칙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63 최소율의 법칙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2.05.2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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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모자라는 요소가 성장을 좌우한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누구나 체험했듯이 우리 몸에 어떤 영양소가 부족하면 뜻밖에도 그것이 듬뿍 든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 왠지 길가다가 우연히 참깨 볶는 냄새에 은근히 숨 막히게 목이 죄인다거나, 떡집에서 솔솔 풍기는 떡 냄새에 입안에 군침이 한가득 돈다. 그렇다. 몸이 부족한 것을 조르고 있다는 證左이며 막상 그런 음식을 만나면 아귀차고 乞神스럽게 퇴가 나도록 먹게 된다. 후다닥 급히 먹으면 체하는 법!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다. 알량한 입은 엄청나게 갖아서 일찍이 어릴 때 먹어본 것에 인이 박혀 훗날 커서도 기어이 그것을 찾게 되고, 그 때 골고루 먹어보지 않으면 영락없이 그만 먹음새가 짧아지게 마련이다. 또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어머니의 식성이 좋아야 가족들도 따라서 먹새가 좋아진다. 음식 장만에는 시간깨나 걸리고, 성가시고, 그리도 손이 많이 간다. 사실 식구가 얻어먹는 음식은 그것이 다 주부가 좋아하는 것들로 알뜰 장을 봐도 자기 입에 당기지 않는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안주인의 입이 걸어야 자식들과 남편도 두루 먹성이 좋아지고, 때문에 가족의 건강은 모름지기 어머니의 입과 손에 매였다.

You are what you eat!

그리고 의식주 중에서 가장 바뀌기 힘든 것이 입이다. 옷 입기나 잠자리는 다 문화의 영향에 따라 능히 쉽게 변하지만 딱하게도 口味 하나는 고집불통 아닌가. 한번 각인된 입맛은 여간해서 호락호락 바뀌지 않는다. 외국에 오래 살아도 쏙 빼닮은 내림물질이 작용해 굳이 김치, 된장을 찾는 것도 그래 그렇다. 아니 그런가?

중언부언하지만 음식은 누가 뭐래도 온갖 것을 번갈아가며 골고루 먹어야 한다. ‘입이 밭아 깨작거리며 음식 까탈 부리는 사람 치고 성질머리 좋은 사람 없다’고, 이런 사람은 어지간히 까다로워 심신의 건강도 그리 좋지 못하지만, 산해진미가 아니더라도 아무거나 허접한 것도 꺼릴 게 없이 두루 달갑게 잘 먹는 사람은 마땅히 마음이 곱고 몸도 튼튼하다! 하여튼 ‘음식은 당신의 운명을 바꾼다’고 했고, ‘You are what you eat!’란 말도 있다. 해서, 지구상에 그 많은 동물 중 유달리 쥐나 산돼지, 인간 따위가 어엿이 일가를 이룬 것(성공)은 하나같이 잡식하는 탓이렷다.

어쨌거나 전답에 곡식들 먹으라고 퇴비·비료를 한 그득 넣어준다. 제 아무리 ‘생명의 숨결’이라는 햇빛이 지나쳐도 거름기 없는 생땅에서는 소출이 엉망이다. 논밭에다 두엄 같은 유기물을 흩어두면 세균이나 곰팡이, 효모들이 마구 깃들어서 식물이 쓸 수 있는 무기영양소로 바꾼다. 그래야 토양미생물이 그냥 벅적벅적, 버글버글 득실거려야 흙밥이 부들부들한 건흙이 된다. 하여, 미생물이 바로 ‘썩힘’을 책임지는 분해자요, 식물은 생산자, 동물은 소비자로 이 셋이 멋지게 어울러져야 한결 괜찮은 생태계(ecosystem)를 이룬다.

‘부족한 2%’에 신경을 써야하는 이유

사람이 음식을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45: 30: 25의 비율로 가지가지 고루 먹어야 하듯이 그저 식물도 다르지 않아서 영양소를 두루 줘야 잘 자란다.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Liebig’s law of minimum)’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독일의 무기화학비료 연구의 선구자(‘비료의 아버지’)요 식물학자 리비히(J. von Liebig)가 제창한 것으로, ‘10대 필수영양소(원소) 중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넘치는 요소가 아니라 가장 모자라는 요소’라는 것이다. 가령 탄소, 산소, 수소, 질소, 인산, 유황, 칼륨, 칼슘, 마그네슘, 철 중 딱 한 가지가 부족하면 다른 것이 제아무리 많이 들어있어도 식물은 제대로 자랄 수 없다. ‘경작물의 성장은 가장 부족한 것에 의해서 제한된다’는 것으로 이를 ‘최소율의 법칙’, 또는 ‘한정요인설’이라 한다.

중언부언하면, 앞의 10원소 중에서 몽땅 다 넘치지만 어느 하나가 채 90% 밖에 되지 않는다면 다른 영양소들도 에누리 없이 간신히 9할만 사용된다는 것. 이 법칙은 저마다 정치·사회·인생살이에도 적용하니, 기어코 ‘부족한 2%’에 온전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마치 한 집단에 아무리 입지전적인 우수한 인재가 모여 있어도 정작 질 낮은 몇 사람 탓에 고스란히 전체 수준이 떨어지는 것과 흡사하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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