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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지방대-갈 곳이 없다
흔들리는 지방대-갈 곳이 없다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07.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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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15 00:00:00
안 그래도 좁은 취업문이 지방대 졸업자에게는 ‘더 좁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문을 꽉 걸어잠근 채 아예 ‘도전해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는 아우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지방대 출신 임용 쿼터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 반면 기업은 ‘우리는 모든 지원자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럼 지방대 졸업자들이 ‘이유없는 불평’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① 2002 지방대 세 가지 풍경
② 무엇이 위기인가
3. 푸대접의 현실─ 1. 갈 곳이 없다
④ 지방대에 문제는 없는가
⑤ 대안과 과제

“지방대 출신입니다” “호오∼” “취직한…” “오오오오 대단하구먼!”
오마이뉴스 객원기자 최인수가 그린 카툰의 내용이다. 지방대 졸업자의 취업율이 얼마나 낮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 카툰은 결코 우리에게 낯선 풍경이 아니다. 경성대 신문사 편집국장으로 있는 최 기자 또한 취재하면서뿐 아니라 평소 생활하면서도 ‘지방대생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낀다. ‘서울의 대기업은 아예 엄두조차 못낸다’는 선배들은 ‘지방대니까 한계가 있다’는 말을 입에, 아니 마음에 달고 산다.

‘차별’을 넘어선 ‘담쌓기’
이제는 ‘토익 900점 이상이지만 거의 모든 대학의 서류전형에서 낙방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인 부산 D대 출신 김 아무개씨’, ‘평점 3.8, 토익 900점대에 외국연수까지 다녀왔지만 서류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전남의 한 국립대 4학년 강 아무개씨’ 등 취업난에 시달리는 지방대생들의 ‘피맺힌 하소연’도 하도 들어 식상할 정도가 됐는데도, 여전히 기업들은 서울소재대학출신과 지방소재대학출신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준영 LG 인사과장의 경우 “학교에 따른 차별은 없다. 실력 검증을 통해 뽑는다”라고 단호히 선언한다. 그러나 이 기업에 온라인으로 입사 지원시 입력해야 하는 ‘학교명’을 검색함에 있어 상당수의 지방대학들의 학교 코드가 누락돼 있어 이들 ‘기타’ 대학 출신의 지원자들은 입사원서 작성 때부터 한풀 꺾이고 들어가야만 한다. 한동대 취업정보실 김상구씨는 “한동대가 지방에 있는 만큼 기업에서의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삼성전자의 경우 한동대의 코드도 따로 있다. 홍보 덕인 것 같다”며 ‘자랑스러워’ 한다.
대학별로 입사원서를 교부하는 경우 지방소재대학 출신자들의 취업문은 좁아지다 못해 원천봉쇄당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현대캐피탈의 경우 총 3백장의 입사원서 가운데 2백장 이상을 수도권대학에 배부했으니, 지방에는 원서조차 받지 못하는 대학이 허다할 수밖에 없다. 이래서야 ‘면접전형강화’라는 대기업들의 광고도 지방대 출신 취업전사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지방의 명문대라 자부하는 부산대, 전남대도 삼성, LG등의 대기업에서는 각각 20장, 10장 정도씩의 입사원서를 배부받을 뿐이다. 부산대에는 몇몇 대기업의 과장, 대리 등이 직접 방문해 ID를 주고 학생들과 면담도 한다는 부산대 취업정보실 김 아무개씨는 “그들은 비밀스럽게 ‘다른 대학에는 원서 주지 않으니 얘기하지 마라’고 말하고 간다. 회사측도 같은 입장이다”라고 귀띔한다.

고개숙인 지방대 졸업생
김동황 청주대 교수(경영학)는 기업이 서울소재대 졸업생을 선호하는 현상의 이면에는 ‘인맥’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지역기업 최고경영자들은 대다수가 명문대생들이다. 지연, 학연은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이것은 결국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며 ‘지방대 출신’ 하면 일단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우리 현실을 꼬집는다.
시절이 하 수상하다 보니 지방대생들이 푸대접받는 취업시장에 ‘지방대 출신 임용 쿼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대두되고 있다. 지난 해 12월 교육부에서 ‘지방대육성특별법’을 제정할 방침이라고 발표한 후 지방대 총장 대표들이 모여 마련한 ‘지방대학육성특별법률안’은 바로 이 ‘지방대 출신 임용 쿼터제’, 즉 ‘지방 출신 우수 인재에게 지역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마련해 주자’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윤덕홍 대구대 총장을 비롯해 지방대 문제를 고민해온 이들은 이 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중이다.
그러나 지방대생들의 취업난을 해결하기 위해 부산지역인재개발원 사무처장으로 활동중인 이학춘 동아대 교수(법학부)는 대학들이 막무가내로 ‘차별하지 말 것’, ‘지방대 우대정책을 마련할 것’ 등을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현재 당면한 최대의 문제는 어떤 대학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 적합한 교육을 시키는지 알지 못하는 기업이 ‘좋은 이름의 대학이 좋은 교육을 시키겠지’ 하는 막연한 ‘추상적 기대치’만으로 ‘지방대생을 걸러내는’ 현실이다. 지방대들은 스스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며, 기업들 또한 서울/지방의 이분법적 사고를 가질 것이 아니라 ‘어느 대학이 우리 회사에 맞는 교육을 실시했나’를 채용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대구지역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넷이 지방대학 출신 4백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54%가 ‘지방대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들이 불이익으로 꼽은 것은 ‘지방대 무시풍토’가 70%, ‘입사자격’이 15%, ‘원서구하기’가 12%로, 지방대 졸업자들은 실제로 취업을 준비하면서 ‘차별’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뭐라 발뺌하든 지금 지방대생들은 지방대 출신이라는 ‘낙인’이 찍혔다는 이유만으로 실력을 한번 ‘펼쳐보일’ 기회마저 없이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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