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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습협약서 체결하고 학회에서 논문 발표하기도 … “지식 ‘생산’의 즐거움”
견습협약서 체결하고 학회에서 논문 발표하기도 … “지식 ‘생산’의 즐거움”
  • 김지현 서울대·기초교육원
  • 승인 2012.05.21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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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_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 ‘학부연구견습생프로그램’

‘새로운 대학을 말한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각국의 대학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일본·중국·프랑스·미국 사례를 실었다. 이들 대학 역시 재정난·취업난을 겪고 있었다. 세계 대학의 최신 동향을 통해 혁신동력을 만들어 보자.

대학에서 ‘연구’는 오랫동안 교수진의 권리와 역할에 한정된 것으로 인식돼 왔다. 세계 유수의 연구중심대학들이 운영하는 학부생 연구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미국 대학은 학부생 70% 정도가 각종 연구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창의성, 비판적 사고, 학문적 수월성을 강조하는 대학일수록 그 경향이 강하다. 대학에는 학부생연구처가 있고, 500여 대학이 모여 학부연구위원회(Council on Undergraduate Research)를 결성해 연방정부와 국가연구재단과 협력해 학부생연구프로그램에 대한 학술·재정·실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버클리 캠퍼스에서 시행하는 ‘학부연구견습생프로그램(Undergraduate Research Apprentice Program: URAP)’은 학부생 연구의 모범적 사례다. 학생이 독립적으로 연구과제를 기획하고 연구비를 지원받아 논문을 완성하는 ‘자율연구’와 달리 이 프로그램은 교수들의 연구에 학생들이 참여해 ‘연구를 배우고 학점을 취득하는 교과목’이다.

분자세포생물학을 전공하는 디판칸(사진)씨는 학부 1학년 1학기가 끝나자마자 학부연구견습생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지도교수와는 매주 수요일 오전에 랩미팅을 갖지만 연구에 관한 질문은 언제 어느 때나 가능하다. 학부과정에서 자기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고등학교 때는 상상하지 못했다는 디판칸은 요즘, 연구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매학기 초 교수들은 학생견습생을 뽑기 위해 인문학·과학·예술분야 등 전 영역에 걸쳐 다양한 연구프로젝트를 공지한다. 평점 3.0이 넘는 학부 3~4학년 학생들이 지원가능한데, 신청서에 자신의 관심, 기본능력, 교과목 이수경력, 사전연구경험 등을 담아 제출하면 해당 교수가 직접 심사한다.

선발된 학생들은 멘토교수와 연구일정, 필수사항 등을 의논해 ‘견습협약서’를 체결한다. ‘학부 및 학제탐구 192’ 교과목에 등록해 주당 3시간 기준으로 1단위를 취득하게 된다.

학기동안 학생들은 실험실이나 각종 센터 등에서 교수의 연구에 참여하고 정기적으로 교수와 연구멘토링을 진행한다. 연구수행에 드는 모든 비용은 학교가 부담해 무료이다. 학기가 끝나면 연구결과와 새롭게 배운 점을 담아 3~5쪽 분량의 활동보고서를 제출한다. 학회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거나 학술지 논문에 멘토 교수와 함께 공동저자로 이름이 올리기도 한다.

버클리에는 학부생연구만 싣는 오랜 전통의 저널이 있는데, <Berkeley Undergraduate Journal in th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이 대표적이다. 학생들은 저널의 피어 리뷰어, 에디터, 디자이너와 운영매니저로도 활약한다.

버클리의 학부연구견습생프로그램이 가지는 의의는 크다. 학생들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연구조교’가 아니라 연구의 보람과 가치, 연구능력을 배워가는 미래 학문공동체의 일원이 될 ‘견습생(apprentice)’으로 인식된다. 교수들은 자신의 연구프로젝트를 학부생들에게 연구실습기회로 제공하고 ‘연구에 대한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한다.

학교 전체의 의식과 문화가 연구의 보람을 누리고 연구능력을 함양토록 하는 것을 학부교육의 중요한 목적으로 삼아 이를 커리큘럼으로 운영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교수 지도의 질을 높이기 위해 연구멘토십을 강조하고 ‘우수멘토상’을 수여한다. 특별히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소수인종 학생을 위해 ‘학부생 연구활동 후원 프로젝트’등  풍부한 연구지원기금을 마련한다. 매해 400명이 넘는 학생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 한다.

미국 버클리 캠퍼스에서 펼쳐지는 조용한 진리의 축제는 국내 대학의 학부생 연구에 대한 아쉬움을 더한다. 학부생연구의 성공을 위한 핵심요소들인 ‘연구를 가르치고 배워서 잘하게 하는’ 것에 대한 대학과 사회 전체의 인식과 문화, 연구활동기반으로 하는 통합적 강의, 학부생 연구의 커리큘럼화, 학생연구를 위한 설비와 도서 재정 등의 인프라구축, 교수의 연구지도에 대한 교육업적인정 등이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은 높은 학점취득과 취업이 우선 관심사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연구다운 연구’를 해보지 못한 학생들은 새로운 지식의 생산과 공유의 과정에서 소외된 채 지식을 ‘전달’ 받고 ‘소비’하는 수동적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학부생 연구에 참여한 학생들은 ‘연구가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다.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고 한다. 교수들은 ‘스스로 하고 싶어서 찾아온 학생들의 열정은 기대이상이다. 지도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이러한 교육적 공환없이 대학이 그 본질을 유지하는 것, ‘노벨상 수상’이나 ‘지식기반사회의 창의적 인재양성’은 불가능하다.

김지현 서울대·기초교육원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고등교육과 교육원리를 전공했다. 서울대 학생자율교육프로그램책임교수다. 「학생자율교육프로그램의 운영원리와 의의」, 『신입생 세미나』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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