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이 못내 떨치지 못하는 것은 ‘노는 재미’가 아닐까. 자발적으로 열과 성을 다해, 몸과 마음을 함께 움직여 노는 맛을 알아버린 이들은 이제 웬만한 재미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때마침 주 5일 근무제 논의가 진행중이고, 여가에 대한 기대가 맞물린 지금 조국 근대화와 고도성장의 환상을 좇느라 억눌러왔던 휴식과 놀이에 대한 관심은 자못 크다.
그 관심은 학회로까지 이어져, ‘제대로 노는 법’을 함께 배우려는 이들이 나타났다. 6백 여명의 회원이 모인 여가·문화학회(Society for Leisure and Cultual Studies)는 지난 7월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창립식에서 ‘여가를 문화발전의 토대로 정착시키겠다’는 목적을 밝혔다. “노는 일에도 공부가 필요하냐”는 물음에, 이들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학회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21세기의 패러다임은 이제 ‘호모 파베르(노동하는 인간)’에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고문으로 약 6백 여명의 회원이 모인 학회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흐름을 감지하고 있다. 교수 중심인 여느 학회와 달리 영화감독, 연극인, 무용가, 방송인 등 문화예술인이 많이 참여한 것도 특징이다.
김명언 서울대 교수(심리학과), 김문조 고려대 교수(사회학과), 방재기 단국대 예술대학원장, 유인촌 중앙대 교수(연극학과), 정옥자 서울대 교수(국사학과)를 비롯해 교수 29명과 금난새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대표, 박찬숙 KBS 아나운서, 육완순 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 등 문화예술인, 윤호진 예술의 전당 총감독, 이기형 인터파크 사장, 허태학 에버랜드 사장 등 경영인까지 총 50여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각각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이슈를 만들고 회원들과 의견을 나누는 ‘매니저’ 역할을 맡게 된다.
학회는 홈페이지(www.Lculture.net)를 중심으로 활동해나갈 계획이지만, 아직까지 완벽한 체계를 갖추지는 못했다. ‘이슈포럼’, ‘프로젝트 포럼’, ‘네트워킹 포럼’, ‘에듀 포럼’ 총 네 개 나뉜 포럼들도 각각의 개성과 구체성이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의 조직폭력배 문화’, ‘성인 영화 전용관’, ‘주 5일제’ 등 다양한 이슈를 올려놓고 자발적인 토론을 이끌고, 나아가 다양한 동호회를 만들어 ‘명예퇴직자에게 필요한 여가’, ‘K리그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한 토론의 장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여가·문화학회의 창립은 한편 시류에 편승한다는 의심도 지울 수 없는데,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린 유명인들이 얼마만큼 자신들의 현장 경험을 살려 적극적으로 학회에 참여할 지도 아직은 미지수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